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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아내라면 누구나 남편 모르는 통장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사치를 하려고 모으는 돈이 아닙니다. 언젠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기면 꺼내 쓰려고 한 푼 두 푼 모아 둔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꺼내 쓴 사연이 세월이 흐른 뒤 엉뚱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에 사는 서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중학교 급식실에서 26년 동안 조리사로 일하다 2년 전 퇴직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출근해 오백 명분 국을 끓이는 일이었습니다. 화물차를 몰던 남편은 예순여섯으로 일을 놓았고, 외아들은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에게는 여덟 살 아래 여동생이 있습니다. 서 씨가 시집왔을 때 시누이는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습니다. 서 씨는 시누이의 도시락을 싸 주었고, 시험 기간이면 밤늦게 고구마를 쪄서 방에 넣어 주었습니다. 시누이가 시집갈 때는 이바지 음식을 사흘 밤을 새워 손수 만들었습니다.
시누이는 말이 모질었습니다. 명절에 서 씨가 전을 부치고 있으면 “언니는 손이 느려” 하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서 씨는 그래도 웃어넘겼습니다. 남편의 하나뿐인 동생이니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돈 관리를 혼자 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만 쪼개 주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게 했습니다. 서 씨는 방학 때마다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급식실 수당을 조금씩 떼어 따로 적금을 부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모은 돈이 2500만 원이었습니다.
12년 전 봄, 시어머니에게서 울먹이는 전화가 왔습니다. 열 살 된 시누이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으로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누이 남편의 식당은 막 문을 닫은 참이었습니다. 보험으로 해결되지 않는 비용과 긴 입원비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잘라 말했습니다. “우리도 빠듯해. 걔네 일은 걔네가 알아서 해야지.” 서 씨는 밤새 뒤척이다 이튿날 시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 제가 모아 둔 돈이 있어요. 그런데 아가씨는 제 돈이면 안 받을 거예요.”
시어머니는 서 씨의 손을 한참 잡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보낸 걸로 하자. 고맙다는 말은 내가 대신 듣고, 원망은 내가 대신 듣마.”
서 씨는 은행에서 돈을 보낼 때 받는 사람 통장에 찍히는 이름을 ‘엄마’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섯 달에 걸쳐 500만 원씩 시누이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날짜와 금액을 공책에 적어 두었습니다. 집에 두면 남편 눈에 띌까 봐 그 공책은 시어머니가 장롱 깊이 넣어 보관했습니다.
조카는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지금은 스물두 살 대학생입니다. 그런데 시누이는 그 뒤로 서 씨를 더 차갑게 대했습니다. 친척들 앞에서 “우리 애 아플 때 큰집은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서 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올여름 아흔하나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몇 해 동안 서 씨가 시골집을 오가며 수발을 들었습니다.
사십구재를 지낸 시월 끝자락,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남편과 시누이, 서 씨 셋이 시골집 안방에 모여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낡은 자개장롱 문을 열자 좀약 냄새가 훅 끼쳤습니다. 시누이가 이불 밑에서 보자기에 싼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공책을 넘기던 시누이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이거 언니 글씨잖아. 오백, 오백, 오백… 옆에 ‘엄마’라고 적혀 있네. 엄마 이름 달고 2500만 원이 빠져나갔어.”
시누이는 공책을 서 씨 앞에 내던지듯 내밀었습니다. “엄마 통장에 돈이 없길래 이상하다 했어. 언니가 엄마 모신다면서 이렇게 빼돌린 거야?”
서 씨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빗소리만 방 안을 채웠습니다. 서 씨는 공책을 천천히 펼쳐 마지막 장을 가리켰습니다. 받는 사람 칸에는 시누이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가씨, 이 날짜들 기억 안 나요? 열두 해 전 봄, 아가씨 아들 수술하던 그 다섯 달이에요. 그 돈은 어머니 돈이 아니라 내가 급식실에서 10년 동안 모은 돈이에요. 아가씨가 내 돈이면 안 받을 것 같아서 어머니 이름으로 보냈어요.”
시누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옛 거래 내역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서 씨가 기다린 것은 남편의 한마디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당신, 나 몰래 그런 돈을 숨겨 놨었어? 2500만 원을? 그걸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없이 써.”
그 순간 서 씨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동생이 아내를 도둑으로 몰 때는 입을 다물고 있던 남편이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자 남편이 꺼낸 말은 아내를 향한 탓뿐이었습니다.
서 씨는 공책을 방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여보, 그때 당신이 걔네 일은 걔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죠. 나는 그 아이를 그냥 둘 수가 없었어요. 내 돈 숨긴 건 미안해요. 그런데 이제 그만 따로 살아야겠어요.”
서 씨는 그 길로 짐을 꾸렸습니다. 퇴직 후 받은 연금과 남은 저축으로 옛 학교 근처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었습니다. 시누이가 며칠 뒤 찾아와 고개를 숙였지만, 서 씨는 “아이가 건강하면 됐어요” 하고 차 한 잔만 내주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자고만 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숨긴 일도 세월이 지나면 오해의 씨앗이 됩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언젠가 털어놓을 날을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억울한 처지에 놓였을 때, 따지기 전에 먼저 그 사람 곁에 서 주십시오. 진실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 편이 되어 주는 한마디입니다.
첫서리가 내린 십일월 아침, 서 씨는 옛 학교 담장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급식실 굴뚝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운동장 가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흩날렸습니다. 서 씨는 오래도록 그 김이 하늘로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