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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다 보면 위층과 아래층은 벽 하나, 바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삽니다. 얼굴을 붉히는 것도 한순간이고, 서로 한 발씩 물러나 정을 쌓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그런데 화해하자고 내민 손을 상대가 엉뚱하게 쓰는 일도 있습니다.
정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서 40년 동안 목수로 일했습니다. 젊어서는 한옥 서까래를 깎았고, 나이 들어서는 아파트 붙박이장과 마루를 짰습니다. 다섯 해 전 무릎이 나빠져 연장을 내려놓았습니다. 지금은 지은 지 스무 해 된 아파트 7층에서 예순여덟 아내와 둘이 삽니다. 아들은 다른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딸은 시집가 아이 둘을 키웁니다.
2년 전 봄, 위층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는 시루떡을 쪄 들고 올라가 인사를 했습니다. 새댁은 연신 고개를 숙였고, 신랑도 웃으며 떡을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좋은 이웃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석 달쯤 지나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으면 쿵쿵 발뒤꿈치 소리가 천장을 울렸고, 자정 무렵에는 의자 끄는 소리가 났습니다. 혈압약을 먹는 아내는 새벽까지 뒤척였습니다. 정 씨가 인터폰을 걸자 신랑은 “저희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하고 뚝 끊었습니다. 그 뒤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서로 눈을 피했습니다.
그해 가을, 정 씨는 마음을 다잡고 위층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연 새댁은 정 씨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저희도 매트 깔고 싶어요. 그런데 전세 대출에 결혼식 빚까지 있어서요. 거실 시공 견적이 400만 원이래요.”
그날 밤 정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여보, 그 돈이면 우리 반년 생활비요.” 정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남은 세월 잠 편히 자는 값이라고 생각합시다. 젊은 사람들하고 원수로 지낼 수는 없지 않소.”
400만 원은 정 씨가 연장을 정리하며 아끼던 대패와 끌을 후배 목수에게 넘기고 받은 돈에, 아내가 부어 온 적금을 보탠 것이었습니다. 정 씨는 위층 신랑의 계좌로 돈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태 줄 테니, 이제 사이좋게 지냅시다.” 정 씨가 시공하는 날 한번 봐 주겠다고 하자 신랑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어르신 무릎도 안 좋으신데요. 업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소리는 조금 줄었습니다. 그래도 밤이면 여전히 쿵 하고 울렸습니다. 새댁은 “깔았는데도 건물이 오래돼서 울리나 봐요” 했고, 정 씨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명절이면 부부는 귤 한 상자를 들고 와 “어르신 덕분이에요” 하고 인사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단지 노인정에 가면 사람들이 정 씨를 보고 말을 멈췄습니다. 한번은 관리사무소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어르신, 혹시 밤에 천장을 두드리시거나 하시는 건 아니지요?” 정 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나이 든 사람이 따지고 들면 모양만 우스워진다며 그냥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정 씨의 칠순 잔치가 열렸습니다. 아들과 딸이 시내 한정식집 별실을 빌렸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가족들과 노인정 친구들, 같은 동 5층에 사는 이웃 최 씨도 왔습니다. 정 씨는 화해의 뜻으로 위층 부부도 불렀습니다.
부부는 꽃바구니와 작은 저장장치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어르신께 드리려고 축하 영상을 만들었어요.” 몇 주 전 새댁이 옛날 사진을 몇 장 빌려 달라고 했던 까닭을 아내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별실 벽의 큰 화면에 영상이 흘렀습니다.
젊은 시절 정 씨가 대패질하는 흑백 사진이 나오자 박수가 터졌습니다. 아내와 찍은 결혼사진에는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어서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저희 집에서 어르신을 생각하며.’ 그리고 위층 거실 사진이 나왔습니다.
정 씨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40년 바닥을 만져 온 목수의 눈에는 한 번에 보였습니다. 소파 아래, 텔레비전 앞, 식탁 밑까지 반들반들한 맨 대리석 바닥이었습니다. 매트는 한 장도 없었습니다.
정적을 깬 사람은 최 씨였습니다. “어머, 저 집 매트 깔았다더니? 우리한테는 아랫집 노인네가 매트값 뜯어 갔다고 하던데?” 노인정 친구 한 분도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나도 들었네. 아래층에서 밤마다 천장을 두드려 못 살겠다고.”
아들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매트값 뜯어 가다니요. 그 돈은 아버지가 대 주신 겁니다.” 신랑은 허둥지둥 화면을 끄려다 저장장치를 떨어뜨렸고, 새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참 뒤 신랑이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차 할부랑 카드값이 밀려서요. 매트는 나중에 깔려고 했는데….”
“동네에는 왜 그렇게 말했소?” 정 씨가 묻자 신랑은 바닥만 보았습니다. “소음 얘기가 단지에 퍼질까 봐, 저희가 먼저….” 400만 원을 받아 다른 데 쓰고, 그것을 감추려 도리어 아래층 노인을 가해자로 만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정 씨의 소매를 붙잡고 떨었습니다.
정 씨는 큰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내 잔칫날이오. 앉아서 밥은 드시고 가시오. 돈 이야기는 다음 주에 우리 집에서 합시다.” 그 말에 별실에는 다시 수저 소리가 났지만, 위층 부부는 끝내 수저를 들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뒤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정 씨는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돈은 다달이 형편대로 갚으시오. 대신 단지 사람들한테 한 말은 당신들 입으로 바로잡으시오.” 부부는 갚을 날짜와 금액을 종이에 적어 서명했고, 같은 동 집들을 찾아다니며 사과했습니다. 최 씨도 정 씨를 찾아와 “남의 말만 듣고 미안했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 씨는 한 가지를 더 했습니다. 부부가 자재를 사 오자 무릎 보호대를 차고 처음으로 위층 거실에 올라가 줄자를 폈습니다. 품삯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틀 만에 거실 바닥에 매트가 반듯하게 깔렸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건넨 돈이 오히려 나를 해치는 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정이 담긴 돈일수록 어디에 쓰였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소문은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웃어넘기지 말고 차분히 물어보세요. 그 한마디가 쌓인 오해를 일찍 걷어 냅니다.
늦가을 저녁, 정 씨는 아내와 아파트 뒤 강둑길을 걸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발밑에 수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위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날 오랜만에 아침까지 깊이 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