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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시집보낸 부모는 사위 앞에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사위가 어려운 부탁을 해 오면 거절하기 어렵고, 그 부탁이 사돈댁 병원비라면 더 따져 묻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때 묻지 못한 한마디가 훗날 가장 아픈 자리에서 돌아오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32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면 셔터를 올리고 스팀다리미에 물을 채웁니다. 남편은 7년 전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딸은 서른다섯에 결혼해 이웃 도시에서 사위, 다섯 살 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조 씨는 사위를 아들처럼 여겼습니다. 결혼 전 처음 인사 오던 날, 양복 차림으로 가게에 들어선 사위는 조 씨가 손님 옷에 비닐 커버를 씌우는 것을 보고 말없이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남편 장례식 때는 사흘 동안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 신발까지 정리했습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휴가를 내고 내려와 절인 배추를 날랐습니다.
지난봄, 딸 내외가 함께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사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습니다. “장모님, 아버지 무릎이 다 닳아서 양쪽 다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수술비에 간병비, 재활 치료까지 하면 제가 모아 둔 돈으로는 모자라서요. 1,500만 원만 빌려주시면 1년 안에 꼭 갚겠습니다.” 딸은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 씨가 문병이라도 가야겠다고 하자 사위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돈께 신세 진 걸 아시면 자존심 상해하세요. 모르시게 해 주세요.” 조 씨는 그 마음을 헤아려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조 씨가 세탁소 수입에서 매달 50만 원씩 떼어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만기를 넉 달 앞두고 있었지만 조 씨는 이튿날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깼습니다. 이자를 손해 보는 것보다 사돈어른이 하루라도 빨리 편히 걷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보내며 “사돈어른 수술 잘 받으시라고 꼭 전해라”는 문자도 함께 남겼습니다.
그 뒤로 몇 달이 흘렀습니다. 사돈어른 경과를 물으면 사위는 “잘 걸으십니다” 한마디로 말을 돌렸습니다. 딸의 전화는 점점 짧아졌고, 추석에 내려온 사위는 밥상 앞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조 씨는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사위 체면을 생각해서였습니다. 다만 밤에 셔터를 내리고 나면 빈 적금 통장을 펼쳐 보곤 했습니다.
돈을 건넨 지 여덟 달째 되던 지난달, 딸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바깥사돈이 담석 때문에 쓸개를 떼어 내는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 씨는 가게 문에 ‘오후 휴무’라고 써 붙이고, 귤 한 상자와 직접 쑨 전복죽을 챙겨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창 밖으로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다인실 창가 침대에 바깥사돈이 링거를 꽂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곁에는 안사돈과 사위의 누나가 있었습니다. 딸 내외는 커피를 사러 잠깐 나갔다고 했습니다. 조 씨는 귤 상자를 내려놓고 사돈의 손을 잡았습니다.
“사돈어른, 무릎 수술하신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이렇게 고생을 하세요. 무릎은 좀 괜찮으세요?”
바깥사돈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침대에서 성큼 내려섰습니다. 그러고는 링거대를 끌고 조 씨 앞까지 거뜬히 걸어 나왔습니다. 환자복 바지 아래로 드러난 무릎에는 흉터 하나 없었습니다.
“무릎이요? 저는 수술한 적 없는데요.”
안사돈이 웃으며 거들었습니다. “이 양반 무릎은 아직 멀쩡해요. 지금도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가는걸요.” 조 씨는 들고 있던 죽 보온병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딸 내외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조 씨와 눈이 마주친 사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조 씨는 딸을 보았습니다. 딸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커피 잔을 내려다보며 입술만 깨물고 있었습니다.
“얘야, 너도 알고 있었니?”
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바깥사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너, 장모님께 무슨 소리를 한 거냐. 내 무릎을 핑계로 돈을 받아 갔단 말이냐?”
사위는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털어놓았습니다. 주식으로 잃은 돈을 메우려고 장모에게 돈을 빌렸고, 금방 되찾을 줄 알고 다시 넣었다가 그 돈마저 모두 날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한테 말하면 이 사람이랑 다 끝날 것 같아서…….”
안사돈은 얼굴을 감쌌고, 사위의 누나는 동생의 등을 주먹으로 쳤습니다. 옆 침대 환자들까지 숨을 죽였습니다. 조 씨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어른, 오늘은 쾌차하시는 것만 생각하세요. 이 일은 병실에서 할 얘기가 아닙니다.”
그 주 일요일, 조 씨는 딸 내외를 세탁소로 불렀습니다. 다림질 판 위에 백지 한 장과 볼펜을 올려놓았습니다. “차용증을 써라. 매달 30만 원씩, 다 갚을 때까지다.” 사위는 떨리는 손으로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조 씨는 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돈 잃은 것보다 네가 입 다물고 있던 게 더 아프다. 부부가 서로 감싸는 건 좋지만, 거짓말까지 같이 덮어 주는 건 감싸는 게 아니다.” 딸은 엄마 손을 잡고 오래 울었습니다.
며칠 뒤 퇴원한 바깥사돈이 세탁소로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제 탓입니다.” 조 씨는 봉투를 돌려드렸습니다. “사돈어른, 이건 사위가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래야 사위가 다시 일어섭니다.” 이달 초, 조 씨 통장에 첫 3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장모님, 끝까지 갚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다가,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처지가 됩니다. 한 번 무너진 믿음은 잃은 돈보다 되찾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가족 사이에 돈을 빌려줄 때 쓰임을 묻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일입니다. 병원비라면 영수증 한 장, 사돈께 거는 안부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했을 때 무조건 덮어 주기보다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자식을 다시 세우는 길입니다.
지난 주말 조 씨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손녀 손을 잡고 하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손녀가 은행잎 한 장을 주워 할머니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조 씨는 그 잎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해가 질 때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