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07:55

“4남매 집에 김장 300포기 보냈는데..” 1년 뒤 둘째 딸이 연 김치냉장고에 말문이 막혔다

김장은 겨울 밥상의 절반이라고들 합니다. 부모는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면서 자식들의 겨울 걱정까지 함께 버무립니다. 그런데 그 정성이 받는 쪽에서 어떤 무게로 남는지 물어보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 마흔 해 넘게 고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남편은 8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혼자서 고추밭 1,200평을 일굽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최 씨는 고추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큰아들이 군대 가던 해에는 고추 판 돈으로 손목시계를 사 주었습니다. 둘째 딸이 대학에 붙은 날에는 고추 마대를 머리에 이고 읍내 장까지 걸어가 입학금을 마련했습니다. 막내딸은 지금도 “엄마 손톱 밑은 늘 빨갰어” 하고 말합니다.

김장이 시작된 건 25년 전, 큰아들이 장가를 든 해였습니다. 첫 김장 김치를 맛본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먹어 본 김치 중에 제일 맛있어요.” 최 씨는 그 말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이듬해에는 둘째 딸네 몫을 보탰고, 자식들이 하나씩 살림을 낼 때마다 한 집씩 늘었습니다. 그렇게 네 집 몫, 해마다 300포기가 되었습니다.

배추는 늦여름에 직접 모종을 냈고, 고춧가루는 제 밭에서 딴 태양초를 빻았습니다. 새우젓과 멸치젓은 장날마다 조금씩 사 모았습니다. 김장철이면 사흘 동안 배추를 절이고 씻고 버무렸습니다. 이웃 한 씨가 일손을 거들어 주었고, 다 담근 김치통은 한 씨의 1톤 트럭에 실어 네 집을 차례로 돌았습니다.

처음 몇 해는 자식들이 김장날 내려와 마당이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런데 손주들이 자라면서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애 학원 시험이라서요.” “올해는 회사 행사가 겹쳤어요.” 최 씨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다들 사는 게 바쁘겠거니 했습니다.

지난해 김장날에는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한 씨와 단둘이 300포기를 버무렸습니다. 마지막 통을 덮다가 허리를 삐끗해 보름 동안 파스를 붙이고 지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 전화는 반가웠습니다. “엄마, 올해도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 한마디에 최 씨는 아픈 허리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올가을, 최 씨는 손녀 생일을 맞아 둘째 딸 집에 올라갔습니다. 햇고춧가루 두 근과 직접 담근 고추장 한 통을 보자기에 싸 들고 갔습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끝자락이었습니다.

“엄마, 고추장은 김치냉장고에 넣어 둘게.” 둘째 딸이 베란다로 나가 김치냉장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뒤따라가던 최 씨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낯익은 빨간 뚜껑 김치통이 빼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통마다 최 씨가 매직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3년 전 김장, 2년 전 김장, 작년 김장. 뚜껑에 두른 비닐랩은 감아 보낸 그대로였습니다. 한 통도 열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딸은 뚜껑을 붙잡은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최 씨가 겨우 입을 뗐습니다. “이게 다 뭐냐.”

한참 만에 딸이 털어놓았습니다. “엄마, 우리 식구 셋이 일 년에 김치 한 통을 못 먹어. 애 아빠는 혈압 때문에 짜게 먹지 말래서 김치를 거의 안 먹고. 그런데 버리자니 엄마 허리 생각나서 차마 못 버리겠더라.”

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습니다. “오빠네도, 막내네도 비슷해. 언니는 동네 경로당에 나눠 드린대. 다들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말을 못 했어.”

최 씨는 숨을 고르고 물었습니다. “그럼 김장날엔 왜 아무도 안 왔냐.”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우리가 가서 거들면 엄마는 내년에도 또 하실 거잖아. 안 가면 힘에 부쳐서 그만두실 줄 알았어. 그게 더 못된 짓인 줄은 작년에 엄마 허리 다치고서야 알았어.”

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25년 동안 자식들 겨울을 챙긴다고 믿었는데, 정작 자식들은 그 정성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냉장고만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최 씨는 마당 장독대 앞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4남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올해부터 김장 안 한다. 너희 탓하는 거 아니다. 엄마가 묻지도 않고 해 온 게 잘못이다. 그 대신 엄마도 이제 엄마 하고 싶은 거 좀 하련다.”

최 씨는 해마다 김장에 들던 돈을 꼽아 보았습니다. 배추 모종, 소금, 젓갈, 마늘, 트럭 기름값까지 치면 300만 원 가까이 되었습니다. 최 씨는 그 돈으로 평생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을 예약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는 4박 5일 일정이었습니다.

큰아들이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혼자 어떻게 가요.” 최 씨는 웃었습니다. “300포기도 혼자 담갔는데 여행 하나 못 가겠냐.” 막내딸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였습니다. “엄마, 김치 생각나면 그땐 우리가 내려가서 같이 담글게요.”

최 씨는 올해 딱 열 포기만 담갔습니다. 다섯 포기는 혼자 먹을 몫이고, 다섯 포기는 해마다 트럭을 몰아 준 한 씨 댁 몫이었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사과도 가지도 줄기도 다 내주고 그루터기만 남습니다. 주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받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는 정성은 서로를 지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정성을 건넬 때는 한 번쯤 물어보세요. 정말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말입니다. 그리고 받는 자식들도 서운하게 할까 봐 입을 다물기보다 솔직하게 말해 주는 편이 낫습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허리만 굽습니다.

11월 초, 최 씨는 제주 바닷가 마을의 낮은 돌담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바람에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검은 바위 너머로 해가 붉게 기울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고추 물이 빠진 손으로 모자를 눌러쓰고, 해가 다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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