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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하나쯤 있습니다. 친정 식구에게 몰래 건넨 돈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 미안함은 세월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돌처럼 얹혀 있습니다.
조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서 30년째 반찬가게를 합니다. 새벽 다섯 시면 가게 불을 켜고 콩자반을 졸이고 멸치를 볶습니다. 남편은 목수로 일하다 쉰다섯에 연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뒤로는 날마다 조 씨를 태우고 새벽 도매시장을 오갔습니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가정을 꾸렸습니다.
조 씨는 다섯 남매의 맏이였고, 막내 남동생과는 열네 살 차이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막내를 낳고 오래 앓아눕자 조 씨가 동생을 업어 키웠습니다. 동생이 처음 걸음마를 뗀 것도, 처음 “누나” 하고 부른 것도 조 씨 등 뒤에서였습니다.
열일곱에 봉제 공장에 다니면서도 조 씨는 월급날마다 동생 몫을 따로 떼어 두었습니다. 동생이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울던 날에는 야근 수당을 털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누나, 나 크면 꼭 갚을게.” 조 씨는 동생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습니다. “갚긴 뭘 갚아. 너만 잘 크면 된다.”
25년 전 봄, 막내가 색시를 데려와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며칠 뒤 막내가 누나 가게에 찾아와 고개를 떨궜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원비에 허덕이던 때였습니다. “누나, 예식장 계약금도 못 냈어. 처가에 예단도 보내야 하는데 이러다 장가 못 가겠어.”
그해 조 씨네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마침 전세 계약이 끝나 집주인이 전세금을 1,000만 원 올려 달라던 참이었습니다. 부부는 가게 수입과 남편 일당을 3년 동안 부은 적금으로 2,500만 원을 모아 두었습니다. 조 씨는 며칠 밤을 뒤척이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주인집에서 2,500만 원을 다 올려 달래요.” 남편은 천장을 한참 올려다보다 통장을 내밀었습니다. “줘야지 어쩌겠소. 당신이 알아서 하오.”
조 씨는 그 돈에서 1,500만 원을 떼어 동생에게 건넸습니다. 결혼식 날, 남편은 양복을 차려입고 앞줄에 앉아 손뼉을 쳤습니다. “처남 장가 잘 가네.” 조 씨는 남편의 웃는 얼굴을 보다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습니다. 막내는 자동차 정비소를 차려 아이 둘을 대학까지 보냈고, 조 씨 부부도 10년 전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그러나 조 씨 마음속 돌덩이는 그대로였습니다. 남편이 지나가듯 “그때 전셋돈 올려 주느라 고생했지” 하면 조 씨는 숟가락을 든 채 얼어붙었습니다.
몇 번이고 털어놓으려 했습니다. 가게 문을 닫은 저녁 남편에게 막걸리를 따르며 “여보, 할 말이 있는데” 하고 입을 뗀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때마다 “피곤하오, 내일 합시다” 하며 먼저 이불을 폈습니다. 결국 조 씨는 그 말을 하지 못한 채 남편을 보냈습니다. 지난여름 끝자락,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넉 달 만이었습니다.
사십구재는 시월 중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동네 절에서 지냈습니다. 막내는 정비소 문을 닫고 와서 매형 위패 앞에 오래 엎드려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조 씨는 딸과 함께 미뤄 둔 남편의 방을 정리했습니다.
방 한쪽에는 남편이 목수 시절 손수 짠 나무 책상이 있었습니다. 서랍마다 대패와 줄자, 몽당연필이 가득했습니다. 맨 아래 서랍이 뻑뻑해 딸이 통째로 빼내자, 안쪽 깊숙이 누런 고무줄로 묶은 신문지 뭉치가 굴러 나왔습니다.
신문지 안에는 낡은 적금 통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표지에 조 씨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통장이에요. 이런 게 있었어요?” 조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처음 보는 통장이었습니다.
통장을 펼치자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막내의 청첩장이었습니다. 조 씨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넘겼습니다. 첫 입금은 동생 결혼식 다음 달이었습니다. 그 뒤로 서른여섯 달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돈이 들어와 있었고, 마지막 줄에 만기 금액 1,500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뒤표지 안쪽에는 쪽지 한 장이 접혀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남편 글씨였습니다. [처남 장가보낸 돈, 내가 다 채워 놨소. 이제 미안해하지 마시오.]
조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제야 오래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결혼식을 치르고 얼마 뒤 남편이 “보험 일로 쓸 데가 있다”며 조 씨 도장과 신분증을 빌려 간 날이 있었습니다.
딸의 전화를 받고 막내가 달려왔습니다. 막내는 쪽지를 읽더니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누나, 매형이 결혼식 날 나를 따로 불렀어. 누나가 그 돈 어디서 났는지 다 안다고. 누나한테는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더라. 누나가 친정 일로 평생 기죽고 살면 안 된다고.”
막내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습니다. “몇 해 전에 내가 그 돈 갚겠다니까, 그 돈은 벌써 누나 앞으로 다 돌아가 있다고 하셨어.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거였네.”
조 씨는 통장을 가슴에 끌어안았습니다. 25년 동안 혼자 짊어졌다고 믿은 죄책감은 처음부터 혼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그날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고개 숙이지 않도록 모른 척하며 3년 동안 그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할 말이 있다고 할 때마다 먼저 돌아눕던 것도 아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이 양반아, 알았으면 말을 하지. 나 혼자 얼마나….” 조 씨는 말을 맺지 못하고 남편의 책상에 이마를 댄 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부부란 서로의 허물을 들추는 사이가 아니라 덮어 주는 사이인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감추는 일에는 대개 감출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헤아려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도 깊은 사랑입니다.
다만 너무 늦게 안 고마움은 갚을 길이 없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나 고마운 일이 있다면 오늘 저녁 밥상에서 꺼내 보세요. 오래 묵은 말일수록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십일월 첫 주, 조 씨는 다시 새벽 다섯 시에 가게 불을 켰습니다. 시장 골목에는 밤사이 떨어진 은행잎이 노랗게 쌓여 있었습니다. 조 씨는 남편이 좋아하던 우엉조림을 한 솥 졸여 막내네 정비소에 보낼 통을 따로 챙겼습니다. 가게 선반 위 남편 사진 옆에는 낡은 통장과 청첩장, 쪽지 한 장이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