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0:47

“청년 외상값 250만원 안 받았는데..” 1년 뒤 개업 떡 접시 하나에 손이 떨렸다

밥장사를 오래 한 사람에게 밥은 돈보다 먼저 정입니다. 주머니 가벼운 손님 그릇에 밥을 한 주걱 더 얹고 장부에 외상을 달아 주는 일도 다 그 정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정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는 걸 알게 되면, 장사꾼의 마음은 밥값보다 더 크게 무너집니다.

정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수도권의 한 학원가 골목에서 25년째 백반집을 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여섯 개짜리 작은 가게지만, 김치찌개에 반찬 일곱 가지가 나오는 팔천 원짜리 백반으로 골목에서는 꽤 이름이 났습니다. 버스 정비 일을 하다 퇴직한 남편이 새벽 장보기를 맡고, 결혼한 외동딸은 지방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게 맞은편에는 4층짜리 고시원이 있습니다. 3년 전 봄, 그 고시원에 사는 스물여덟 살 청년 한 씨가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낡은 운동복 차림에 두꺼운 수험서를 끼고 온 한 씨는 백반 한 그릇을 국물까지 비우더니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밥 같네요.”

그날 이후 한 씨는 거의 매일 정 씨 가게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정 씨는 객지에서 혼자 시험 준비를 한다는 청년이 안쓰러워 계란말이를 한 줄 더 얹어 주고, 남은 찌개는 비닐에 담아 들려 보냈습니다. 한 씨는 정 씨를 ‘이모’라고 불렀고, 점심때 손님이 몰리면 알아서 빈 그릇을 치우고 물통을 채웠습니다.

한 씨는 주방 앞 자리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작은 공책을 펴 놓고 무언가를 적곤 했는데, 정 씨는 그게 공부 메모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모, 찌개에 멸치 말고 또 뭐 넣으세요?” 하고 물으면 정 씨는 “쌀뜨물 받아 놨다 붓고, 묵은지 국물 한 국자” 하며 다 일러 주었습니다. 공부하다 머리 식히느라 묻는 줄 알았습니다.

몇 달 뒤 한 씨가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이모, 이번 달 집에서 보내 주는 돈이 늦어져서요. 장부에 좀 달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정 씨는 계산대 서랍에서 외상장부를 꺼내 한 씨 칸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송금이 늦는 달마다 외상이 붙었고, 갚는 날보다 다는 날이 많았습니다.

한 씨는 외상을 할 때마다 장부에 날짜와 금액을 적고 서명을 했습니다. 정 씨는 그 꼼꼼함이 기특했습니다. 남편이 “너무 퍼 주는 거 아니냐”고 하면 정 씨는 “공부하는 애 밥 굶기면 벌 받는다”며 말을 막았습니다.

작년 가을, 한 씨가 짐가방을 끌고 가게에 왔습니다. 시험은 끝내 붙지 못했고 고향에 내려가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장부를 넘겨 보니 2년 동안 쌓인 외상이 250만원이었습니다. 정 씨가 한 달 내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 손에 쥐는 돈과 맞먹는 액수였습니다.

한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모, 지금은 드릴 돈이 없어요. 죄송해요.” 정 씨는 장부를 덮고 한 씨 손에 따뜻한 도시락을 쥐여 주었습니다. “취직하면 갚아. 못 갚아도 이모는 원망 안 한다. 밥 잘 챙겨 먹고 꼭 잘돼서 와.” 한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 뒤로 한 씨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정 씨는 가끔 주방 앞 빈자리를 보며 취직은 했을까, 밥은 먹고 다닐까 걱정했습니다. 남편이 “250만원이면 당신 손목 파스 값이 몇 년 치냐”고 투덜대도 정 씨는 “잘 살면 됐지”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그사이 맞은편 고시원 1층의 오래된 문구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여름 내내 그 자리에서 공사 소리가 났지만, 정 씨는 또 카페가 들어오나 보다 했습니다.

올해 10월 첫 월요일,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점심 장사를 앞두고 정 씨가 찌개 냄비에 묵은지를 썰어 넣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렸습니다. 말끔한 셔츠에 앞치마를 두른 한 씨가 랩을 씌운 시루떡 접시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이모, 저 왔어요.” 정 씨는 칼을 내려놓고 뛰어나갔습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취직했구나. 얼굴이 훤해졌네.” 한 씨는 떡 접시를 내밀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취직은 아니고요, 저 가게 차렸어요. 바로 저 앞이요.”

한 씨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문구점 자리에 새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집밥 백반, 김치찌개 전문.’ 유리문에 붙은 메뉴판은 김치찌개 백반부터 제육볶음, 계란말이 추가까지 정 씨 가게 벽에 붙은 것과 순서까지 똑같았습니다. 값만 천 원씩 쌌습니다.

“이모 김치찌개 비법, 어깨너머로 다 배웠어요. 쌀뜨물에 묵은지 국물 한 국자, 맞죠?” 한 씨는 장난스럽게 덧붙였습니다. “2년 동안 이모네 반찬 가짓수랑 찌개 끓이는 순서를 공책에 다 적어 뒀거든요. 그게 제 진짜 공부였어요.”

정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 씨는 “앞으로 이웃끼리 잘 지내요” 하고 가게를 나갔습니다. 외상값 이야기는 끝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정 씨는 떡 접시를 든 채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찌개가 끓어 넘치는데도 손이 떨려 접시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시루떡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주방 앞에 펼쳐 놓던 공책, “찌개에 뭐 넣으세요?” 하던 목소리가 하나하나 다른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온 남편이 사정을 듣더니 얼굴이 벌게졌습니다. “당장 가서 따져야지.” 정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날 밤 정 씨는 외상장부를 꺼내 한 씨 칸을 찢으려다 손을 멈췄습니다. 날짜마다 적힌 한 씨의 서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정 씨는 동네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오 법무사는 장부를 넘겨 보더니 차분히 말했습니다. “찌개 맛이나 메뉴 구성은 법으로 막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외상값은 다릅니다. 본인 서명이 있으니 근거가 됩니다. 음식값은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짧은 편이니 미루지 마시고 내용증명으로 먼저 정식 청구를 하세요. 그래도 안 갚으면 소액 사건으로 법원에 청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 씨는 그 자리에서 내용증명을 썼습니다. 날짜별 외상 내역과 합계 250만원, 한 달 안에 갚아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줄에는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취직하면 갚으라 했으니, 가게를 차렸으면 갚을 때가 된 것입니다.’

내용증명을 받은 한 씨는 며칠 동안 정 씨 가게 앞을 고개를 돌린 채 지나다녔습니다. 그리고 보름 뒤, 정 씨 통장에 250만원이 들어왔습니다. 짧은 인사 한 줄도 없었습니다. 정 씨는 장부의 한 씨 칸에 ‘완납’ 두 글자를 적고 조용히 덮었습니다.

그날 저녁 정 씨는 두꺼운 종이에 매직으로 ‘외상 사절’이라고 썼습니다. 25년 동안 한 번도 붙여 본 적 없는 글자였습니다. 계산대에 종이를 붙이는 아내를 보며 남편이 물었습니다. “괜찮겠소? 단골들 서운해할 텐데.” 정 씨가 대답했습니다. “밥은 지금처럼 넉넉히 퍼 줄 거예요. 대신 장부는 이제 안 써요. 정은 그릇에 담고, 돈은 그날그날 받을래요.”

한 달이 지났지만 정 씨 가게 손님은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단골들은 “메뉴판은 똑같은데 찌개 맛이 다르더라” 하며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가을마다 배추를 절이는 손과 새벽마다 쌀뜨물을 받아 두는 부지런함은 공책에 다 적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을 베푸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정에도 기록과 끝맺음이 있어야 합니다. 적지 않은 돈이 외상으로 쌓인다면 날짜와 금액, 서명을 남겨 두고, 받을 돈은 너무 오래 묵히지 마세요. 장부 한 권이 내 마음과 내 생업을 함께 지켜 줍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일을 유난히 궁금해하며 꼼꼼히 받아 적는다면, 그 공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배신 앞에서 무너지기보다 담담히 정리하는 것, 그것도 오래 일한 사람의 지혜입니다.

11월 초, 첫서리가 내린 새벽에 정 씨는 남편과 함께 가게 뒷마당에서 배추 백 포기를 절였습니다. 내년 봄 찌개에 넣을 묵은지였습니다. 김이 오르는 찌개 냄비 옆 계산대에는 ‘외상 사절’ 종이가 붙어 있었고, 첫 손님 밥상에는 여느 때처럼 계란말이가 한 줄 더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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