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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처음 제 장사를 해 보겠다고 하면 부모는 말리고 싶은 마음과 밀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밤잠을 설칩니다. 결국 평생 모은 돈을 꺼내 주는 쪽은 대개 부모입니다. 그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느낄 때 부모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멀어진 자식의 발걸음입니다.
권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충청도 어느 소도시 변두리에서 아내와 단둘이 삽니다. 젊은 시절 몇 군데를 거쳐 동네 인쇄소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만 30년을 일하다 5년 전 정년퇴직했습니다. 청첩장, 전단지, 학교 문집까지 권 씨 손을 거쳐 간 종이는 셀 수도 없었습니다. 손톱 밑에는 지금도 잉크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권 씨 부부에게는 외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어릴 적 인쇄소에 놀러 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좋아했습니다. 파지를 얻어 가 그림을 그렸고, 아버지가 찍어 준 이름 박힌 명함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아들이 중학생 때 일입니다. 권 씨가 인쇄기 롤러에 손가락을 다쳐 붕대를 감고 들어온 날, 아들은 말없이 아버지 운동화를 빨아 놓았습니다. 잉크가 시커멓게 밴 신발이었습니다. “아빠 신발이 제일 더러워서.” 무뚝뚝한 그 한마디를 권 씨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7년을 일했습니다. 서른이 되던 해, 아들이 퇴근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 저 가게 하나 해 보고 싶어요. 매장 관리하면서 다 배웠어요. 딱 한 번만 도와주세요.”
아내는 반대했습니다. “그 돈이 당신 30년 일한 값인데, 장사가 어디 쉬운 줄 알아요?” 권 씨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퇴직금에 부부가 매달 붓던 적금을 보태 7,000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통장을 건네며 권 씨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남의 가게에서 기계만 돌렸다. 너는 네 가게 해 봐라. 갚으란 소리 안 한다.”
치킨집은 아파트 상가 1층에 문을 열었습니다. 개업 날 권 씨는 인쇄소 후배에게 부탁해 전단지 3,000장을 찍어 와 아파트 우편함마다 손수 꽂았습니다.
처음 몇 달은 장사가 제법 됐습니다. 그러나 길 건너에 큰 치킨집 두 곳이 연달아 들어서고 닭값과 기름값이 오르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습니다. 아들은 1년 반 만에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권리금은커녕 철거비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 아들은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설에도 추석에도 “일이 있어서요”라는 짧은 문자만 왔습니다. 전화를 걸면 받기는 했지만 늘 서둘러 끊었습니다. 아내는 아들 방 이불을 볕에 널었다 걷기를 되풀이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퇴직금 날리고 아들까지 잃었네” 하고 수군거렸습니다. 권 씨는 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밥은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명절 밤이면 권 씨는 마당 평상에 앉아 오래도록 대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올봄, 아들이 몇 해 만에 대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옆에는 단정한 인상의 아가씨가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 결혼합니다.” 아들은 그 말만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반가움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권 씨는 “그래, 잘됐다” 소리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식은 가을 첫 주말, 시내의 작은 예식장에서 열렸습니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선선한 날이었습니다. 권 씨는 장롱 속에 아껴 두었던 양복을 꺼내 입고 혼주석에 앉았습니다. 신랑 입장 때 보니 아들은 볼이 쑥 패고 눈 밑이 거뭇했습니다. 권 씨는 그게 마음에 걸려 식 내내 아들 얼굴만 보았습니다.
주례 없는 예식이었습니다. 사회자가 “이제 신랑이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하자, 아들이 마이크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모서리가 닳고 표지가 누렇게 바랜 통장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5년 전 아버지가 30년 인쇄소 다니신 퇴직금으로 제 가게를 차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 가게를 1년 반 만에 닫았습니다.”
하객석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들은 혼주석 앞으로 걸어와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그 뒤로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고, 새벽에는 택배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분류했습니다. 번 돈은 이 통장에 넣었습니다. 통장 이름을 ‘아버지 퇴직금’으로 해 두고 한 달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지난달에 7,000만 원을 다 채웠습니다.”
아들이 통장을 아버지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표지 안쪽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아버지 퇴직금’이라는 글씨가 보였습니다. 펼치니 30만 원, 120만 원, 200만 원 하는 숫자가 빽빽하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다 갚기 전에는 아버지 얼굴 볼 낯이 없었습니다. 명절에 못 가서 죄송했습니다. 이 사람한테도 약속했습니다. 이 통장 다 채우고 나서 결혼하자고요. 그걸 3년 동안 기다려 줬습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권 씨는 통장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원망하던 지난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피한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서려고 홀로 밤길을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권 씨는 일어나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손에 닿는 등이 예전보다 훨씬 얇았습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갚으란 소리 안 한다고 했잖아.” 그 말을 끝으로 권 씨는 하객들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아내도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박수 소리가 한참 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식이 끝난 뒤 권 씨는 통장을 아들 내외에게 다시 내밀었습니다. “이건 너희 새 출발에 써라. 아버지는 이 통장 받은 걸로 퇴직금 다 돌려받았다.” 아들은 한사코 손을 저었습니다. 결국 그 돈의 절반은 아들 내외 전셋집에 보태고, 나머지는 언젠가 태어날 손주 몫으로 묶어 두기로 했습니다.
자식에게 건넨 돈이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 정작 부모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연락 없는 자식의 침묵입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미안함과 다짐이 숨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넘어진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다그침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자식은 제 방식으로 부모에게 돌아오려 애씁니다. 문을 닫아 두지 말고 조용히 불을 켜 두세요.
올가을 권 씨는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 저수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물가의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저녁 햇살이 수면 위로 길게 번졌습니다. 권 씨 손에는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사 온 털장갑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