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7:11

“아들 학비 1억2000만원 대줬는데..” 9년 뒤 아들이 내민 도면 한 장에 주저앉아 울었다

자식 공부에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평생 일군 가게를 내놓더라도 자식 앞길이 열린다면 기꺼이 내놓는 것이 부모입니다. 다만 그렇게 다 내주고 나면, 자식이 무심해 보이는 날마다 텅 빈 손이 유난히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서 30년 동안 철물점을 했습니다. 1층은 가게, 2층은 세를 놓던 낡은 2층 건물이었습니다. 젊어서 공사판을 떠돌며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 마련한 건물이었습니다. 황 씨에게는 아내와 외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가게에서 자랐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못 상자 위에 공책을 펴고 숙제를 했고, 숙제가 끝나면 장부 뒷장에 가게 진열대를 그렸습니다. “아빠, 선반을 이렇게 돌려 놓으면 손님이 덜 부딪혀요.” 황 씨가 반신반의하며 아들 그림대로 선반을 옮겼더니 정말로 통로가 넓어졌습니다. 그날 황 씨는 아들에게 자기가 쓰던 줄자를 물려주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비 오는 날이면 가게 셔터를 내리고 아버지와 함께 새는 지붕을 고쳤습니다. 사다리를 붙잡고 있던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나중에 비 안 새는 집을 짓는 사람이 될 거예요.” 아들은 그 말대로 건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9년 전, 대학을 마친 아들이 독일의 한 대학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장학금은 학비 일부뿐이었고, 생활비와 나머지 비용을 합치면 몇 해 동안 1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아들은 합격 통지서를 식탁에 내려놓고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저 그냥 여기서 취직할게요. 우리 형편에 무리예요.”

황 씨는 담배를 끄고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가게는 또 하면 된다. 공부는 때가 있다. 너는 가서 공부나 해라.”

그 주에 황 씨는 건물을 내놓았습니다. 대출을 갚고 손에 남은 돈 가운데 1억2000만 원을 아들 몫으로 떼어 두었습니다. 30년 손때가 묻은 진열대는 고물상이 실어 갔습니다. 건물은 시장 상인회 일을 함께 보던 박 씨가 사들였습니다. 황 씨 내외는 나머지 돈으로 시장 뒤편의 작은 빌라에 전세를 얻었고, 황 씨는 동네 집수리 일을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아들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의 한 설계사무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집에 오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명절이면 전화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아버지, 이번에도 일이 밀려서요. 죄송해요.”

황 씨는 괜찮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헛헛했습니다. 아내가 “요즘 젊은 사람들 다 바쁘대요” 하고 달래도 황 씨는 대꾸 없이 베란다에 나가 섰습니다. 가끔 옛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일부러 고개를 돌렸습니다. 박 씨가 세를 놓았던 그 자리는 몇 해 사이 주인이 몇 번 바뀌더니, 언젠가부터 셔터가 내려진 채였습니다.

올가을 황 씨는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오래 앓던 척추관협착증이 심해져 다리가 저려 걸을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수술 날 와서 하룻밤을 병상 옆에서 새우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퇴원하던 날,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습니다. 아들이 차를 몰고 병원에 왔습니다. 황 씨는 허리 보조기를 차고 조심조심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차가 집으로 가는 길을 지나쳐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얘야, 길 잘못 들었다.”

아들은 대답 없이 옛 철물점 건물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셔터 위에는 빛바랜 자국으로 ‘철물’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황 씨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긴 왜 왔냐. 남의 건물 앞에서.”

아들은 서류 봉투에서 둘둘 만 종이 한 장과 얇은 서류 한 묶음을 꺼냈습니다. 먼저 종이를 펼쳐 아버지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연필 선이 빽빽한 도면이었습니다. 1층에는 ‘아버지 작업실’이라는 글씨와 함께 작업대와 공구 벽이 그려져 있었고, 2층에는 ‘살림집’이라는 글씨 아래 안방과 부엌, 볕 드는 거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계단 옆에는 작은 글씨로 ‘난간 높게, 손잡이 양쪽’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거요.” 아들이 서류 묶음을 내밀었습니다. 등기권리증이었습니다. 소유자 칸에는 황 씨의 이름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황 씨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손이 떨려 종이가 바스락거렸습니다. “이게… 이게 무슨 소리냐.”

아들이 천천히 말했습니다. “독일 가는 날 공항에서 결심했어요. 아버지 가게는 제가 꼭 다시 찾아 드리겠다고요. 돌아와서 9년 동안 월급에서 떼어 모았어요. 주말에는 남의 설계 일을 따로 받아서 했고요. 그래서 명절에도 못 내려왔어요. 다 될 때까지는 말씀 안 드리고 싶었어요.”

아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습니다. “박 씨 아저씨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다른 데 넘기지 않고 기다려 주셨어요. 세금 신고도 다 제대로 마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공사는 다음 달에 시작해요. 이제 아버지 허리 아프게 계단 많은 빌라에 사시지 마세요.”

황 씨는 차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보조기를 찬 허리로 몇 걸음 걸어 셔터 앞에 섰다가,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비에 젖은 보도블록 위에 앉아 셔터에 손바닥을 댄 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30년 동안 열고 닫던 그 셔터였습니다. 아들이 달려와 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허리 다치세요.”

“나는… 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다.” 황 씨의 목소리가 갈라졌습니다. “전화 끊고 나면 서운해서, 내가 괜히 다 줬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

아들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어떻게 잊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줄자로 이거 다 쟀어요.” 아들의 점퍼 주머니에서 낡은 줄자가 나왔습니다. 손때가 까맣게 앉은, 바로 그 줄자였습니다.

그날 저녁, 황 씨는 아내에게 도면을 펼쳐 보였습니다. 아내는 한참 들여다보다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당신 공구 벽까지 그려 놨네. 망치 걸 자리, 톱 걸 자리까지.” 황 씨는 아들이 그린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식에게 준 것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부모도 사람이라 서운한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침묵이 늘 무심함은 아닙니다. 말없이 버티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부모가 자식에게 건넨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자식의 손을 거쳐 더 단단한 모양으로 돌아옵니다.

이듬해 봄, 황 씨는 새로 고친 1층 작업실에 앉아 이웃이 맡긴 의자 다리를 고쳤습니다. 활짝 열어 둔 셔터 너머로 시장 골목에 봄볕이 길게 들어왔습니다. 2층 창가에서는 아내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황 씨는 공구 벽에 망치를 걸어 두고, 아들이 오기로 한 저녁을 기다리며 골목 끝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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