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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뒤 사람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생활이다. 밥상과 통장, 현관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멈추면 몸이 먼저 주저앉는다. 장례를 치르고 몇 주 뒤에 들른 자녀는 냉장고 속에 그대로 남은 반찬통과 식탁 위에 뜯지 않은 고지서를 본다. 그제야 “아버지, 이러다 큰일 나요”라는 말을 꺼낸다.
복지관에서 30년째 어르신들을 만나 온 사회복지사는 혼자 된 뒤에도 생활을 추스르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이다. 그중 자주 보이는 세 가지를 정리했다.
3위. 배우자가 맡던 살림과 통장을 직접 익힌다
장례가 끝나면 자녀들은 “통장이랑 공과금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곤 한다.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남은 부모는 속으로 ‘이제 내 집 살림도 모르는 사람이 됐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모두 맡겨 두면 자녀가 바쁜 달에 연체가 생겨도 알 길이 없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도 줄어든다. 처음 몇 달은 자녀가 옆에서 함께 처리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서 관리비, 전기, 가스, 통신비가 언제 어느 통장에서 빠지는지 종이 한 장에 적어 두면 된다. 배우자 명의로 된 계좌나 보험, 휴대전화는 정리 절차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서 미룰수록 번거로워진다.
2위. 혼자 먹더라도 끼니 시간을 정해 둔다
자녀가 전화로 “식사는 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대개 “응, 먹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다. 속으로는 ‘혼자 먹자고 상을 차려 뭐 하나’ 싶어서 오후 늦게 빵 한 조각으로 때운 날이 많다.
끼니가 흐트러지면 잠드는 시간과 약 먹는 시간도 함께 흔들린다. 세 끼 시간을 정해 두되, 국 하나에 반찬 두어 가지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편이 오래간다. 한 번에 넉넉히 만들어 나눠 얼려 두면 차리는 부담이 준다. 텔레비전 앞이 아니라 식탁에 수저를 놓고 앉아 먹기만 해도 하루에 마디가 생긴다.
1위. 요일마다 집 밖에서 사람 만나는 날을 정해 둔다
오랜만에 마주친 이웃이 “요즘 통 안 보이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반가우면서도 뜨끔하다. ‘내가 그렇게 오래 집에만 있었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든다.
마음이 좀 나아지면 나가겠다는 다짐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배우자와 함께하던 장보기와 산책이 사라지면 나갈 이유부터 없어지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복지관 강좌, 수요일은 동네 걷기 모임, 금요일은 친구와 점심 하는 식으로 외출을 요일에 묶어 두면 기분과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 한 주만 빠져도 누군가 안부를 물어 준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장 든든한 안전망이다.
슬픔을 서둘러 끝낼 필요는 없다. 다만 생활은 오늘부터 다시 세울 수 있다. 자녀라면 대신 해 드리기보다 한 번 같이 해 드리는 쪽이 오래 남는다. 공과금 목록 한 장, 밥 먹는 시간 세 개, 달력에 적은 외출 한 줄이면 시작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