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05:44

“아랫집 아이 저녁밥 챙겨 먹였는데..” 8년 뒤 누군가 식탁에 둔 종이 한 장에 말없이 울었다

이웃끼리 주고받는 정은 장부에 적히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 우산 하나, 몇 시간 아이를 봐 준 일 같은 것들입니다. 준 사람은 금세 잊어도,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기도 합니다.

경상도 어느 소도시에 사는 오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낡은 다세대주택 2층에서 혼자 지냅니다. 남편은 열다섯 해 전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은 결혼해 수도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 씨는 14년째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나가 골목 상가 앞 상자를 모으고, 오후에는 시장 고물상에 넘깁니다. 고물상 배 씨는 “할머니 수레가 동네에서 제일 반듯하게 묶여 온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12년 전, 아랫집에 젊은 엄마 정 씨가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이사 왔습니다. 남편 없이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밤 아홉 시까지 일했습니다. 어느 저녁, 오 씨는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려 두 시간째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 씨는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 김치볶음밥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숟가락을 핥았습니다.

다음 날 정 씨가 찾아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할머니, 염치없지만 학교 끝나고 저 올 때까지만 애 좀 봐 주실 수 있을까요. 한 달에 10만 원이라도 드릴게요.” 오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내 밥 지을 때 한 숟가락 더 놓으면 되는 걸 무슨 돈이요. 넣어 둬요.”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오 씨는 폐지 판 돈으로 장을 봐 아이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계란말이를 좋아했고, 콩나물국은 싱겁게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작은 밥상을 펴 숙제를 했습니다. 오 씨는 글을 잘 몰랐지만 받아쓰기 공책을 펴 놓고 아이 옆을 지켰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수레를 세워 두고 우산 두 개를 들고 학교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오 씨를 “2층 할머니”라 불렀고, 오 씨는 아이를 “아랫집 꼬마”라 불렀습니다.

아이가 6학년이던 겨울, 아랫집이 하룻밤 사이에 비었습니다. 인사 한마디 없었습니다. 집주인 말로는 밀린 월세를 정리하고 새벽에 짐을 뺐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텅 빈 아랫집 문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밥 먹던 정이 있는데,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서운했지만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며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뒤로도 계란말이를 부칠 때면 문득 아랫집 쪽을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올해 2월, 얼어붙은 새벽 골목에서 오 씨는 수레와 함께 미끄러졌습니다. 왼쪽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나이 든 사람의 고관절 골절은 대개 수술이 필요하고 회복도 오래 걸립니다. 오 씨도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재활병원까지 두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딸이 내려와 간병을 했고, 의사는 “집에 돌아가셔도 다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오 씨는 문턱 높고 좁은 제 집 화장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4월 초, 봄비가 그친 오후에 오 씨는 보행기를 짚고 딸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 앞에 선 순간 오 씨가 멈칫했습니다. 늘 열쇠를 찾아 헤매던 문에 번호 누르는 도어락이 달려 있었습니다. 딸이 번호를 눌렀습니다. 오 씨의 생일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더 놀라운 것들이 보였습니다. 현관과 방 사이 높은 문턱에는 완만한 경사로가 놓여 보행기 바퀴가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화장실 변기 옆과 세면대 옆에는 은색 안전손잡이가 단단히 박혀 있었고,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었습니다. 침대 옆 벽에도 손잡이가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얘야, 이게 다 뭐냐. 네가 한 거냐.” 딸은 대답 대신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식탁 위에는 종이 한 장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집수리 업체의 시공 작업지시서였습니다. ‘도어락 교체, 문턱 경사로 2개소, 안전손잡이 4개소, 미끄럼 방지 시공.’ 오 씨는 돋보기를 꺼내 아래 칸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의뢰인 칸에는 ‘아랫집 꼬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비용 칸에는 또박또박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평생 저녁밥값으로 이미 받음.’ 맨 아래 특이사항 칸에는 한 줄이 더 있었습니다. ‘할머니 콩나물국은 아직도 싱겁게 드실 것.’

오 씨는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받아쓰기 공책에서 수없이 본 그 글씨였습니다. 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엄마, 한 달 전에 웬 청년이 전화를 했어. 옛날 아랫집 꼬마라고. 고물상 사장님한테 엄마 다친 얘기 듣고 번호를 물어물어 알아냈대. 엄마 놀라게 해 드리고 싶다고 비밀로 해 달라더라.”

그날 저녁, 현관 도어락 소리가 울렸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키 큰 청년이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봉지 안에는 계란 한 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2층 할머니, 저 왔어요.” 청년은 신발도 벗기 전에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그때 엄마가 빚 때문에 밤에 도망치듯 나왔어요.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면 엄마가 더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못 왔어요. 그게 8년 내내 걸렸어요. 공고 나와서 집수리 일 배웠는데, 할머니 같은 분들 집 고칠 때마다 생각났어요. 언젠가 꼭 할머니 집은 제 손으로 고쳐 드리고 싶었어요.”

청년은 엄마 정 씨도 지금은 빚을 다 갚고 작은 반찬가게를 한다고 전했습니다. 오 씨는 굳은살 박인 청년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날 밤 오 씨는 보행기를 식탁에 기대 세워 두고 계란말이를 부쳤습니다. 청년은 한 접시를 다 비우고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밥 한 그릇은 작아 보여도, 배고픈 아이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건넨 정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른 모습이 되어 돌아옵니다.

인사 없이 떠난 사람을 너무 오래 원망하지는 마세요. 떠나는 사람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 보세요. 그 밥 한 끼가 누군가의 평생을 데워 줍니다.

올가을 오 씨는 지팡이를 짚고 동네 뒷산 산책로 초입까지 걸었습니다. 길가 감나무에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저녁 햇살이 낮은 지붕들 위로 길게 내려앉았습니다. 오 씨는 벤치에 앉아 주머니 속 작업지시서를 만지작거리며 해가 질 때까지 골목을 내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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