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0:39

“세입자 월세 40만원 안 올렸는데..” 이삿날 2층 계단에서 드러난 세입자의 민낯

집을 세놓고 사는 사람에게 세입자는 남이면서도 남이 아닙니다. 한 지붕 아래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얼굴을 보다 보면 그 집 사정이 눈에 들어오고, 사정을 알고 나면 월세 몇만 원 올리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베푼 인심이 엉뚱한 사람의 주머니만 불려 주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임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열아홉에 대패를 잡은 뒤 40년 넘게 목수로 살았습니다. 젊어서는 한옥 공사판을 따라다녔고, 나이 들어서는 동네 집수리와 붙박이장 짜는 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쉰 무렵 서울 변두리 동네에 낡은 단독주택을 사서 3층짜리 다가구 주택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골조는 시공업자에게 맡겼지만 마루와 문틀, 계단 난간은 모두 임 씨가 직접 깎고 짰습니다.

임 씨 부부는 1층에 살고 2층과 3층은 세를 놓았습니다. 아내는 동네 미용실에서 25년을 일하다 무릎이 상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들은 지방 공장에 다니고, 출가한 딸은 이웃 동네에 삽니다. 월세는 부부의 노후 생활비에서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10년 전 봄, 2층에 최 씨가 들어왔습니다. 마흔 중반의 최 씨는 계약하던 날 임 씨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어르신, 하던 식당이 망해서 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애들 학교 때문에 이 동네를 떠날 수가 없어서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었습니다. 그때도 시세보다 조금 싼 값이었습니다.

최 씨는 붙임성이 좋았습니다. 임 씨가 연장 가방을 메고 나서면 달려 나와 받아 들었고, 비 오는 날이면 막걸리 두 병을 들고 1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르신 손으로 지은 집이라 그런지 겨울에도 외풍이 하나도 없어요.” 그 말에 임 씨는 괜히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어느 겨울밤에는 2층 보일러가 멈췄습니다. 임 씨는 잠옷 바람으로 올라가 얼어붙은 배관을 녹이며 새벽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다음 날 최 씨는 귤 한 상자를 들고 와서 말했습니다. “어르신 아니었으면 애들 감기 들 뻔했습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임 씨는 2층 아이들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최 씨는 “애들이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요”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2년마다 계약을 새로 할 때가 오면 최 씨가 먼저 사정을 꺼냈습니다. “어르신, 이번에 집사람이 수술을 해서요. 월세는 조금만 봐주시면….” 임 씨는 차마 올려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올리긴 뭘 올려. 사정 나아지면 그때 얘기하세.” 그렇게 40만 원은 1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동네에서 비슷한 집 월세는 70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아내는 가끔 가계부를 펴 놓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보, 3층은 두 번이나 올렸는데 2층만 10년째 그대로예요. 따져 보면 한 해에 몇백만 원이에요.” 명절에 올라온 아들도 거들었습니다. “아버지, 인정도 좋지만 이건 너무하세요.” 임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남의 살림 쪼들리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올리냐. 우리 먹고살 만하면 됐다.”

이상한 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층 계단으로 낯선 젊은이들이 자주 오르내렸고, 재활용 쓰레기는 한 집에서 나오는 양이라기엔 너무 많았습니다. 수도 요금도 3층의 두 배가 넘게 나왔습니다. 임 씨가 물으면 최 씨는 “조카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잠깐 지내요”, “가게 하던 시절 직원들이 들렀어요” 하고 둘러댔습니다. 임 씨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올가을, 최 씨가 이사를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르신, 형편이 조금 펴서 다른 데로 옮기게 됐습니다. 그동안 받은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임 씨는 섭섭하면서도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최 씨가 일어섰구나 싶어서, 이삿날 아침에는 아내에게 떡이라도 한 접시 챙기라고 일렀습니다.

이삿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흩뿌렸습니다. 골목 어귀에 작은 이삿짐 트럭이 서 있었고, 최 씨는 비닐을 씌운 상자를 나르느라 분주했습니다. 임 씨가 떡 접시를 들고 계단 아래에 서 있을 때였습니다. 2층에서 처음 보는 청년 셋이 커다란 캐리어를 덜컹덜컹 끌며 내려왔습니다.

청년들은 트럭 옆에 선 최 씨를 보자마자 둘러쌌습니다. “사장님, 우리 보증금은 언제 돌려주실 거예요? 오늘 나가라고 하셨으면 오늘 주셔야죠.” 다른 청년이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저 석 달 전에 100만 원 보냈어요. 월세도 45만 원씩 꼬박꼬박 냈고요.” 최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이따가, 이따가 얘기하자니까.”

임 씨는 떡 접시를 든 채 그 자리에 굳어 섰습니다. “학생, 사장님이라니. 이 집 주인은 난데.” 청년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네? 여기 셰어하우스 아니에요? 인터넷에 방이 하나씩 올라와 있던데요. 저희 셋 말고도 두 명이 더 살았어요.”

임 씨는 떡 접시를 계단에 내려놓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임 씨가 손수 깐 거실 마루 위로 얇은 석고보드 칸막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방 셋에 거실까지 다섯 칸으로 쪼개져 있었고, 합판 문마다 1번부터 5번까지 숫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칸막이를 세우느라 박은 못 자국이 벽마다 어지러웠습니다.

뒤따라 올라온 최 씨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어르신, 요즘은 다들 이렇게 해요. 어르신이 손해 보신 건 없잖아요. 월세는 한 번도 안 밀렸고요.” 임 씨는 그제야 지난 10년이 한 줄로 꿰어졌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던 낯선 얼굴들, 넘쳐 나던 쓰레기,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 씨의 아이들까지.

나머지 진실은 그날 오후 골목 부동산에서 드러났습니다. 부동산 윤 씨가 임 씨의 눈을 피하며 털어놓았습니다. “최 씨가 몇 해 전에 건너 동네 아파트를 샀어요. 그 집 2층에서 나오는 돈으로 대출을 갚는다는 말이 돌았죠. 어르신이 하도 최 씨를 아끼셔서 차마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골목에서 오래 장사한 이웃 몇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에 임 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방 하나에 40만~45만 원씩, 다섯 칸이면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됩니다. 최 씨는 임 씨에게 40만 원을 내고 나머지 차액을 10년 동안 챙겨 온 셈이었습니다. 임 씨가 깎아 준 월세는 고스란히 최 씨의 아파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임 씨는 최 씨를 1층으로 불렀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습니다. “손해 본 게 없다고 했나. 그래, 돈은 그렇다 치세. 10년 동안 자네 집 애들 감기 걱정하던 내 마음은 어디서 돌려받나.” 최 씨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임 씨는 하나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먼저 청년들의 보증금을 그 자리에서 최 씨가 돌려주게 했습니다. 아들이 알아본 바로는 집주인 동의 없이 남에게 다시 세를 놓는 것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가 되고, 칸막이를 뜯어 원래대로 되돌리는 비용은 보증금에서 뺄 수 있었습니다. 임 씨는 원상복구가 끝나면 남은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하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겼습니다.

이튿날 아침 임 씨는 오랜만에 연장 가방을 열었습니다. 칸막이를 하나씩 뜯어낼 때마다 그 뒤로 10년 전 자신이 깔아 둔 마루가 드러났습니다. 못 자국을 메우고 대패질을 다시 하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습니다. 아내가 물 한 잔을 건네며 물었습니다. “속상하죠?” 임 씨는 대팻밥을 털며 대답했습니다. “속은 상해도 내 집은 내가 다시 고치면 되지.”

이솝 우화 『농부와 뱀』에서 농부는 얼어 죽어 가는 뱀을 품에 넣어 녹여 주었다가, 몸이 따뜻해진 뱀에게 물리고 맙니다. 베푼 인심이 잘못이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베푸는지 살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세를 놓는 일도 결국 사람을 들이는 일입니다. 사정을 헤아려 주는 마음은 귀하지만, 한 해에 한두 번은 집 안을 직접 둘러보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웃어넘기지 말고 물어보세요. 눈을 뜨고 베푼 인심이라야 오래갑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린 아침, 임 씨는 새로 기름을 먹인 2층 마루를 마지막으로 닦고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골목 지붕마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고, 멀리 산자락도 희끗희끗 물들어 있었습니다. 마당에서는 아내가 김이 오르는 유자차 두 잔을 들고 임 씨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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