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04:27

“아랫집 쌍둥이 저녁 먹여 키웠는데..” 1년 뒤 아랫집 엄마가 붙인 경고문에 손이 떨렸다

이웃끼리 주고받는 정은 셈이 없어서 더 따뜻합니다. 돈 한 푼 오가지 않아도 내 시간과 손을 내어 준 일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런데 그 정이 한쪽에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사람은 지난 세월을 처음으로 다시 셈해 보게 됩니다.

경기도 어느 소도시의 아파트 15층에 사는 박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스물다섯 해 동안 동네 어린이집 주방에서 조리사로 일하다 4년 전 일을 놓았습니다.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가 명절이면 손주 둘을 데리고 내려옵니다.

박 씨가 아랫집 최 씨네와 가까워진 것은 4년 전 봄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섯 살 쌍둥이 남매를 양손에 하나씩 붙들고 쩔쩔매는 젊은 엄마를 만났습니다. 남자아이가 신발을 벗어 던지며 울자 박 씨가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기고 사탕 하나를 쥐여 주었습니다.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고, 최 씨는 내릴 때까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며칠 뒤 최 씨가 떡 한 접시를 들고 15층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부부가 모두 회사에 다니는데, 아이들을 봐 주던 친정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님, 염치없는 줄 알지만 평일 오후에 애들 하원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곱 시 반이면 꼭 데리러 올게요.” 박 씨는 손사래를 치다 끝내 웃고 말았습니다. “남의 집 애들 밥해 먹이던 게 내 평생 일이었어요. 걱정 말고 다녀와요.”

그날부터 3년 동안 박 씨의 평일 오후는 쌍둥이 차지였습니다. 네 시면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들을 받아 와 손을 씻기고 간식을 먹였습니다. 저녁에는 조리사 시절 솜씨대로 멸치볶음과 계란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자조림을 해 먹였습니다. 편식하던 누나는 박 씨 식탁에서 처음 시금치를 먹었고, 남동생은 박 씨 무릎에 앉아 한글을 뗐습니다. 최 씨가 봉투를 내밀 때마다 박 씨는 “애들 밥값 받으면 내가 장사꾼이지” 하며 도로 쥐여 보냈습니다.

아이 둘이 거실을 뛰어다니니 소리가 안 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아래인 최 씨네는 저녁까지 비어 있었지만, 그 옆집에 사는 정 씨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인터폰을 했고 한번은 직접 올라와 언성을 높였습니다. 박 씨는 그때마다 현관에서 허리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손주들이라 제가 더 단속할게요.” 남의 집 아이라고 하면 최 씨 부부가 곤란해질까 봐 끝까지 제 손주라고만 했습니다. 그러고는 쌈짓돈을 털어 거실에 두꺼운 매트를 두 겹으로 깔았습니다.

작년 봄 쌍둥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돌봄교실과 학원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최 씨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하며 과일 상자 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처음 몇 달은 가끔 인사를 오더니 그해 가을부터는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박 씨는 서운했지만 애들이 컸으니 그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쌍둥이 생일이면 운동화와 동화책을 사 보냈고, 주말이면 아랫집 대문 고리에 손수 만든 약과와 과일을 담은 바구니를 걸어 두었습니다. 바구니는 늘 비어서 돌아왔지만 잘 먹었다는 문자는 손에 꼽을 만큼이었습니다.

발길이 끊긴 지 1년쯤 지난 올해 추석, 아들 내외가 일곱 살과 다섯 살 손주를 데리고 와 하룻밤을 자고 갔습니다. 박 씨는 아이들이 뛸까 봐 저녁 내내 “살살, 살살” 하며 뒤를 따라다녔고, 아홉 시가 되기 전에 불을 껐습니다. 이튿날 아침,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박 씨는 아들네를 배웅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엘리베이터 거울 옆 게시판에 A4 용지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1502호 어르신, 손주 데려오시는 날은 미리 알려 주세요.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저희 쌍둥이가 잠을 못 잡니다.] 맨 아래에는 ‘1402호’라는 글자와 함께 최 씨의 서명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큰손주가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1502호가 할머니 집이야?” 며느리가 얼른 아이 손을 끌어내렸고, 아들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엄마, 1402호면 엄마가 3년 동안 애들 봐 준 그 집 아니에요? 그 애들이 뛰어놀던 데가 바로 엄마 거실이잖아요.” 박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종이를 떼려고 뻗은 손이 떨려 끝내 모서리 하나 들추지 못했습니다.

1층 현관에서는 우산을 털던 정 씨 할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다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동 주민 단톡방에 지난 설 무렵 올라온 글이었습니다. [위층 할머니가 애들을 막 키우세요. 손주만 오면 쿵쿵거려서 같은 라인 분들 다 힘드시죠?] 할아버지가 낮게 말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도 그 집에서 신고를 세 번이나 넣었답디다. 그 쌍둥이들 박 씨네서 뛸 때 내가 올라가 소리친 적도 있는데, 박 씨는 제 손주라고 머리를 숙였잖소. 이건 아니지 싶어서….”

아들이 우산을 거칠게 접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내려가서 따질게요.” 박 씨는 아들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네가 나설 일 아니다. 내가 시작한 정이니 내가 정리하마.” 손주들을 태운 아들의 차가 빗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박 씨는 현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날 밤 박 씨는 쌍둥이가 뛰놀던 매트 위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11월 쌍둥이 생일에 주려고 사 둔 책가방 두 개를 영수증과 함께 가게에 돌려주었습니다. 아랫집 대문 고리에 걸어 두었던 간식 바구니도 거두어 왔습니다. 그리고 편지지 한 장에 또박또박 글을 써서 엘리베이터 경고문 바로 옆에 붙였습니다.

[1402호에. 경고문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 손주들이 오는 날은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만 하나만 적어 둡니다. 3년 동안 그 댁 아이들이 뛰놀던 곳이 바로 이 거실이었고, 그때 들어온 항의에는 제 손주라 하고 제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었다면 계단 한 층이면 닿는 거리였습니다. 아이들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랍니다. 1502호 드림]

그날 저녁 최 씨가 15층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눈이 벌게진 채 “어머님, 애들이 요즘 예민해져서 그만…”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박 씨는 현관문을 반쯤만 연 채 차분히 말했습니다. “사과는 받을게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냥 위아래 층 사는 이웃으로 지냅시다.” 박 씨는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며칠 뒤 단톡방의 그 글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정은 셈하지 않을 때 가장 따뜻하지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계속 내어 줄 필요는 없습니다. 내 정성이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면, 그 정을 거두는 것도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관계를 정리할 때는 언성을 높이기보다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큰소리는 금세 잊히지만, 차분히 적힌 사실은 오래 남아 상대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올가을 박 씨는 남편과 함께 아파트 뒤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물가 버드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고, 수면 위로 저녁놀이 길게 번졌습니다. 다음 달 손주들이 다시 온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박 씨는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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