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03:49

“사위 세금 700만원 몰래 내줬는데..” 4년 뒤 퇴원 날 사위가 건넨 봉투에 주저앉아 울었다

자식이 어려울 때 부모가 몰래 돈을 보태는 일은 흔합니다. 알리면 자식의 자존심이 상할까 걱정되고, 알리지 않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돈은 대개 아무도 모르게 잊힙니다.

오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상도 어느 읍내 시장 초입에서 30년째 작은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스팀다리미 앞에 서 있다 보니 쉰을 넘기면서부터 허리가 아팠습니다.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큰딸은 가까운 동네에서 사위, 초등학생 손자와 함께 삽니다.

사위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인사 오던 날에는 오 씨가 끌고 나오던 세탁물 자루를 말없이 받아 배달 오토바이까지 날라 주었습니다. 남편 장례 때는 사흘 내내 빈소 입구에서 조문객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주말이면 세탁소에 들러 고장 난 다리미 코드를 갈아 끼워 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위가 마흔 살에 식품 회사 영업직을 그만두고 시장 뒷골목에 치킨집을 차렸습니다. 첫해에는 새벽 두 시까지 닭을 튀기고 직접 배달을 다녔습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사위는 장사밖에 몰랐습니다.

이듬해 봄, 오 씨는 반찬을 갖다주러 치킨집에 들렀다가 계산대 위에 놓인 고지서를 보았습니다. 부가가치세 체납 고지서였습니다. 첫해 신고를 통째로 놓치는 바람에 무신고가산세와 납부지연가산세까지 붙어 700만 원 가까이 되어 있었습니다. 계속 내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할 수 있다는 안내도 적혀 있었습니다. 고지서 귀퉁이에는 사위가 볼펜으로 눌러 쓴 숫자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 씨는 휴대전화로 고지서를 찍어 두었습니다.

그날 저녁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그 사람 요즘 밤에 잠을 못 자.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래.” 오 씨는 고지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딸까지 속을 끓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 오 씨는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깼습니다. 언젠가 허리 치료를 받을 때 쓰려고 세탁소 수입에서 매달 조금씩 떼어 부어 온 돈이었습니다. 창구 직원이 “다른 분 세금도 납부번호만 있으면 대신 내실 수 있어요”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오 씨는 영수증을 남편 사진 액자 뒤에 끼워 두며 중얼거렸습니다. “여보, 우리 사위 기 좀 살려 줬소. 내 허리는 좀 더 버텨 보라지.”

그 뒤로 4년이 흘렀습니다. 치킨집은 자리를 잡았지만 세금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딸이 가끔 걱정했습니다. “엄마, 그 사람 가게 닫고 와서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있어. 무슨 책을 그렇게 보는지 몰라.” 오 씨는 사위가 몸이라도 상할까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사이 오 씨의 허리는 더 나빠졌습니다. 다리가 저려 다리미 앞에 십 분을 서 있기 힘들었습니다. 올가을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열흘 뒤 퇴원하는 날, 아침부터 내리던 늦가을 비가 그치고 병원 마당에 젖은 은행잎이 깔려 있었습니다. 오 씨가 지팡이를 짚고 원무과 창구로 가자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머님, 이미 정산 끝났어요. 아드님이 아침에 계산하고 가셨는데요.” 돌아보니 사위가 짐 가방을 들고 멋쩍게 서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사위는 조수석 문을 열어 장모를 부축했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누런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장모님, 집에 가시기 전에 이것부터 보세요.”

봉투 안에는 세무서에서 온 경정청구 결과 통지서 여러 장과 오 씨 명의의 통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봄 사위가 “올해 종합소득세 신고는 제가 도와 드릴게요” 하며 환급 계좌로 쓰겠다고 받아 간 통장이었습니다. 통장에는 세무서에서 들어온 돈이 몇 줄 찍혀 있었고, 모두 합쳐 520만 원이 넘었습니다.

“장모님 세탁소 지난 5년치 신고를 다시 살펴봤어요. 기계 수리비, 세제랑 드라이 용제 산 것, 카드 수수료 같은 경비가 장부에서 빠져 있더라고요. 신고 기한에서 5년 안이면 경정청구로 바로잡을 수 있거든요. 더 낸 세금을 돌려받은 거예요.”

사위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 고지서 대신 내 주신 거, 저 처음부터 알았어요. 가게 CCTV에 장모님이 고지서 찍으시는 모습이 다 남아 있었어요. 다음 날 체납이 해결된 걸 보고 바로 알았죠. 그때 고맙다고 하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았어요. 세금이 뭔지도 모르고 장사한 게 너무 부끄러워서요.”

사위는 그날부터 가게 문을 닫으면 세무 책을 펴 놓고 장부 쓰는 법부터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자격증도 땄고, 요즘은 상인회 사장님들 신고까지 봐 준다고 했습니다.

“장모님 허리 고치실 돈이었던 것도 알아요. 그 돈 꼭 채워 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그 고지서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오 씨는 조수석에 그대로 주저앉아 통장을 가슴에 안고 울었습니다. 딸이 걱정하던 새벽의 책상 불빛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얘야, 나는 그냥 너 기죽을까 봐 그랬던 건데….” 사위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서 더 갚고 싶었어요.”

몰래 건넨 돈은 대개 잊히거나 오래된 서운함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받는 사람이 그 마음을 알아보는 순간, 돈은 전혀 다른 모양으로 자라기도 합니다. 오 씨가 낸 것은 세금 700만 원이었지만, 사위가 받은 것은 다시 일어설 힘이었습니다.

도움을 주었는데 아무 말이 없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말이 없는 사람일수록 갚을 날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듬해 봄, 오 씨의 세탁소에는 허리 높이에 맞춘 새 다림질대가 들어왔습니다. 시장 골목에 벚꽃잎이 날리던 저녁, 사위가 치킨 한 상자와 장부를 들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오 씨는 스팀 김이 서린 창가에 앉아 사위가 장부 넘기는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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