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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를 놓고 사는 사람에게 월세 몇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래도 형편이 어렵다는 세입자 앞에서는 올려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한 해, 두 해 그냥 넘기는 집주인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의 정이 돈보다 앞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의 한 변두리 도시에 사는 오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시장 골목에서 38년 동안 방앗간을 하다가 두 해 전 기계를 내려놓았습니다. 오 씨는 아내와 함께 2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위층에 살고, 아래층은 세를 놓았습니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서울 근교에서 살고 있습니다.
12년 전 봄, 1층에 한 씨 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중학생 아들 하나를 둔 집이었습니다. 계약서를 쓰던 날 한 씨 아내가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르신, 남편 사업이 잘못돼서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왔어요. 월세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때 동네 시세는 55만 원이었습니다. 오 씨는 40만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한 씨는 낡은 승합차를 몰고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왔습니다. 건물 관리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남의 건물 계단을 닦고 전등을 가는 고된 일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해 겨울 1층 보일러가 멈췄습니다. 오 씨는 세입자에게 한 푼도 보태라 하지 않고 140만 원을 들여 새것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이듬해 추석부터는 명절마다 방앗간에서 찧은 햅쌀을 한 가마씩 1층 현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내가 “우리 애들한테도 반 가마씩 보내는데” 하고 웃으면 오 씨는 “애 키우는 집은 쌀이 금방 떨어진다”고 대답했습니다.
5년째 되던 해,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 든 오 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다음 계약부터 5만 원만 올리면 어떻겠나.” 한 씨 아내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습니다. “어르신, 애가 내년에 고3이에요. 학원비도 겨우 대는데….” 오 씨는 그 자리에서 손을 내저었습니다. “없던 얘기로 하세.” 그 뒤로 오 씨는 다시는 월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명절에 올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버지, 요즘 1층 시세가 80만 원도 넘어요. 덜 받으신 돈만 따져도 수천만 원이에요.” 오 씨는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방앗간을 접고 나니 살림이 달라졌습니다. 지난봄 아내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을 때는 딸에게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오 씨는 1층 현관 앞을 지날 때면 그 집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한 씨는 여전히 낡은 점퍼 차림이었습니다. 그 집 아들이 곧 장가를 간다는데 결혼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싶었습니다.
여름이 끝나 갈 무렵, 한 씨 아내가 청첩장을 들고 2층에 올라왔습니다. “어르신 내외분은 꼭 와 주셔야 해요. 우리 애가 어르신 댁 쌀 먹고 컸잖아요.” 그날 저녁 오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아 봉투에 50만 원을 넣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많지 않으냐고 묻자 오 씨는 “12년 이웃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했습니다.
9월 마지막 토요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아내는 무릎이 아파 집에 남았고, 오 씨는 20년 된 감색 양복을 꺼내 입고 혼자 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예식장은 시내 한복판의 호텔이었습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고, 버진로드 양옆으로 흰 꽃이 사람 키만큼 쌓여 있었습니다. 오 씨는 혹시 빚을 내서 치르는 결혼식은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오 씨가 안내받은 자리는 신랑 측 뒤쪽의 원탁이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는 오륙십 대로 보이는 남녀 일곱이 앉아 있었는데, 다들 서로 아는 사이 같았습니다.
예식이 시작되자 사회자가 혼주를 소개했습니다. “신랑 아버님께서는 맨손으로 시작해 상가 건물 세 채를 일궈 내신 분입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 속에서 오 씨는 망치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상 옆에 선 한 씨는 처음 보는 은회색 양복에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옆자리 남자가 혀를 찼습니다. “세 채 맞지. 우리 가게도 저 양반 건물이잖아.” 맞은편 여자가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작년에 또 30만 원 올렸잖아요. 시장 앞 국밥집도 그래서 못 버티고 나갔고요. 월세 올려서 세입자 내쫓기로 유명한 양반인데, 안 오면 재계약 때 눈치 보일까 봐 다들 온 거죠.”
여자가 오 씨를 보며 물었습니다. “어르신은 어떻게 오셨어요?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오 씨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저 사람… 우리 집 1층에 세 사는 사람이오. 12년째, 월세 40만 원에.” 원탁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오 씨를 쳐다봤습니다.
식사가 나올 무렵 한 씨가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하다가 오 씨 앞에 섰습니다. 굳은 오 씨의 얼굴을 본 한 씨는 허리를 숙여 귓가에 대고 말했습니다. “어르신, 여기서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귀가 어두운 오 씨가 “뭐라고?” 하고 되묻자 한 씨는 조금 더 큰 소리로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바로 옆 신부 측 테이블까지 그대로 들렸습니다. 사돈 쪽 하객 하나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곤란하다니, 무슨 일인데요?”
국밥집 이야기를 하던 여자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이 어르신 댁에서 12년을 세 사셨대요. 월세 40만 원에요. 건물이 세 채나 있는 분이요.” 술렁임이 원탁에서 원탁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신부 어머니가 몸을 돌려 한 씨를 바라봤고, 한 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오 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곤란할 일은 없네. 아들 장가가는 날이니 축하하네. 할 말은 집에 가서 하지.” 그 말만 남기고 오 씨는 우산을 챙겨 식장을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오 씨는 창밖의 빗줄기만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사흘 뒤 한 씨 부부가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한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업이 망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사 올 때 한 씨는 이미 상가 건물 한 채를 갖고 있었습니다. “집에 돈을 묶어 두면 건물을 못 늘리니까… 어르신 댁에서 싸게 살면서 그 돈으로 한 채씩 더 샀습니다.” 한 씨 아내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동안 덜 드린 월세라고 생각해 주세요.”
오 씨는 봉투를 도로 밀어냈습니다. “건물 관리 일 한다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구먼. 자네 건물이었을 뿐이지. 준 건 준 걸세. 그 돈 돌려받자고 12년을 참은 게 아니야. 다만 집은 비워 주게. 이 방은 정말 형편 어려운 사람한테 내줄 거네.” 한 씨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습니다. 그리고 계약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 달 만에 이삿짐을 쌌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 속은 괜찮아요?” 오 씨는 쌀독 뚜껑을 덮으며 대답했습니다. “속은 거야 분하지. 그래도 그 집 애가 우리 쌀 먹고 큰 건 거짓말이 아니잖나. 쌀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이솝 우화에는 얼어 죽어 가는 뱀을 품에 안아 녹여 준 농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몸이 녹은 뱀은 결국 농부를 뭅니다. 베푼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갈 자리를 잘못 고른 것입니다.
인심은 귀합니다. 하지만 인심이 오래가려면 눈도 함께 떠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은 지키되, 그 사정이 사실인지 한 번쯤은 살펴보세요. 그래야 그 정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습니다.
이달 초 첫서리가 내린 아침, 오 씨는 비어 있는 1층 창문에 ‘세놓음’ 종이를 붙였습니다. 월세 칸에는 여전히 40만 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한 줄을 덧붙였습니다. ‘아이 키우는 집 우대.’ 마당 감나무에 남은 까치밥 몇 알이 아침 햇살에 붉게 빛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