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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나면 둘이 오붓하게 지낼 일만 남았다고 믿으셨습니까. 그 기대가 은퇴 첫해 부부 사이를 가장 먼저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출근 없는 첫 달,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은 아내를 따라 시장에 가고, 아내가 전화라도 길게 하면 괜히 거실을 서성입니다. 정작 아내에게는 그 하루가 길게만 느껴집니다.
수십 년을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온 부부에게 은퇴는 함께하는 시간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낯선 출발점입니다. 부부 상담 현장에서 자주 오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은퇴 직후 배우자에게 행복을 기대했다가 서운해지는 이유를 짚어 보았습니다.
3위. 하루 일정을 전부 배우자에게 맞추려는 것
매일 아침 “당신 오늘 어디 가? 나도 같이 가지” 하는 말이 반복되면, 듣는 쪽은 반가움보다 부담을 먼저 느낍니다. 말하는 사람은 함께 있고 싶어서 꺼낸 말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이제 내 하루도 보고해야 하나’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기 쉽습니다.
배우자에게도 은퇴 전부터 꾸려 온 생활의 리듬이 있습니다. 그 리듬에 내 하루를 통째로 얹으면 상대는 자기 시간을 빼앗긴다고 느낍니다. 산책이든 배움이든 내 일정을 먼저 한두 가지 만들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같이 할 일은 일주일에 몇 번 정도로 정해 두면 서로 편합니다.
2위. 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고 알아서 알아주길 기다리는 것
저녁상 앞에서 “아니야, 괜찮아” 하고 말끝을 흐리는 날이 늘어납니다. 말한 사람은 눈치채 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듣는 배우자는 정말 괜찮은 줄 알고 넘어가거나, 언짢은 기색만 느낀 채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입을 닫습니다.
오래 산 부부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통할 거라 여깁니다. 하지만 은퇴 뒤의 생활은 둘 다 처음 겪는 일이라, 상대도 내 마음을 짐작할 기준이 없습니다. 서운한 일은 쌓아 두지 말고 그날이나 다음 날쯤 “어제 그 말은 조금 섭섭했어”처럼 짧게 꺼내는 편이 낫습니다. 탓하는 말보다 내 기분을 전하는 말이 훨씬 덜 아프게 닿습니다.
1위. 배우자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나를 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배우자가 친구 모임에 나서거나 방에서 책을 펼치면 “요즘 나랑 있는 게 싫은가 보네”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농담처럼 던졌어도 듣는 사람은 혼자 쉬는 일조차 허락받아야 하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다음부터는 나갈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관계를 밀어내는 신호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마주 앉을 힘을 채우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배우자가 자기 시간을 보낼 때 나도 내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돌아온 상대에게 “재밌었어?” 하고 한마디 건네면, 그 시간은 둘 사이를 오히려 넉넉하게 만들어 줍니다.
은퇴는 둘이 붙어 지내는 시간이라기보다, 따로 또 같이 지내는 법을 새로 배우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배우자가 내 빈자리를 다 채워 주리라 기대할수록 서운함도 그만큼 커집니다.
내 하루는 내가 먼저 채우십시오. 섭섭한 마음은 짧게 말로 꺼내고, 상대가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대로 두어 보십시오.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를 맞추다 보면, 함께 있는 시간이 의무가 아니라 반가움이 되는 날이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