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9:20

“남편 몰래 동생 빚 2500만원 대줬는데..” 49재 날 남편 서랍 속 수첩에 펑펑 울었다

부부 사이에도 끝내 꺼내지 못하는 돈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정 식구 일로 쓴 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남편 보기 미안해서, 친정 흉이 될까 봐 평생 혼자 품고 사는 아내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충청도의 한 강변 도시에 사는 윤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스물여섯에 시집와 40년 동안 살림만 하며 남매를 키웠습니다. 남편은 읍내 제지 공장에서 35년을 일하고 정년퇴직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딸은 같은 도시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삽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셈이 꼼꼼한 사람이었습니다. 월급날이면 생활비 봉투를 건네며 “가계부는 꼭 적어 둬요” 한마디만 했습니다. 윤 씨는 그 생활비로 장을 보고 남은 천 원, 만 원을 모아 비상금 통장에 넣었습니다. 콩나물값을 깎고 버스 두 정거장을 걸어 다니며 20년 동안 모은 돈이 2500만 원이었습니다.

윤 씨에게는 여덟 살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밭일을 나가면 윤 씨는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숙제를 했습니다. 윤 씨가 시집가던 날 열여덟 살 동생은 대문 기둥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첫 월급을 타서는 누나에게 자개 손거울을 사 왔습니다. 그 손거울은 지금도 윤 씨 화장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남편과 동생은 늘 서먹했습니다. 명절에 마주 앉아도 술잔만 오갈 뿐 말이 없었습니다. 신혼 때 남편이 지나가듯 한 말도 윤 씨 마음에 오래 박혀 있었습니다. “우리 형편에 남 도울 처지는 못 돼요.”

20년 전 봄, 친정어머니에게서 울먹이는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이 꾸리던 자동차 정비소가 거래처 부도로 대금을 떼였다고 했습니다. 급한 불을 끄려고 빌린 사채는 25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습니다. 빚쟁이들이 정비소에 찾아와 공구를 집어 던지고 갔다고 했습니다.

윤 씨는 시장 뒤 찻집에서 동생을 만났습니다. 동생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누나, 매형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내가 무슨 낯으로 매형을 봐.” 윤 씨는 동생의 기름때 묻은 손을 잡았습니다. “말 안 한다. 대신 다시는 그런 돈 손대지 마라.”

윤 씨는 석 달에 걸쳐 비상금 통장에서 1000만 원, 800만 원, 700만 원을 찾아 동생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마지막 돈을 건넨 날에는 통장을 장롱 깊숙이 밀어 넣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는 꺼내 보지 않았습니다. 바닥난 숫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동생은 몇 해 만에 정비소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형편이 펴자 봉투를 들고 찾아왔지만 윤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무렵부터 일요일에도 공장 특근을 나갔고, 용돈을 아낀다며 30년 피운 담배를 끊었습니다. 윤 씨는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찔렸습니다. 명절에 남편과 동생이 한 상에 앉으면 혹시 무슨 말이 나올까 숟가락 든 손이 떨렸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올여름, 일흔의 남편이 새벽 산책길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윤 씨는 그 일을 남편에게 끝내 털어놓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윤 씨는 동네 절에서 49재를 마치고 딸과 함께 남편 방을 정리했습니다. 책상 맨 아래 서랍에서 고무줄로 묶인 손바닥만 한 수첩이 나왔습니다. 갈색 표지는 닳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앞장에는 남편 글씨로 ‘가계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빠도 가계부를 썼어?” 딸이 웃으며 수첩을 펼쳤다가 이내 웃음을 거두었습니다. 첫 장에는 20년 전 봄 날짜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장모님 전화. 처남 사채 2500. 집사람한테 묻지 말 것. 친정 일로 자존심 상할라.’

다음 장부터는 윤 씨 비상금 통장의 날짜와 금액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4월 2일 1000만 원 출금.’ 그 아래에는 ‘5월부터 매달 채움’이라는 글씨가 있었고, 다달이 넣은 돈이 한 줄씩 적혀 있었습니다. 800만 원과 700만 원 아래에도 똑같았습니다. 수첩을 든 윤 씨의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이 양반이… 이걸 다 알고 있었다고?”

뒤쪽에는 12년 전 날짜와 함께 ‘다 채움. 이제부터는 집사람 몫’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한 줄이 남아 있었습니다. ‘처남 일은 끝까지 모른 척할 것.’

이튿날 윤 씨는 장롱 속 통장을 꺼내 들고 딸과 은행에 갔습니다. 오래 정리하지 않은 통장이라 창구 직원 정 씨가 거래 내역서를 따로 뽑아 주었습니다. 남편 이름으로 들어온 입금이 몇 장에 걸쳐 빼곡했습니다. 정 씨가 화면을 확인하며 말했습니다. “고객님, 지금 잔액이 4127만 원입니다.”

윤 씨는 의자 손잡이를 붙잡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내가 다 찾아 썼는데….” 처음 모았던 2500만 원보다 1600만 원 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딸이 엄마 어깨를 감싸며 울먹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일요일마다 공장 나간 게 이거였나 봐. 담배 끊은 것도.”

그날 저녁, 소식을 들은 동생이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수첩을 넘겨 보던 동생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누나, 정비소 다시 열었을 때 공장 트럭들이 죄다 우리 집으로 수리를 받으러 왔어. 그게 매형이 보낸 거였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매형 앞에서 눈만 피했는데.”

윤 씨는 남편 영정 앞에 수첩과 통장을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여보, 나는 당신 몰래 한 줄만 알았어요. 당신은 나 몰래 다 덮어 주고 있었네요.” 40년 동안 한 번도 소리 내 울지 않던 윤 씨가 그날 처음으로 펑펑 울었습니다. 동생도, 딸도 그 곁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윤 씨는 그 통장에 손대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장 보고 남은 돈을 매달 조금씩 보태고 있습니다. “이건 당신이 나한테 준 마지막 생활비니까요.”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아내는 남편의 시곗줄을 사려고 머리카락을 팝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빗을 사려고 시계를 팝니다. 서로 몰래 내준 것이 엇갈렸지만, 그 엇갈림 덕분에 두 사람의 사랑은 더 또렷해집니다.

부부 사이에 말하지 못한 돈이 있다면 너무 오래 혼자 짊어지지 마세요. 곁에 있는 사람은 어쩌면 이미 알고, 말없이 그 무게를 나눠 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른 척해 주는 것도 깊은 사랑의 한 모습입니다.

올가을 윤 씨는 동생과 함께 강변 둑길을 걸었습니다. 남편이 새벽마다 걷던 길이었습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깔린 길 끝으로 강물이 저녁 햇살에 반짝였습니다. 윤 씨는 외투 주머니 속 낡은 수첩을 가만히 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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