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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의 배우자에게 건네는 돈에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함께 실립니다. 생색을 내기도 어렵고, 자식에게 알리자니 부부 사이에 괜한 짐이 될까 망설여집니다. 그래서 그런 돈은 대개 아무도 모르게 건너가고, 그만큼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에 사는 서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30년째 작은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다리미 두 대와 낡은 스팀기 한 대로 남편과 함께 외동딸을 키웠습니다. 딸은 서른넷에 같은 회사에 다니던 동갑내기와 결혼해 이웃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사위는 경상도 산골에서 자란 외아들이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오던 날 양복 소매 단추가 떨어진 것을 보고 서 씨가 그 자리에서 달아 주자, 사위는 “어머님 손이 저희 어머니 손이랑 똑같네요” 하며 웃었습니다. 그 뒤로 사위는 명절마다 세탁소 문 닫을 시간에 맞춰 와서 무거운 셔터를 내려 주었습니다. 서 씨는 사위 와이셔츠만큼은 돈을 받지 않고 빳빳하게 다려 보냈습니다.
안사돈은 상견례 자리에서 서 씨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 하던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그 안사돈이 몇 해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 씨는 철마다 안사돈 몫의 내의를 사서 딸 편에 보냈습니다.
1년 전 늦가을, 사위가 혼자 세탁소를 찾아왔습니다. 사위는 다림질대 옆에 한참 서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님, 어머니 치매가 많이 심해지셨어요. 아버지 혼자 감당이 안 돼서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는데, 입소 보증금이 1500만 원 모자랍니다. 이 사람한테는 말 못 했어요. 저희 집 일로 걱정 끼치기 싫어서요.”
그날 밤 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한쪽 다리를 끌며 겨우 가게 일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세탁소 적금은 남편이 다시 쓰러질 때를 대비해 매달 꼬박꼬박 부어 온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칠순 넘은 바깥사돈이 아픈 아내를 혼자 붙들고 있을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다음 날 서 씨는 적금을 깨서 사위 통장으로 1500만 원을 보냈습니다. “딸한테는 말 안 하마. 사돈어른 잘 모셔라.” 사위는 전화기 너머에서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사위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뜸해졌습니다. 설에도 회사 일이 바쁘다며 딸만 보냈습니다. 요양원 이야기를 꺼내면 “잘 계세요. 면회는 절차가 까다로워서요” 하고 말을 돌렸습니다. 서 씨는 서운했지만 어머니 걱정에 사위도 지쳤으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올해 추석을 앞둔 토요일, 서 씨는 처음으로 가게를 오전에만 열었습니다. 안사돈께 드릴 도톰한 내의 두 벌과 방앗간에서 막 찐 송편 한 상자를 챙겼습니다. 사위가 알려 준 요양원은 사돈댁 시골집에서 멀지 않은 읍내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동안 창밖 들판에서는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요양원 현관 접수대에서 서 씨는 안사돈의 성함을 말했습니다. 직원은 명단을 한 장씩 넘겨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르신, 그런 성함으로 입소하신 분은 없습니다. 작년 것까지 다 찾아봤는데요.”
서 씨는 송편 상자를 안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직원이 의자를 끌어다 주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서 씨는 택시를 잡아 사돈댁으로 향했습니다. 결혼 무렵 딱 한 번 가 본 길이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마당에 들어서자 빨랫줄에 천 기저귀가 줄줄이 널려 있었습니다. 수돗가에서는 바깥사돈이 허리를 굽힌 채 고무 대야에 기저귀를 치대고 있었습니다.
“사돈어른….”
바깥사돈은 놀라 몸을 일으키다 허리를 짚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안사돈이 누구를 부르는지 모를 소리를 냈습니다.
“요양원이라니요. 우리 집사람은 이 집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들 녀석은 그런 말 한마디도 없었소.”
서 씨는 수돗가 턱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돈이면 저 굽은 허리를 조금은 펴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 씨는 소매를 걷고 남은 기저귀를 함께 빨았습니다.
그날 저녁 서 씨는 딸네 집에 가서 사위를 마주 앉혔습니다. 사위는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주식을 하다 빚이 불었고, 독촉 전화에 쫓겨 거짓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장모님이 요양원까지 찾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서 씨는 가방에서 미리 적어 온 종이를 꺼냈습니다. 차용증이었습니다. 금액과 매달 갚을 액수, 다 갚을 날짜를 적고 사위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건 내 돈이 아니라 네 아버지 허리값이다. 그리고 앞으로 사돈댁에 갈 돈은 너를 거치지 않는다. 사돈어른 통장으로 내가 직접 보낼 거다.”
옆에서 굳은 얼굴로 듣던 딸에게도 서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털어놓았습니다. 딸 몰래 돈을 건넨 것이 일을 키웠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너한테 숨긴 게 잘못이었다. 부부 사이 돈 문제는 둘이 같이 알아야 한다.” 딸은 남편을 오래 바라보다가 엄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다음 달부터 사위는 차용증에 적힌 대로 돈을 보내왔습니다. 서 씨는 그 돈을 고스란히 바깥사돈 통장으로 옮겼습니다. 딸과 함께 장기요양등급 신청도 도와, 이제는 일주일에 몇 번 요양보호사가 사돈댁을 찾아옵니다.
자식의 배우자를 믿고 건네는 돈은 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돈이 누구의 손을 거쳐 어디에 닿는지 살피는 일도 정의 일부입니다. 몰래 건넨 돈은 몰래 새기 쉽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다면, 중간을 거치지 말고 그 사람에게 직접 건네세요. 그리고 가족 사이의 큰돈일수록 아무도 모르게 하지 말고, 함께 아는 사람을 하나쯤 두세요.
올가을 서 씨는 딸과 함께 다시 사돈댁 마당에 섰습니다. 담장 너머 감나무에는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빨랫줄에는 새 내의가 햇볕에 말라 가고 있었습니다. 바깥사돈은 툇마루에 앉은 안사돈의 무릎에 담요를 덮어 주며, 오랜만에 허리를 펴고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