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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꺼내지 못하는 돈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식 일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상대가 반대할 줄 알면서도 몰래 지갑을 열고, 그 일이 들통나면 생긴 골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갑니다. 오늘은 남편 몰래 아들 빚을 갚아 주었다가 3년 동안 남편과 등을 돌리고 살았던 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경상도 산골 마을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스물셋에 이 마을로 시집와 남편과 함께 마흔세 해 동안 고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비탈밭에 해마다 고추 모종 수천 포기를 심고, 여름 내내 따서 마당에 널어 말린 뒤 장날마다 내다 팔았습니다. 자식으로는 도시에 사는 큰아들과 이웃 읍내로 시집간 딸이 있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고집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30년 된 경운기 한 대를 고쳐 가며 몰았고, 비 오는 날이면 창고에 쪼그려 앉아 녹슨 공구함을 열고 볼트를 조였습니다. 이웃들이 새 농기계를 들일 때도 “멀쩡한 걸 와 버리노” 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최 씨에게는 남편도 모르는 돈이 있었습니다. 고추 판 돈에서 만 원, 이만 원씩 떼어 읍내 은행 적금에 넣었고, 남의 밭에 품 팔러 가서 받은 일당도 고스란히 보탰습니다. 서른 해 가까이 모으니 5천만 원이 되었습니다. 혹시 남편이 먼저 가고 혼자 남으면 쓰려던, 최 씨의 마지막 기댈 언덕이었습니다.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마음이 여린 아이였습니다. 고추 따는 날이면 엄마 허리 아플까 봐 바구니를 대신 짊어졌고, 대학에 붙던 날에는 “엄마, 내가 꼭 고추 농사 그만 짓게 해 줄게요” 하며 웃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아들은 마흔 무렵 친구와 식자재 납품 사업을 차렸습니다.
3년 전 봄, 한밤중에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거래처 돈이 안 들어와서 급한 김에 사채를 썼어요. 이자가 불어서 5천만 원이 됐어요. 이달 안에 못 갚으면 집으로 찾아온대요. 아버지한테는 제발 말하지 마세요.”
수화기 너머로 어린 손자 둘이 자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최 씨는 이튿날 첫 버스를 타고 읍내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깨 아들 계좌로 보냈습니다. “이번 한 번뿐이다. 다시는 그런 돈 손대지 마라.” 아들은 전화기 너머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비밀은 석 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은행에서 온 우편물을 남편이 먼저 뜯은 것입니다. 남편은 종이를 마루에 내던졌습니다.
“그 녀석 버릇만 나빠진다! 제 손으로 진 빚은 제 손으로 갚아야 정신을 차리지, 에미가 다 막아 주면 그놈이 뭘 배우노!”
“내가 평생 모은 내 돈이오.” 최 씨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이부자리를 들고 건넌방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밥상에 마주 앉아도 오가는 말은 “밥 묵자”가 전부였습니다. 남편은 저녁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가 밤 열 시가 넘으면 슬그머니 집을 나섰고, 동이 틀 무렵에야 들어와 곧장 밭으로 나갔습니다. 최 씨는 남편이 마을 어귀 친구 집에서 화투를 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내와 한 지붕 아래 있기 싫어 그러나 싶어 서운함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사이 남편의 볼은 눈에 띄게 홀쭉해졌습니다.
올봄, 남편은 고추 모종을 옮겨 심다가 밭고랑에 쓰러졌습니다. 읍내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일흔둘이었습니다. 최 씨는 끝내 남편과 화해의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보름쯤 지난 날이었습니다. 장맛비가 그친 아침, 딸이 와서 창고 정리를 거들었습니다. 눅눅한 창고 안에는 남편이 아끼던 경운기가 주인을 잃은 채 서 있었습니다.
“엄마, 이 공구함은 고물상에 넘길까요?” 딸이 기름때 묻은 쇠 상자를 가리켰습니다. 최 씨가 무거운 공구함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 깔린 누런 신문지 밑으로 비닐봉지 하나가 보였습니다. 봉지 안에는 통장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표지에는 남편의 삐뚤삐뚤한 글씨로 ‘마누라 비상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통장을 펼친 최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3년 전 여름부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140만 원, 150만 원씩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지막 줄에 찍힌 잔액은 5천만 원을 조금 넘었습니다. 통장 사이에는 반으로 접힌 쪽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당신 노후는 내가 지킨다. 아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최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딸이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이 돈을 대체 어디서….”
그 답은 며칠 뒤에 찾아왔습니다. 고개 너머 도로 공사장의 현장 소장 한 씨가 뒤늦게 조문을 온 것입니다.
“어르신이 3년 동안 밤마다 자재 지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밤 열한 시에 오셔서 새벽 다섯 시에 가셨지요. 눈 오는 날에도 한 번을 안 빠지셨어요. 집사람한테 갚을 게 있다고만 하시더군요.”
최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화를 낸 것은 아들의 버릇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노후가 텅 비어 버린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건넌방으로 건너간 것도 밤마다 나가는 걸 들키지 않으려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최 씨는 쪽지에 적힌 대로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3년 동안 지킨 비밀을 이제는 자신이 지킬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말보다 고집이 앞서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등을 돌린 사람의 속마음이 언제나 미움인 것은 아닙니다. 서운하다고 입을 닫기 전에,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한 번만 더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자식 사랑은 부부가 함께 짊어질 짐입니다. 혼자 몰래 지고 가면 그 무게는 결국 다른 한 사람의 어깨로 넘어갑니다. 서로의 노후를 지켜 주는 것, 그것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올가을 최 씨의 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가득 널렸습니다. 주말마다 내려온 아들이 서툰 솜씨로 경운기를 몰아 고추 포대를 실어 날랐습니다. 해 질 녘이면 최 씨는 창고 문을 열고 남편이 앉던 자리에 공구함을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이 마당의 고추를 더 붉게 물들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