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이 맞벌이를 하면 손주는 할머니 품에서 자랍니다. 밤잠을 설치며 보낸 그 세월은 어디에도 적히지 않고, 아이가 크면 그 품은 조용히 비워집니다. 그래도 많은 조부모는 서운하다는 말을 삼킨 채 전화기만 바라봅니다.
경상도 바닷가 소도시에 사는 임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스물여섯 해 동안 동네 정형외과 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고, 지금은 퇴직한 남편과 낡은 단층집에서 단둘이 지냅니다. 외동딸은 사위, 열 살 외손자와 함께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열 해 전 봄, 같은 동네에서 맞벌이를 하던 딸이 백일 지난 아들을 안고 친정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린이집 자리는 반년을 기다려야 났고, 딸 부부는 둘 다 공단 회사에 다니느라 밤늦게야 퇴근했습니다.
“엄마, 1년만 봐 주면 안 될까. 돈은 달마다 드릴게.” 임 씨는 아기를 받아 안으며 말했습니다. “돈 얘기 하면 안 봐 준다. 너는 회사나 잘 다녀.” 그 주에 임 씨는 의원에 사표를 냈습니다. 원장은 “주사실 살림 다 맡던 사람이 가면 어떡하느냐”며 붙잡았지만, 임 씨는 웃기만 했습니다.
1년은 7년이 되었습니다. 임 씨는 의원에서 몸에 밴 버릇대로 손자의 체온과 분유 양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열이 오르는 밤이면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며 새벽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딸이 매달 내미는 봉투는 손자 이름으로 만든 통장에 한 푼도 쓰지 않고 넣어 두었습니다.
장 보러 갈 때면 손자를 포대기에 업고 시장 골목을 돌았습니다. 생선 가게 앞에서는 “이건 고등어, 이건 갈치” 하고 이름을 가르쳤고, 떡집 정 씨는 갓 뽑은 가래떡 한 토막을 아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손자는 떡을 입에 문 채 할머니 등에 기대어 잠들곤 했습니다.
밤이면 임 씨는 손수 지은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자장자장 우리 강아지, 시장 골목 불 꺼지면 고등어도 잠이 들고 가래떡도 잠이 든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손자는 할머니 옷소매를 쥔 채 고른 숨을 내쉬었습니다.
손자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사위가 수도권 본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삿짐 트럭이 떠나던 날 손자는 대문 기둥을 붙잡고 “할머니 집에서 학교 다닐 거야” 하며 울었습니다. 임 씨는 그 작은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며 아이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처음 한 달은 밤마다 전화가 왔습니다. 손자는 “할머니 노래 불러 줘” 하며 훌쩍였고, 임 씨는 수화기에 대고 자장가를 부르다 목이 메었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뚝 끊겼습니다. 명절에 내려와도 손자는 꾸벅 인사만 하고 방에 들어가 책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다 컸다는 거지, 뭐.” 임 씨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밤이면 비어 있는 작은방 문을 열어 보곤 했습니다. 수첩에 적힌 손자의 첫걸음 날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3년을 보냈습니다.
지난 10월 초, 딸의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할머니, 저예요. 이번 달 마지막 금요일에 우리 학교 학예회 해요. 꼭 와 주세요.] 3년 만에 손자가 먼저 보낸 연락이었습니다. 임 씨는 그 문자를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쓸어 보았습니다.
학예회 날 아침, 임 씨 부부는 첫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무릎 위 보자기에는 멸치볶음과 시장 떡집에서 뽑은 가래떡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섯 시간 만에 내린 도시에는 찬비가 흩뿌렸고, 마중 나온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쟤가 석 달 전부터 할머니 꼭 오셔야 한다고 졸랐어. 뭘 읽는지는 나도 몰라.”
학교 강당에는 접이식 의자가 빼곡했고, 젖은 우산 냄새가 났습니다. 순서지를 펼친 임 씨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습니다. [3학년 2반 낭독 – 나를 키운 사람.] 이윽고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손자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무대 가운데 섰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냄새는 할머니 등 냄새입니다. 할머니는 저를 업고 시장 골목을 다녔습니다. 고등어랑 갈치 이름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떡집 아저씨가 준 가래떡은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입니다.” 객석에 작은 웃음이 번졌지만, 임 씨는 웃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밤마다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자장자장 우리 강아지, 시장 골목 불 꺼지면 고등어도 잠이 들고….” 손자가 가사를 한 줄씩 읽어 내려가자 임 씨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사 오고 나서 저는 매일 할머니한테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전화 끊고 나면 밤새 우신다고요. 그래서 전화를 참았습니다. 할머니를 울게 하는 전화 말고, 웃게 하는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3년 동안 썼습니다.” 강당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손자가 고개를 들어 객석 셋째 줄을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나의 첫 번째 엄마입니다.” 옆자리의 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박수 소리가 쏟아졌지만, 임 씨는 손수건을 쥔 채 의자에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손자가 달려와 스프링 공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지우고 다시 쓴 자국이 빼곡한 공책 첫 장에는 삐뚤빼뚤한 1학년 글씨로 [할머니한테 쓸 편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딸이 눈가를 닦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 내가 한 거 맞아. 쟤가 듣고 있는 줄은 몰랐어.”
손자가 할머니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이제 전화해도 돼요? 이제 안 울 거죠?” 임 씨는 “오늘 3년 치 다 울었다” 하며 손자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날 저녁 딸네 식탁에는 임 씨가 가져온 가래떡이 노릇하게 구워져 올랐습니다. 손자는 조청을 듬뿍 찍어 먹으며 “이 맛이야” 하고 웃었습니다. 밤이 되자 열 살 손자는 할머니 옆에 누워 노래를 졸랐고, 예전처럼 할머니 옷소매를 쥔 채 잠이 들었습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장미가 소중한 까닭은 그 장미에 쏟은 시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업고 재우며 보낸 날들도 그렇게 아이 마음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입니다.
손주가 멀어진 것 같아 서운하신 분이 있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침묵은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저 나름대로 할머니 마음을 아끼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키워 준 품은 아이가 자란 뒤에야 비로소 말이 되어 돌아옵니다.
초겨울 바닷바람이 부는 시장 골목을 임 씨는 오늘도 천천히 걷습니다. 떡집 정 씨가 “손주 잘 크지요?” 하고 묻자 임 씨는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습니다. 밤 아홉 시면 어김없이 걸려 오는 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이제는 손자가 먼저 자장가를 흥얼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