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05:19

“아들 사채 5000만원 몰래 갚았는데..” 남편 칠순 잔칫날 밤 금고에서 알게 된 비밀

부부 사이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돈이 있습니다. 대개는 자식 일입니다. 배우자가 알면 크게 화낼 것 같아서, 혹은 자식이 무너질까 봐서 혼자 짊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싸 준 비밀이 엉뚱한 사람의 손에서 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충청도 어느 읍내 오일장 골목에서 2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 콩자반을 조리고 깻잎을 재웠고, 장날이면 가게 앞에 좌판을 하나 더 폈습니다. 남편은 읍내 미곡처리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외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엄마 가게에서 컸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가게 구석 평상에 앉아 숙제를 했고,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단골 할머니들은 그 아이를 반찬가게 꼬마 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모자랐던 해에 황 씨는 김장 주문을 두 배로 받아 밤을 새워 배추를 버무렸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셈이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빚이라면 질색을 했고, 아들이 신용카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남의 돈은 무서운 거다” 하고 한참을 나무랐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어려워했고,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엄마부터 찾았습니다.

여섯 해 전 늦가을, 서른넷이던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도시에서 차린 인테리어 사업이 기울면서 급한 대로 사채를 끌어다 썼는데, 이자가 불어 5000만 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옆에서 소리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엄마, 요즘 사무실로 사람들이 찾아와요. 집 앞까지 와요. 아버지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아시면 저 다시는 안 보실 거예요.”

황 씨는 그날 밤 남편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안방 침대 밑에서 작은 금고를 끌어냈습니다. 반찬가게를 하며 매달 조금씩 떼어 모은 비상금이 3000만 원 남짓 들어 있었습니다. 모자란 2000만 원은 가게 보증금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메웠습니다. 사채를 모두 갚던 날, 황 씨는 차용증 원본과 완납 영수증을 받아 와 금고에 넣고 잠갔습니다. 아들이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황 씨는 가게 문을 한 시간 일찍 열고 한 시간 늦게 닫았습니다. 대출은 4년 만에 다 갚았습니다. 남편이 “요즘 왜 그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물으면 “주문이 많아서요”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아들은 다른 회사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아들 부부가 집에 올 때마다 꺼내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아버지, 어차피 자식은 저 하나인데 집이랑 논 미리 정리해 주시면 좋잖아요.” 며느리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남편은 “내 살아 있을 때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럴 때마다 아들 부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황 씨는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올봄, 남편의 칠순 잔치가 읍내 한정식집에서 열렸습니다. 황 씨는 그날 새벽에도 가게에 나가 남편이 좋아하는 도라지무침을 손수 무쳐 왔습니다. 아들은 친척들 앞에서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웃 가게 정 씨는 “자식 하나 참 잘 키웠다”며 황 씨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날 밤, 손님들을 모두 보내고 식구들이 안방에 모였습니다. 창밖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방바닥에는 잔치에서 받은 꽃바구니와 떡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자 아들이 또 재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편이 대꾸하지 않자 며느리가 조심스러운 척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어머님이 아버님 몰래 침대 밑 금고에 비자금을 숨겨 두셨어요. 저희한테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어머님은 따로 챙기시는 거잖아요.”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남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당신, 그게 사실이야?” 황 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편은 일어나 침대 한쪽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먼지 낀 바닥에 회색 금고가 드러났습니다. “열어 봐. 지금 당장.”

황 씨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은 눈을 피했습니다. 황 씨는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맞췄습니다. 금고 문이 열리자 남편이 몸을 숙여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현금은 한 장도 없었습니다. 누런 서류 봉투 하나만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봉투에서 꺼낸 것은 아들 이름이 적힌 사채 차용증 원본과 5000만 원 완납 영수증이었습니다. 남편은 한참 동안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게 뭐냐. 네 이름이 왜 여기 있어.”

아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며느리를 향해 물었습니다. “너는 알았냐.” 며느리가 입술을 깨물자, 다급해진 아들이 아내를 돌아보며 내뱉었습니다. “당신이 금고 얘기 꺼내자고 했잖아. 엄마 비상금 그때 다 털어서 비었다고, 아버지가 엄마를 못 믿게 되면 집 명의를 우리한테 넘기실 거라고.”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며느리는 여섯 해 전 가게에서 울던 그날부터 빚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금고가 비었다는 것도 알면서, 시어머니를 비자금 숨긴 사람으로 만들어 시아버지 몫을 앞당겨 받아 내려 했던 것입니다.

황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여섯 해 동안 지켜 온 약속이 하필 그날 밤 자신을 겨누는 데 쓰였습니다. 남편은 차용증을 쥔 채 오래 말이 없다가 아내 옆에 앉았습니다. “왜 혼자 했어. 그 돈 갚느라 새벽마다 나갔구나.” 평생 무뚝뚝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습니다.

남편은 아들 부부를 향해 짧게 말했습니다. “재산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라. 네 어머니한테 먼저 사과해라.” 아들이 무릎을 꿇었지만 황 씨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부부는 그날 밤 빗속에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다음 날 황 씨는 차용증과 영수증을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금고가 아니라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장롱 서랍에 넣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숨긴 돈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숨겨 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비밀은 다른 사람이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과 자식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은 다릅니다. 도와줄 때는 도와주되, 평생 함께 사는 사람에게만큼은 사실을 털어놓으세요. 부부 사이에 틈이 없어야 누구도 그 틈을 파고들지 못합니다.

올가을 황 씨는 남편과 함께 장날 아침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골목에는 햇살이 비스듬히 들었고, 좌판 위 무말랭이와 고추장아찌가 윤기를 띠었습니다. 남편은 서툰 손으로 반찬통 뚜껑을 닦으며 손님을 맞았고, 황 씨는 그 옆에서 해가 기울 때까지 콩자반을 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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