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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날짜 지난 우유가 네 통이나 들어 있다면 그냥 닫고 나오시겠습니까? 그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평생 후회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시는 부모님은 전화로는 늘 잘 지낸다고 하시지만, 생활의 변화는 말보다 집 안에 먼저 남습니다.
방문간호 현장에서는 집에 들어서면 얼굴보다 살림을 먼저 살피라고 말합니다. 찾아뵈었을 때 자녀가 눈여겨봐야 할 신호를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3위. 뜯지 않은 채 쌓인 우편물과 고지서
식탁 한쪽에 봉투가 수북한 걸 보고 “엄마, 이걸 왜 아직 안 뜯으셨어요?” 하고 물으면 부모님은 나중에 보려 했다며 웃어넘기십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들킨 것 같아 민망하고, 살림을 검사받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합니다.
고지서가 쌓이면 공과금이 밀리고, 연체 안내 같은 중요한 통지도 그 틈에 묻힙니다. 글씨가 작거나 내용이 복잡해서 미루다 보니 쌓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캐묻기보다 함께 하나씩 열어 보십시오. 매달 나가는 요금은 부모님 동의를 얻어 자동이체로 돌려 두는 편이 무난합니다.
2위. 날짜와 맞지 않는 약봉투 속 남은 약
약봉투를 집어 들고 “아버지, 약은 꼬박꼬박 드시죠?” 하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조제일로 따져 보면 이미 다 드셨어야 할 약이 절반 넘게 남아 있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정말 드셨다고 믿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적을 받으면 억울하고 속상해하십니다.
약이 많이 남았다면 거르신 것입니다. 너무 빨리 줄었다면 드신 걸 잊고 또 드셨을 수 있습니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매일 드시는 약이라면 어느 쪽이든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요일과 아침·저녁이 칸으로 나뉜 약 정리함을 마련해 드리십시오. 남은 양이 맞지 않으면 다음 진료 때 함께 가서 의사나 약사에게 알리십시오.
1위. 상한 음식과 똑같이 사다 둔 물건들
냉장고 안에 같은 두부와 우유가 몇 개씩 겹쳐 있고 안쪽에서 상한 반찬 냄새가 나면 “이걸 왜 또 사셨어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기 쉽습니다. 부모님은 이 말을 깜빡했다는 핀잔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냉장고 문을 여는 자식 손길부터 신경 쓰십니다.
사 둔 걸 잊고 또 사 오는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상한 음식을 그대로 두는 일도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기억력이나 판단력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냉장고는 끼니를 제대로 챙기시는지도 함께 보여 주기 때문에 다른 신호보다 먼저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래 다 버리기보다 같이 정리하면서 요즘 장은 어떻게 보시는지 여쭤보십시오. 이런 일이 거듭되면 보건소나 병원에서 기억력 검사를 받아 보시도록 권해 드리십시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보인다면 잠깐 깜빡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보인다면 그냥 넘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흠을 찾듯 살피면 부모님은 다음 방문 전에 집부터 치워 두십니다. 정리를 거들어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들여다보십시오. 그 몇 분 동안 전화로는 들을 수 없는 부모님의 형편을 알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