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5:59

“손녀 등하굣길에 우산 씌워 줬는데..” 2년 뒤 손녀가 쓴 글 한 편에 울었다

맞벌이하는 자식을 대신해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가 많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작은 손을 잡고 걷던 시간은 고단해도 그 자체로 기쁨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품을 떠나기 시작하면, 그 많던 날들이 다 어디로 갔나 싶어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기도 합니다.

충청도 내륙의 한 도시에 사는 정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서른두 해 동안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다가 예순셋에 퇴직했습니다. 아내와 단둘이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고, 외동딸 부부는 걸어서 10분 거리 아파트에 삽니다. 딸은 종합병원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고, 사위는 공단의 부품 공장에서 일합니다.

퇴직하던 해 봄, 딸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염치없지만 애 학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밤 근무 끝나고 오면 아침에 눈이 안 떠져요.” 정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운전대 놓으니 심심하던 참이다. 내가 하마.” 그해 손녀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정 씨는 시장 골목 우산 가게에서 노란 장우산 하나를 골랐습니다. 주인이 “검정이 때도 안 타고 좋은데요” 하고 권했지만, 정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비 오는 날엔 노란색이 제일 잘 보여요. 버스를 30년 넘게 몰아 보니 알아요.”

그 뒤로 비가 오는 날이면 정 씨는 노란 우산을 펴 들고 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왔습니다. 교문이 가까워지면 버스 안내 방송을 흉내 냈습니다. “이번 정류장은 우리 손녀 학교, 학교입니다. 내리실 손님은 공부 열심히 하세요.” 손녀는 그 소리가 우스워 매번 깔깔 웃었습니다.

정 씨는 늘 차가 다니는 쪽에서 걸었고, 우산은 언제나 손녀 쪽으로 기울였습니다. 집에 오면 정 씨의 왼쪽 어깨만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셔츠를 빨랫줄에 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우산을 혼자 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기울여요.” 정 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애가 감기 들면 딸이 근무를 못 나가잖아.”

손녀가 3학년이던 여름에는 태풍이 올라와 길에 빗물이 발목까지 찼습니다. 정 씨는 손녀를 업고 걸었습니다. 등에 업힌 손녀가 우산을 받쳐 주겠다며 손잡이를 꼭 쥐었지만, 팔이 짧아 우산은 자꾸 옆으로 기울었습니다. 정 씨는 그날 온몸이 젖었어도 등이 따뜻했습니다.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손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입학하던 날 손녀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 이제 혼자 갈 수 있어. 안 데리러 와도 돼.” 그 뒤로 손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고, 할아버지가 말을 걸면 “응”, “아니” 하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정 씨는 습관처럼 노란 우산을 들고 학교 앞 모퉁이에서 기다렸습니다. 손녀는 친구들과 투명 우산을 나눠 쓰고 걸어오다 할아버지를 보고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쳤습니다. 정 씨는 혼자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 구석에 우산을 세워 두었습니다. 아내가 다독였습니다. “다 그럴 나이예요. 우리 딸도 중학교 때 그랬잖아요.” 정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운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10월 말, 손녀네 학교에서 축제가 열렸습니다. 딸은 근무가 바뀌어 갈 수 없게 되자 정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손녀는 아침 밥상에서 숟가락을 든 채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올 거면 오든가. 근데 학교에서 아는 척은 하지 마.”

그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정 씨는 신발장 구석에 있던 노란 우산을 꺼내 들었습니다. 운동장에는 떡볶이 부스가 늘어서 있었고, 강당에서는 아이들의 밴드 공연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정 씨는 아는 척하지 말라던 손녀의 말이 떠올라 구경꾼들 틈에 조용히 서 있다가, 비를 피해 본관 2층 복도로 올라갔습니다.

복도 벽에는 ‘교내 백일장 수상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원고지 액자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맨 앞, 가장 큰 액자 위에 ‘대상’이라는 금색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제목을 읽는 순간 정 씨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할아버지의 노란 우산’. 그 아래에 2학년 손녀의 반과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면 노란 우산을 들고 왔다. 버스 기사였던 할아버지는 노란색이 제일 잘 보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늘 차가 다니는 쪽에서 걸었고, 우산은 늘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집에 오면 할아버지 왼쪽 어깨만 젖어 있었다. 나는 그걸 6년 동안 다 보았다.”

글은 이어졌습니다. “태풍이 오던 날 할아버지 등에 업혀 우산을 들어 주려고 했는데, 팔이 짧아서 자꾸 기울었다. 중학생이 된 뒤로 나는 할아버지한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왔다. 그래도 이제 내 팔은 충분히 길어졌다. 이제 내가 할아버지 우산을 들어 줄 차례다.”

정 씨는 복도에 선 채 안경을 벗었습니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알 너머로 원고지 칸이 일렁였습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국어 선생님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혹시 이 학생 할아버님이세요? 심사하면서 선생님들이 다 울었어요. 그런데 본인은 할아버지께는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계단 쪽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올라오던 손녀가 할아버지를 보고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아, 진짜…… 그거 보면 안 되는데.” 친구들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자, 손녀는 한참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그동안 말 안 해서 미안해. 고맙다는 말이 자꾸 쑥스러워서.”

정 씨는 젖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니가 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 손녀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떻게 잊어. 할아버지 어깨, 맨날 한쪽만 젖어 있었잖아.”

축제가 끝나고 교문을 나설 무렵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정 씨가 우산을 펴려 하자 손녀가 손잡이를 가져갔습니다. 손녀는 노란 우산을 할아버지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안쪽으로 걸어.” 집에 닿았을 때 젖어 있는 것은 손녀의 오른쪽 어깨였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침묵은 마음이 떠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꺼낼 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가 등을 돌린 것처럼 보여도, 함께 걸었던 날들은 아이 마음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말이 없어졌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자란 팔로 우리 쪽에 우산을 기울여 줄 날이 옵니다.

초겨울 비가 내리던 저녁, 정 씨는 노인복지관 서예 교실을 마치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은행잎이 빗물에 젖어 길 위에 노랗게 깔려 있었습니다. 현관 앞에는 학원 가방을 멘 손녀가 노란 우산을 펴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정 씨는 손녀가 기울여 준 우산 아래로 들어가 젖은 은행잎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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