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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주려고, 혹은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봐 혼자 짊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은 선의가 엉뚱한 사람의 공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스물두 해째 상가 건물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대걸레와 양동이를 챙겨 집을 나섭니다. 남편은 30년 가까이 작은 인쇄소를 꾸렸고, 석 달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가까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무뚝뚝했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신혼 시절 조 씨가 빙판길에 발목을 접질리자, 남편은 인쇄소 문을 닫고 조 씨를 업은 채 병원까지 이십 분을 걸었습니다. 조 씨가 청소 일을 시작한 첫겨울에는 말없이 털장갑 두 켤레를 사 와 신발장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조 씨는 맏며느리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동생이 장가갈 때는 모아 둔 곗돈으로 혼수 이불을 해 주었고, 두 시누이의 산바라지도 도맡았습니다. 명절이면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사흘씩 집 안에 배어 있었습니다.
20년 전, 인쇄소가 큰 거래처를 잃으면서 남편은 사채에 손을 댔습니다. 이자가 이자를 낳아 빚은 6,000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밤마다 독촉 전화가 울렸고, 남편은 술에 취해 들어와 “다 내 탓이오. 당신 볼 낯이 없소” 하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조 씨에게는 친정아버지가 물려준 충청도 산골의 밭 한 뙈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너 살다 힘들 때 쓰거라” 하며 따로 떼어 준 땅이었습니다. 조 씨는 그 밭을 6,000만 원에 팔았습니다. 처가 땅까지 팔게 했다는 걸 알면 남편이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채 사무실에 혼자 가기가 무서웠던 조 씨는 시동생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돈을 건네고 완납 영수증을 받아 나오는 길에 조 씨가 말했습니다. “삼촌, 형님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요. 그 사람 자존심 상하면 못 버텨요.” 시동생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걱정 마세요, 형수님.” 조 씨는 밭 매매계약서와 영수증을 친정어머니가 물려준 반짇고리 밑바닥에 넣어 두었습니다.
빚이 사라진 뒤 남편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은 시동생 앞에서 유난히 쩔쩔맸습니다. 시동생이 사업 자금이 모자란다고 하면 적금을 깨서라도 보탰고, 명절이면 두툼한 봉투를 따로 챙겼습니다.
조 씨가 서운한 마음에 한마디 하면 남편은 늘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우한테는 내가 갚을 게 있소. 묻지 마시오.” 조 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남편이 시동생에게 건넨 돈은 어림잡아도 수천만 원이었습니다.
남편이 떠나고 석 달이 지난 11월 초, 찬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조 씨는 딸과 함께 안방 자개장롱을 열었습니다. 남편의 양복과 겨울 점퍼를 하나씩 꺼내 개던 딸이 장롱 맨 아래 칸에서 누렇게 바랜 서류 봉투를 찾아냈습니다.
봉투 안에는 각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삐뚤빼뚤한 글씨였습니다. [아우가 내 빚 6000만원을 갚아 준 은혜로, 이 집의 절반을 아우에게 넘긴다.] 날짜는 20년 전 그해 겨울이었고, 남편 이름 옆에 도장이 붉게 찍혀 있었습니다.
조 씨는 각서를 든 채 방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엄마, 이게 무슨 소리예요? 삼촌이 아빠 빚을 갚았어요?” 조 씨는 대답 대신 반짇고리를 꺼내 바닥을 들췄습니다. 빛바랜 밭 매매계약서와 영수증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영수증에는 돈을 갚은 사람으로 조 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남편이 20년 동안 시동생 앞에서 쩔쩔맸던 까닭이 그제야 풀렸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친정 밭을 판 줄 모른 채, 아우가 자기를 살렸다고 믿고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큰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유품 정리하다 오빠 서류 같은 거 안 나왔어요? 장롱에 뭐 있을 거라던데.” 조 씨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시누이는 그 각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시동생이 두 시누이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시동생은 거실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습니다. “형수님, 형님이 써 준 각서 보셨지요? 장례도 끝났으니 이제 정리하셔야지요. 집 절반은 제 몫입니다.”
조 씨는 각서와 영수증을 상 위에 나란히 펼쳤습니다. “삼촌, 그 돈 내가 갚은 거 삼촌이 제일 잘 알잖아요. 그날 사채 사무실에 같이 간 사람이 삼촌이에요.” 시동생은 눈을 피했습니다. “형님한테 비밀로 해 달라면서요. 형님이 고맙다고 써 준 걸 제가 어쩝니까.”
작은시누이가 거들었습니다. “언니, 우리도 오빠한테 다 들었어요. 오빠가 그렇게 하기로 한 거잖아요.” 그 한마디에 조 씨는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20년 동안 그 거짓말을 알면서 남편의 봉투를 받아 왔고, 남편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 씨는 서류를 챙겨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맡은 변호사는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각서가 있다고 곧바로 집 절반이 넘어가는 건 아닙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받아 낸 각서라면 다퉈 볼 수 있고, 오래된 약속은 시효도 따져 봐야 합니다. 실제로 누가 돈을 갚았는지 보여 주는 서류가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조 씨는 아들딸과 함께 남편 명의의 집을 상속 절차대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각서에 따를 수 없다는 뜻을 담은 내용증명을 시동생에게 보냈습니다. 영수증과 밭 매매계약서 사본도 함께 넣었습니다. 그 뒤로 시동생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한 달 뒤, 시어머니 제사를 앞두고 조 씨는 큰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머님 제사는 고모들이 모셔요. 남편 제사는 내가 아이들이랑 지낼게요. 맏며느리 노릇은 오늘로 내려놓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조 씨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청소 동료 오 씨가 말했습니다. “형님, 그 영수증 버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조 씨는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남편한테는 끝까지 말을 못 했는데, 종이 한 장이 내 편을 들어 주네요.”
좋은 뜻으로 숨긴 일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거짓말이 들어설 자리가 됩니다. 배우자를 위해 큰돈을 썼다면 당장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류만큼은 꼭 챙겨 두고, 때가 되면 한 번은 털어놓으세요.
가족이 내미는 각서나 약속도 겉만 보고 따를 일은 아닙니다. 정은 지키되, 내 몫과 내 이름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리기 전, 조 씨는 딸과 함께 충청도 친정 마을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산소 아래로 예전 그 밭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들깨를 거두고 난 빈 밭 위로 늦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았고, 산자락에는 마른 억새가 흔들렸습니다. 조 씨는 아버지 묘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해가 기울 때까지 그 밭을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