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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 봉투에는 돈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도 곁에 있겠다는 약속이 같이 담깁니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 사이일수록 봉투 하나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오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시장 골목 안쪽에서 36년째 작은 철물점을 하고 있습니다. 못 한 봉지나 경첩 하나를 사 간 손님 집에도 직접 달아 주러 따라나서는 사람이라, 골목 사람들은 그를 ‘오 사장’보다 ‘오 기사’라고 더 자주 불렀습니다. 집에는 함께 가게를 지켜 온 아내와 서른셋 된 외동딸이 있습니다.
오 씨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고향 친구 황 씨가 있습니다. 둘은 한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4학년 겨울, 황 씨가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졌습니다. 그때 허리까지 물에 들어가 황 씨를 끌어낸 사람이 오 씨였습니다. 그날 둘은 오 씨네 아궁이 앞에서 젖은 바지를 말리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친구다” 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어른이 된 뒤 둘의 길은 갈렸습니다. 황 씨는 읍내에서 건축 자재 도매업을 크게 일으켰고,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 회장을 맡아 왔습니다. 오 씨는 시장 골목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오 씨는 황 씨네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습니다. 황 씨가 새 창고를 지을 때는 사흘 동안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선반을 짜 주었습니다. 황 씨가 이사하는 날에는 철물점 트럭을 몰고 갔습니다.
오 씨에게는 낡은 수첩이 한 권 있습니다. 스물아홉에 가게를 열던 해부터 받은 경조사와 낸 경조사를 날짜와 금액까지 빠짐없이 적어 온 수첩입니다. 35년 동안 그 수첩에 황 씨네 이름이 오른 것만 스무 번이 넘었습니다. 오 씨는 그중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10년 전 황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오 씨는 부고를 받자마자 철물점 셔터를 내리고 ‘사정상 사흘 쉽니다’라고 써 붙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사흘 내내 조문객 신발을 정리하고 상을 날랐고, 발인 날에는 운구까지 맡았습니다. 황 씨는 그날 오 씨 손을 붙잡고 “니 아니었으면 우짤 뻔했노” 하며 울었습니다.
3년 전 봄에는 황 씨의 아들이 장가를 갔습니다. 청첩장을 받은 날 저녁, 오 씨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번엔 100만 원 하자.” 아내가 놀라 눈을 크게 떴습니다. “여보, 우리 가게 한 달에 남는 게 얼만지 알면서요.” 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친구 아들 장가가는 기다. 우리 딸 시집갈 때 황 씨가 어디 그냥 오겠나.”
그 돈은 오 씨가 매달 조금씩 부어 온 적금을 깨서 마련했습니다. 은행에서 빳빳한 새 돈으로 바꿔 봉투에 넣고, 겉에는 정성껏 이름을 썼습니다. 황 씨는 식장에서 봉투를 받으며 오 씨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역시 니밖에 없다.”
그사이 동창회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황 씨는 오 씨가 모임에 나오면 “오 기사 왔나” 하고 반겼지만, 행사 천막 치기나 짐 나르기 같은 일은 늘 오 씨에게 맡겼습니다. 오 씨는 그래도 웃었습니다. 친구가 일을 맡기는 건 믿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올가을, 오 씨의 외동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35년 동안 남의 경조사만 챙겨 온 오 씨 집에 처음 찾아온 혼사였습니다. 황 씨는 식장 앞줄에 앉아 박수를 쳤고, 신랑 어깨를 두드리며 “장인어른 잘 모셔라” 하고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철물점 셔터를 반쯤만 올려 둔 채 오 씨와 아내는 안방 상 위에 축의금 봉투를 쏟아 놓았습니다. 아내가 봉투를 하나씩 열어 장부에 적으면, 오 씨는 돋보기를 쓰고 수첩을 뒤적였습니다. “이 사람한테는 우리가 저번에 얼마 했더라.” 고마운 이름이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은 한참씩 옛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아내의 손이 멈췄습니다. 두툼한 한지 봉투 겉에 황 씨의 이름이 반듯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는 봉투를 거꾸로 털어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불빛에 비춰 보아도 봉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보, 이거….” 아내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오 씨는 한참 동안 빈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바빠서 그랬겠지. 실수일 기다. 딸한테는 말하지 마라.” 그날 오 씨는 수첩에서 황 씨 이름 옆 금액 칸을 비워 두었습니다.
한 달 뒤, 읍내 한 식당 방에서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첫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이었습니다. 오 씨는 늘 하던 대로 점퍼 안주머니에 수첩을 넣고 나갔습니다. 동창들 경조사 소식을 그 자리에서 적어 두려고 챙기는 수첩이었습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 때, 한 동창이 오 씨에게 잔을 건넸습니다. “딸 시집보낸다고 고생 많았재.” 그 말을 받아 황 씨가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아, 맞다. 내가 그날 봉투에 돈 넣는 걸 깜빡했네. 근데 철물점 사장이 그걸 따지겠나?”
오 씨는 잔을 든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더 아픈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방 안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쟤는 원래 그런 거 안 따진다.” “맞다, 오 씨는 그런 사람 아이가.”
한 동창이 웃음 끝에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회장이 맨날 그카잖아. 오 씨는 부르면 오는 사람이라고. 일손 모자라면 철물점에 전화 한 통이면 된다꼬.” 다른 동창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말은 그날 처음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 씨만 모르는 사이, 수십 년 동안 자기가 그렇게 불려 왔던 것입니다.
오 씨는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황 씨 앞에 놓았습니다. 표지는 손때로 반들거렸고 모서리는 닳아 둥글어져 있었습니다. “35년 동안 적은 기다. 니네 집 일만 스물세 번이다. 나는 따지려고 적은 게 아이다. 잊지 않으려고 적었다.”
오 씨는 그 말만 남기고 일어섰습니다. 황 씨가 “어이, 농담 아이가, 앉아라” 하고 불렀지만 오 씨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오 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동창회 단체방을 열고 ‘나가기’를 눌렀습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한 번 누르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오 씨에게 아내가 수첩은 어쨌느냐고 물었습니다. 오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두고 왔다. 이제 남의 이름 적는 수첩 말고, 우리 식구 이름 적을 수첩이나 하나 사자.”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차가운 손을 오래 잡아 주었습니다.
며칠 뒤 황 씨에게서 돈이 든 등기 우편이 왔습니다. 오 씨는 봉투를 뜯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오 씨가 받고 싶었던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끝내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더 건넬 말은 없었습니다.
정을 셈하지 않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따지지 않는 사람’이라며 가볍게 여기는 자리라면, 거기에 계속 앉아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오래된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참고 넘길 필요는 없습니다. 남은 시간은 내 정성을 알아보는 사람들 곁에서 쓰셔도 됩니다. 그것도 나 자신을 아끼는 일입니다.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린 아침, 오 씨는 철물점 앞 골목에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었습니다. 건너편 국밥집과 떡집 앞까지 길을 터 주자 이웃들이 김이 오르는 커피를 들고 나왔습니다. 계산대 옆에는 딸 내외가 사 온 새 수첩이 놓여 있었고, 첫 장에는 ‘우리 식구 생일’이라는 글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