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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봐 혼자 안고 가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좋은 뜻으로 덮어 둔 일이 가장 슬픈 날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경상도 바닷가의 한 소도시에 사는 장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재래시장 생선 골목 끝에서 31년째 떡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세 시에 불린 쌀을 빻고, 시루에 김이 오르면 백설기와 시루떡을 썰어 좌판에 냅니다. 남편은 시외버스를 몰다 정년퇴직한 뒤로 떡집 일을 거들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모두 출가해 다른 도시에 삽니다.
남편에게는 열다섯 살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시동생은 중학생 때부터 형 부부의 신혼 단칸방에서 지냈습니다. 장 씨는 떡을 찌는 틈틈이 시동생 도시락을 쌌습니다. 시동생이 군대에 가자 면회 날마다 꿀떡을 한 보따리씩 쪄서 들고 갔습니다. “형수님 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시동생은 떡을 입에 가득 넣고 웃었습니다.
시동생이 장가갈 때 폐백 떡과 이바지 떡도 장 씨가 밤을 새워 만들었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당신 아니었으면 저놈 사람 구실 못 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장 씨에게는 남편도 모르는 적금 통장이 몇 개 있었습니다. 떡을 팔고 남은 돈에서 하루 만 원, 이만 원씩 떼어 20년 동안 부은 비상금이었습니다.
8년 전 겨울밤, 가게 셔터를 내리려는데 시동생이 찾아왔습니다. 차린 식당이 망하면서 사채를 끌어 썼는데, 이자가 불어 3,500만 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시동생은 떡판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형수님, 이번 달 안에 못 갚으면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대요. 형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 주세요. 형 심장 안 좋은 거 아시잖아요. 몇 년이 걸려도 꼭 갚을게요.”
남편은 그 전해에 협심증으로 시술을 받은 터였습니다. 장 씨는 밤새 뒤척이다 이튿날 은행에 갔습니다. 만기가 다른 적금을 차례로 깨서 석 달 동안 다섯 번에 걸쳐 사채업자 계좌로 돈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송금을 마친 날, 시동생은 “형수님께 빌린 3,500만 원 반드시 갚겠습니다”라고 쓴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장 씨는 영수증과 그 종이를 고무줄로 묶어 장롱 맨 아래 한복 상자에 넣었습니다.
처음 한두 해는 시동생이 명절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새 차를 뽑았다는 소식이 들려도 갚겠다는 말은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 씨는 서운했지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남편이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환하게 웃었기 때문입니다.
올가을, 남편이 새벽에 떡 시루를 옮기다 쓰러졌습니다. 구급차가 왔지만 병원에 닿기 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일흔이었습니다.
발인 날 아침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접객실에서 조문 온 시장 상인들이 마지막 국밥을 뜨고 있을 때, 밤새 술을 마신 시동생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다들 아셔야 할 게 있어요. 우리 형수가 형 몰래 떡집 돈을 빼돌려 왔습니다. 형은 평생 버스 몰고 시루 나르다 죽었는데 그 돈 다 어디 갔습니까? 형 사망보험금, 우리 몫도 나눠야 맞지요.”
접객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상인들이 수군거렸고, 아들이 얼굴을 붉히며 일어났습니다. 장 씨는 아들의 팔을 붙잡아 앉혔습니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손이 떨렸습니다. “도련님, 오늘은 형님 보내 드리는 날이에요. 집에 가서 얘기합시다.”
남편을 납골당에 모시고 식구들은 장 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동생은 거실에 앉자마자 다시 보험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장 씨는 말없이 안방에 들어가 한복 상자를 열었습니다. 고무줄로 묶은 종이 뭉치가 8년 전 그대로 있었습니다.
장 씨는 그것을 상 위에 풀어 놓았습니다. 송금 영수증 다섯 장과 시동생 글씨가 적힌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도련님 말이 맞아요. 나는 형님 몰래 돈을 뺐어요. 20년 동안 떡값 아껴 모은 3,500만 원.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도련님이 제일 잘 알지요.”
아들과 딸이 영수증을 한 장씩 집어 들었습니다. 날짜와 금액, 받는 사람 이름까지 또렷했습니다. 시동생이 “형도 다 알고 있었잖아요” 하고 중얼거리자 장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형님은 끝까지 몰랐어요. 도련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시동생은 외투를 챙겨 도망치듯 나갔습니다.
사망보험금은 계약할 때 정해 둔 수익자가 받는 돈이고, 남편은 오래전에 아내를 수익자로 해 두었습니다. 처음부터 나눠 달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장 씨는 거실에 놓인 남편 영정 앞에 앉았습니다. “여보, 당신 동생 지켜 준다고 당신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당신은 동생 자랑만 하다 갔는데, 나는 끝내 말을 못 했네요.” 장 씨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새벽까지 울었습니다.
사십구재를 지낸 다음 날, 장 씨는 시장 근처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법무사 최 씨는 종이 뭉치를 살펴보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빌렸다고 직접 쓴 종이가 있으니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내용증명은 돈을 강제로 받아 내는 서류는 아니지만, 언제 무엇을 요구했는지 기록으로 남습니다.” 장 씨는 3,500만 원을 돌려 달라는 내용증명을 시동생 집으로 보냈습니다.
동서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형님, 그래도 한집안인데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장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동서, 한집안이라 8년을 참았어. 그런데 형님 관 앞에서 나를 도둑으로 만든 날, 그 집안과 나는 끝났어.” 장 씨는 그 뒤로 시댁 제사에 가지 않고, 자식들과 남편 제사만 따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숨긴 돈이라도 기록만큼은 꼭 남겨 두세요. 영수증 한 장, 손글씨 한 줄이 훗날 내 이름을 지켜 줍니다.
그리고 비밀이 늘 상대를 지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키려던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비밀을 감당하는 몫은 고스란히 남은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첫눈이 내린 아침, 장 씨는 한 달 넘게 닫아 두었던 떡집 셔터를 올렸습니다. 시루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자 생선 골목 상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장 씨는 갓 찐 백설기 첫 조각을 계산대 옆 남편 사진 앞에 놓고 앞치마 끈을 단단히 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