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십 년 쌓은 우정이 몇만 원 앞에서 끝난다면 믿겠는가. 모임을 깨는 것은 대개 큰 다툼보다 말 못 하고 삼킨 회비 한 줄이다.
계모임이든 동창 모임이든 처음에는 서로 믿으니 규칙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돈이 쌓일수록 서운함도 함께 쌓인다. 회비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면 무엇을 미리 정해 두어야 하는지 차례로 짚어 본다.
3위. 형편을 묻지 않고 회비부터 올리는 모임
누군가 “이 정도는 다들 낼 수 있잖아”라고 하면 반대하기가 어렵다. 한자리에 퇴직한 사람도 있고, 병원비가 드는 사람도 있고, 자식 뒷바라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래도 회비와 경조사비를 똑같이 맞추자고 하면, 형편이 빠듯한 사람은 그날부터 모임 날짜를 부담으로 느낀다.
그런 사람은 따지지 않는다. 핑계를 대고 한 번 빠지고, 다음에는 연락을 늦게 받는다. 금액을 올리기 전에 기본 회비와 선택 항목을 나눠 두면, 누구도 자기 형편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에 남을 수 있다.
2위. 나갈 때 돌려줄 기준이 없는 모임
모임에 영원히 남는 사람은 없다. 이사를 가거나, 몸이 불편해지거나, 사이가 틀어져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 그동안 낸 돈을 얼마나 돌려줄지 정해 두지 않았다면, 떠나는 사람은 손해를 봤다고 느끼고 남는 사람은 서운하다고 느낀다.
문제는 그 기준을 누군가 나가겠다고 한 뒤에야 정하려 한다는 데 있다. 그때부터는 원칙이 아니라 감정을 다투게 된다. 적립금 가운데 얼마를, 어떤 경우에, 언제까지 돌려줄지는 아무 일 없을 때 적어 두어야 한다.
1위. 총무 혼자 통장을 쥐고 내역을 보여 주지 않는 모임
성실한 친구에게 총무를 맡기고 고맙다는 말로 끝내면, 그 뒤로 통장은 한 사람만 보는 물건이 된다. 총무가 한 푼도 손대지 않았더라도, 내역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짐작이 자라기 쉽다.
그래서 내역 공개는 총무를 의심하는 장치가 아니라 총무를 지켜 주는 장치다. 입출금 내역을 정기적으로 함께 보고, 큰 지출은 두 사람 이상이 확인하도록 정해 두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믿는 사이라면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이이기에 기꺼이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돈 이야기를 꺼내면 정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다들 망설인다. 하지만 모임을 오래 지키는 것은 믿는 마음만이 아니다. 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미리 그어 둔 선이 함께 있어야 한다.
다음 모임에서는 회비 기준, 탈퇴 시 환급 원칙, 장부 공개 방법 세 가지만이라도 글로 남겨 두자. 지금 웃으며 정한 원칙이 십 년 뒤 서로의 얼굴을 지켜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