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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귄 친구 사이에서는 종이 한 장이 오히려 정을 깎는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차용증을 쓰자고 하면 친구를 못 믿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친구 마음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면, 빌려준 돈보다 그 거리가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 재래시장 입구에서 서른두 해째 작은 열쇠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열쇠를 깎고 도어록을 달며 아내와 함께 남매를 키웠습니다. 아들은 수도권에서 회사에 다니고, 딸은 지난해 시집을 갔습니다.
황 씨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40년을 함께한 친구 정 씨가 있습니다. 고3 겨울, 황 씨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정 씨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발인 날에는 맨 앞줄에 서서 끝까지 관을 멨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경조사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정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황 씨는 가게 문을 사흘 닫고 장례식장을 지켰습니다. 정 씨 딸이 대학에 붙었을 때도 황 씨는 봉투를 챙겼습니다. 아내가 “당신 부조 장부에 정 씨 이름만 열 번은 넘겠다” 하고 웃을 정도였습니다.
10년 전 봄, 정 씨가 다니던 부품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쉰셋에 일자리를 잃은 정 씨는 한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주 한 병을 들고 열쇠 가게에 찾아왔습니다.
“시장 뒷골목에 국숫집 자리가 났는데, 보증금이 모자란다. 집사람 손맛 믿고 한번 해 보고 싶은데….” 정 씨는 말끝을 흐리며 술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황 씨가 얼마냐고 묻자 정 씨는 한참 만에 “2500만 원”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돈은 황 씨가 딸 혼수 자금으로 7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하루 매출에서 만 원, 이만 원씩 떼어 넣은 돈이었습니다. 그날 밤 사정을 들은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양반, 당신 아버님 관 멘 사람이잖아요.”
다음 날 황 씨는 적금을 깨 정 씨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정 씨가 종이를 꺼내 차용증을 쓰려 하자 황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종이냐. 장사 잘되면 그때 갚아라.” 정 씨는 눈을 내리깐 채 봉투를 한참 쥐고 있었습니다.
국숫집은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잡았습니다. 멸치 육수에 직접 담근 김치를 내는 집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점심때면 시장 골목까지 줄이 섰습니다. 3년쯤 지나자 옆 가게를 터서 넓혔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잘될수록 정 씨는 황 씨와 멀어졌습니다. 예전처럼 열쇠 가게에 들러 믹스커피를 마시고 가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보증금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황 씨는 굳이 묻지 않았지만, 아내가 가끔 내쉬는 한숨은 모른 척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서운했던 것은 동창회였습니다. 연말 모임에서 정 씨는 황 씨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동창이 “너 국숫집 차릴 때 누가 밀어줬냐” 하고 묻자 정 씨는 술잔을 들며 말했습니다. “누가 밀어줘. 내가 맨손으로 다 했지.”
황 씨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찬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돈이야 못 받아도 그만인데, 사람이 저러면 안 되지.” 그 뒤로 황 씨는 동창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올가을 어느 저녁, 셔터를 내리려는데 정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우리 가게 문 연 지 딱 10년 되는 날이다. 잠깐 와 줄 수 있냐.” 몇 해 만에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부슬비가 내리는 저녁이었습니다. 국숫집 유리문에는 ‘오늘은 쉽니다’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안에는 불이 하나만 켜져 있었습니다. 정 씨 부부가 탁자 하나에 국수 두 그릇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려던 황 씨는 계산대 위 벽에서 눈을 멈췄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액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10년 전 이 가게의 첫 임대차 계약서였습니다. 보증금 2500만 원이라 적힌 칸 옆에 볼펜 글씨가 있었습니다. [이 돈은 내 친구 돈이다.]
정 씨는 서류 봉투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았습니다. 안에는 동업 계약서와 통장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계약서에는 가게 지분의 절반을 황 씨 몫으로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서류는 다 꾸며 놨다. 네가 서명만 하면 공동사업자로 올라간다.”
통장을 펼치자 10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30만 원, 나중에는 50만 원, 70만 원씩이었고, 모두 6000만 원이 모여 있었습니다. 표지에는 정 씨 글씨로 ‘황 씨 몫’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정 씨 아내가 말했습니다. “장사 끝나면 매일 밤 그날 몫을 봉투에 따로 담았어요. 이 사람이 그건 손도 못 대게 했어요.”
황 씨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동창회에선 왜 그랬냐. 나를 모르는 사람 보듯 했잖아.” 정 씨가 고개를 떨궜습니다.
“너 돈 빌려준 거 소문나 봐라. 사업한다, 병원비 모자란다 하며 손 벌리는 놈이 한둘이냐. 너는 거절 못 하는 사람이잖아. 몇 해 전 동창 하나가 친구 빚보증 섰다가 집 날린 거 너도 봤지. 너까지 그렇게 되는 꼴은 못 본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욕먹기로 했다.”
정 씨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네가 차용증 쓰지 말라던 날,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종이가 없으니 내가 평생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국수 그릇에서 오르는 김을 바라보다가 끝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열쇠를 깎느라 굳은살 박인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정 씨가 젓가락을 쥐여 주었습니다. “식는다. 우리 집 국수, 너 아직 제대로 한 그릇 안 먹어 봤잖아.”
황 씨는 통장만 받고 지분은 사양했습니다. “가게는 너희 부부가 땀 흘려 일군 거다. 대신 내 가게 문 닫는 날까지 점심은 여기서 먹으마.” 정 씨는 그래도 서류를 황 씨 가방에 억지로 밀어 넣었고, 두 사람은 10년 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액자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눈가를 훔치며 말했습니다. “그 양반, 역시 관 멘 사람이네요.”
사람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난 몇 마디로 다 알 수 없습니다. 멀어진 듯 보이는 거리가 실은 나를 지키려는 울타리일 때도 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먼저 단정하기보다 그 사람과 함께 걸어온 세월을 한 번쯤 떠올려 보세요. 다만 큰돈이 오갈 때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약속을 글로 남겨 두는 것이 서로의 정을 오래 지키는 길입니다.
첫눈이 내린 날 점심, 황 씨는 열쇠 가게에 ‘잠시 외출’ 팻말을 걸고 시장 뒷골목으로 향했습니다. 국숫집 창가 자리에는 정 씨가 미리 말아 둔 국수 한 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소복이 쌓였고, 두 친구는 김 서린 유리창 앞에 마주 앉아 오래도록 국수를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