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3:38

“단골 청년 정장 공짜로 다려줬는데..” 10년 뒤 청년이 건넨 나무 현판에 주저앉아 울었다

동네 가게를 오래 하다 보면 계산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손님이 생깁니다. 형편이 빤히 보이는 단골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기가 미안해 그냥 보내다 보면 장부에는 받지 못한 돈이 쌓입니다. 주변에서는 그러다 가게 망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건넨 인심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수도권 한 도시의 오래된 주택가에 사는 황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서른 살에 시작한 세탁소를 33년째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둘이 가게를 꾸려 아들과 딸을 대학까지 보냈고, 지금은 둘 다 결혼해 따로 살고 있습니다.

황 씨의 하루는 아침 일곱 시에 스팀다리미에 물을 채우는 일로 시작됩니다. 여름이면 가게 안이 사우나처럼 달아올라 러닝셔츠가 땀에 젖었고, 손바닥에는 다리미 손잡이 모양으로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골목 사람들은 황 씨네 세탁소에 맡기면 바지 주름이 칼처럼 선다며 30년 넘게 단골로 다녔습니다.

13년 전 봄, 세탁소 건너편 고시원에 사는 청년 윤 씨가 처음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습니다. 손에 든 검은 정장은 소매가 번들거리고 단추 하나가 덜렁거렸습니다. “중고 가게에서 산 건데요, 내일 면접이라 좀 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황 씨는 단추를 새로 달고 소매의 번들거림을 스팀으로 죽인 뒤 바지 주름을 세워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장을 찾으러 온 청년의 손에는 동전이 섞인 지폐 몇 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황 씨는 그 돈을 보고는 반만 받았습니다.

그 뒤로 청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정장을 들고 왔습니다. 면접이 없는 주에도 와서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갔습니다. 아내는 청년이 저녁마다 컵라면을 먹는다는 말을 듣고, 반찬을 만드는 날이면 통에 따로 담아 두었습니다. 장마철 어느 날에는 청년이 정장을 비닐로 몇 겹 싸서 품에 안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거 젖으면 저 면접 못 봐요.” 황 씨는 그날 가게에 남아 있던 우산 하나를 청년 손에 쥐여 보냈습니다.

석 달쯤 지난 어느 날, 청년이 지갑을 열다 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장님, 이번 주는 돈이 없어서요. 다음 주에 꼭 드릴게요.”

황 씨는 다림질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습니다. “총각, 앞으로 이 정장은 돈 받지 않으마. 대신 붙는 날 제일 먼저 와서 알려 주게. 그거면 됐네.”

그날부터 3년 동안 황 씨는 매주 그 정장을 공짜로 빨고 다렸습니다. 상하 드라이에 셔츠 다림질까지 하면 한 주에 이만 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장부 귀퉁이에 따로 적어 둔 금액을 나중에 세어 보니 3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세탁 기계가 고장 나 적금을 깨서 수리비를 대야 했습니다. 아내가 한숨을 쉬어도 황 씨는 청년의 정장만큼은 늘 맨 앞에 걸어 두었습니다.

3년째 되던 가을,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저 붙었어요!” 황 씨는 다리미를 내려놓고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청년은 지방 근무지로 내려갔고, 처음 몇 해는 명절마다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다 연락은 차츰 뜸해졌고, 어느새 소식이 끊겼습니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황 씨는 그저 잘 살고 있으려니 했습니다.

올봄, 골목에 재개발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33년 동안 지킨 세탁소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마지막 영업일은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옷걸이가 다 빠진 행거는 앙상했고, 벽에는 33년 동안 걸려 있던 간판 자국만 하얗게 남아 있었습니다. 옆 가게 정육점 최 씨가 들러 “형님, 고생 많으셨수” 하며 막걸리 한 병을 놓고 갔습니다. 황 씨는 마지막으로 다리미의 물을 빼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렸습니다. 말끔한 감색 양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우산을 접으며 들어섰습니다. 품에는 신문지로 싼 기다란 물건과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황 씨가 안경을 고쳐 쓰는 순간 사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장님, 저 고시원 총각입니다. 붙는 날 제일 먼저 알려 드린 뒤로는 너무 늦게 왔습니다.”

청년, 아니 이제 서른아홉이 된 윤 씨가 신문지를 벗겼습니다. 결 고운 나무판에 세탁소 이름이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어서 봉투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습니다. 사진 속 하얀 문 위에 같은 이름이 적힌 문패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정장 대여실’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장님, 저 그 정장 한 벌로 면접을 서른두 번 봤습니다. 서른한 번 떨어지는 동안 그 옷이 한 번도 구겨진 적이 없었어요. 떨어지고 돌아와도 토요일이면 다시 반듯해져 있으니까, 다음 주에 또 입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윤 씨는 지금 작은 회사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5년 전부터 회사 한쪽 방에 정장 스무 벌을 걸어 두고, 형편이 어려운 지원자들에게 면접 날 빌려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돌려받은 정장은 동네 세탁소에 맡겨 회사 돈으로 빨고 다린다고 했습니다.

“그 방 이름을 사장님 세탁소 이름으로 붙였습니다. 그동안 거기서 정장 빌려 간 친구들이 백 명이 넘어요. 세탁소는 문을 닫아도 이 이름은 계속 걸려 있을 겁니다. 이 현판은 사장님 댁에 걸어 두셨으면 해서 만들었습니다.”

황 씨는 현판을 받아 들고 한참 동안 글자를 손끝으로 쓸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다림질대 옆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아내가 뒤에서 황 씨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울었습니다. 장부 귀퉁이에 적어 둔 300만 원이 백 사람의 면접 정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건넨 인심이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섭섭한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하지만 정성은 받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때 그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바로 하지 못했다고 해서 마음까지 잊은 것은 아닙니다.

남을 도울 때는 내 형편이 무너지지 않는 만큼만 하되, 그 마음을 아끼지는 마세요. 큰돈이 아니어도 누군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받쳐 주는 손길이 있습니다. 그런 손길은 오래 남아 또 다른 사람을 일으킵니다.

지난주 황 씨 부부는 새로 옮긴 작은 아파트 현관 위에 나무 현판을 걸었습니다. 창밖으로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흩날렸고, 늦은 오후 햇살이 현판 위 글자를 비추었습니다. 황 씨는 현관에 서서 반듯하게 걸렸는지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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