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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초반 3% 넘게 밀렸던 지수가 저가 매수세에 힘입어 1.76% 오른 5768.01로 마감한 19일, 여의도 분위기는 안도보다 경계에 가까웠다. 하루 반등만으로는 이번 달 누적 성적표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코스피의 10월 수익률은 마이너스 15.65%다. 일본 니케이225는 물론이고 중국 심천종합지수와 인도네시아 IDX 종합지수보다도 나쁜,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객장에서는 “용기 내서 샀는데 물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다.
필자는 이번 조정의 핵심이 이제 반도체 업황이 아니라 미국 AI 인프라의 ‘돈줄’로 옮겨갔다고 본다. 수요 이야기에서 부채 이야기로 무게중심이 바뀐 것이다. 이 변화를 읽지 못하면 반등 국면마다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데이터센터 붐에 생긴 균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약 10조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미국 AI 인프라 투자 열풍에 금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규제정보업체 레그레이어 집계로는 올해 들어서만 최소 47건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늦춰지거나 백지화되거나 인허가 단계에서 가로막혔다. 업체 측은 이 숫자가 최대 규모 사업만 센 보수적 추정이라고 덧붙였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계획된 데이터센터 가운데 실제로 지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35% 안팎으로 봤다. 전력망 부족과 주민 반발도 변수다. FT 자체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역에서 1000곳이 넘는 지역사회가 AI 인프라 건설을 일시 중단시키거나 제한하는 조치를 추진했다.
계획 단계의 숫자가 그대로 메모리 주문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은 이제 수정이 필요하다. 시장이 3년 넘게 당연하게 여겨온 ‘착공 파이프라인 = 미래 반도체 수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코어위브가 보여주는 신용 리스크의 민낯]
더 직접적인 경고음은 채권시장에서 울렸다. 51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코어위브의 부채는 720억달러, 원화로 약 96조1000억원에 이른다. 시장이 가격에 반영한 이 회사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60%를 웃돌고, 지난주 회사채 금리는 15%를 넘어섰다. 사실상 투기등급 채권과 같은 취급이다. 뉴욕타임스는 코어위브와 함께 오라클과 소프트뱅크의 차입 구조를 거론하며, 이것이 개별 기업의 약점에 그칠지 데이터센터 건설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번질지를 따져 물었다.
빅테크라고 예외는 아니다. 메타는 3분기 잉여현금흐름이 21억달러 넘는 적자로 돌아섰고, 장기부채는 연초 587억달러에서 809억달러로 불어났다. 브로드컴과 인텔 최고경영자가 AI 산업의 성장을 막는 요인으로 ‘자본 조달’을 직접 언급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정리하면 AI가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투자 속도를 현금이 따라가지 못해 빚으로 메우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철도 버블, 닷컴 버블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제임스 매킨토시는 지금의 AI 설비투자 붐이 과거 대규모 투자 열풍의 실패를 피해갈 근거가 아직 없다고 꼬집었다. 그가 든 사례는 1840년대 영국 철도 투자 거품과 닷컴 시기의 광섬유망 과잉 구축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철도도 광섬유도 결국 쓸모 있는 인프라로 남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돈을 빌려 먼저 깔았던 사업자와 이들에게 돈을 댄 투자자들이 대거 손실을 떠안았다. 기술이 진짜인지와 투자 수익이 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 핵심 교훈이다.
필자의 판단은 이렇다. 지금은 AI 전체의 버블 붕괴라기보다 ‘레버리지에 기댄 2군 사업자’부터 정리되는 신용 조정의 초입에 가깝다. 현금을 쌓아둔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와 부채로 몸집을 키운 네오클라우드 업체의 체력 차이는 크다. 하지만 조정이 길어지면 2군 사업자의 주문 취소가 공급망 전체의 가격 결정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닷컴 당시에도 통신 장비업체의 매출 붕괴는 고객사 파산이 이어진 뒤에야 본격화했다.
[왜 코스피가 가장 크게 흔들리나]
한국 증시는 이 신용 문제에 구조적으로 가장 많이 노출된 시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의 절반에 가까운 약 47%를 차지한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코스피는 사실상 ‘AI 설비투자 대리 지수’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하나가 취소될 때마다 그 충격은 메모리 수요 전망을 거쳐 국내 대형주로 곧장 전달된다. 실제로 22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6.72% 급락한 배경에도 메타의 현금흐름 악화와 투자 계획 하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외국인 매도가 겹쳤다. 6월 하순부터 이달 22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84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증권가가 공통적으로 ‘외국인 귀환’을 추세 반등의 전제로 꼽는 이유다. 그리고 외국인이 돌아오려면 미국 AI 기업의 수익성과 과잉투자 우려가 먼저 걷혀야 한다. 코스피 회복의 열쇠가 서울이 아니라 미국 채권시장에 있는 셈이다.
[투자 시그널: 무엇을 보고 움직일 것인가]
증권가에서는 단기 반등 이후 저점을 다시 시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필자는 다음 네 가지를 체크리스트로 제시한다.
첫째, 코어위브 등 AI 인프라 관련 회사채 금리다. 15%대에서 더 오르면 신용 경색이 번지고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꺾이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격에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이번 주부터 이어지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의 내년 설비투자 가이던스다. 숫자를 제시하지 않거나 하향하는 기업이 늘면 메모리 피크아웃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이다.
셋째, 데이터센터 지연·철회 건수의 증감이다. 주문 취소가 2군 사업자에 머무는지, 대형사로 번지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넷째, 외국인의 반도체 대형주 순매수 전환 여부다. 사흘 이상 매수 우위가 이어지는지가 가장 실용적인 확인 지표다.
[리스크와 기회의 균형]
위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 업황 자체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전망이 유효하고, 고점 대비 40% 가까이 빠진 지수는 상당 부분의 비관론을 이미 반영했다. 신용 우려가 진정되는 순간 낙폭이 컸던 만큼 되돌림도 가파를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바닥을 맞히는’ 게임보다 ‘살아남는’ 게임이 중요한 국면이다. 신용융자 등 빚을 낸 매수는 피해야 한다. 진입한다면 위에서 제시한 신호를 확인하며 분할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종목을 고를 때는 AI 수요의 질, 즉 현금 여력이 있는 고객사 비중이 높은 기업을 우선하는 전략을 권한다. AI라는 기술의 미래를 의심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그 미래에 누가 비용을 치르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