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7:18

“분식집 월세 1200만원 탕감해 줬는데..” 2년 뒤 단골손님이 전한 한마디에 귀를 의심했다

세입자의 형편이 기울면 집주인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밀린 월세를 받지 않고 덮어 주는 일은 큰돈을 내어 주는 일이면서 그 사람의 내일을 믿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베푼 인심이 언제나 고마움으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경기도 어느 소도시 시장 입구에 3층짜리 낡은 상가 건물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27년 동안 떡방앗간을 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한 건물이었습니다. 남편은 6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서울에서 삽니다. 서 씨는 3층 살림집에 혼자 살며 아래층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합니다.

1층에는 9년째 분식집을 하는 마흔 중반의 부부가 세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 가게를 보러 왔을 때 아내는 만삭이었습니다. 서 씨는 보증금을 깎아 주며 말했습니다. “애 낳고 몸 풀 때까지는 월세 며칠 늦어도 괜찮아요.”

부부는 새벽 여섯 시면 셔터를 올리고 김밥을 말았습니다. 서 씨는 아침마다 계단을 내려와 꼬마김밥 한 줄을 사 먹었고, 아이가 열이 나는 날이면 3층으로 데려와 대신 봐 주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부부보다 먼저 나와 가게 앞을 쓸었습니다. 그사이 주변 상가들은 월세를 두세 번씩 올렸지만, 서 씨는 한 번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3년 전 봄, 가게 앞 도로에서 하수관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펜스가 가게 앞을 막고 흙먼지가 날리자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공사는 1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월세가 한 달, 두 달 밀리더니 어느새 열 달 치, 1200만원이 되었습니다.

2년 전 겨울 저녁, 분식집 남편이 귤 한 봉지를 들고 3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모님, 면목이 없습니다. 가게를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밀린 월세는 보증금에서 빼시고, 모자란 건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서 씨는 한참 귤만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습니다. “보증금 빼면 다시 시작할 돈도 없잖아요. 밀린 건 없던 걸로 합시다. 공사 끝날 때까지만 버텨 봐요.”

남편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안 잊겠습니다.”

그 1200만원이 빠지자 서 씨의 살림도 빠듯해졌습니다. 재산세와 건물 보험료를 내느라 손주 돌잔치 때 주려고 붓던 적금을 깨야 했습니다. 아들이 전화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엄마, 월세가 엄마 생활비잖아요. 하다못해 종이 한 장이라도 받아 두세요.” 서 씨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밀린 월세 1200만원을 받지 않기로 함’이라고 적고, 부부와 함께 이름을 써서 한 장씩 나눠 가졌습니다.

공사가 끝나자 손님이 돌아왔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부부가 만든 치즈 떡볶이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점심마다 줄이 섰습니다. 서 씨는 창문으로 그 줄을 내려다보며 제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다만 부부의 발길은 점점 3층에서 멀어졌습니다. 명절마다 오던 인사도, 계단에서 마주치면 건네던 김밥 한 줄도 어느새 끊겼습니다.

올여름, 부부는 길 건너 새로 지은 건물로 가게를 넓혀 옮긴다고 했습니다. 서 씨는 서운했지만 “잘됐다, 잘된 일이다” 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이사를 열흘 앞둔 아침이었습니다. 시장에서 30년째 채소 가게를 하는 단골 윤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 씨, 분식집 유리문에 붙은 거 봤어? 다들 서 씨 욕을 하던데. 악덕 건물주 횡포로 떠난다고 써 붙였더라고.”

서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늦장마 끝이라 골목 바닥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분식집 유리문 한가운데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손님 여러분. 악덕 건물주의 횡포로 9년 정든 이곳을 떠납니다. 길 건너 새 매장에서 더 크게 찾아뵙겠습니다.]

종이 아래에는 새 가게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나가던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장 보러 나온 아주머니 둘이 “저 집 주인이 그렇게 독하대” 하며 서 씨 곁을 지나갔습니다. 서 씨는 종이 앞에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9년 동안 매일 아침 꼬마김밥을 사러 드나들던 바로 그 문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젊은 남자 하나가 3층으로 찾아왔습니다. 분식집 자리를 이어받으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건물주님, 솔직히 여쭤보려고요. 사장님 부부 말로는 월세를 갑자기 두 배로 올리셔서 쫓겨나는 거라던데요. 그래서 권리금이라도 제대로 받아야 억울하지 않다고 하셔서요.”

서 씨는 그제야 모든 것이 보였습니다. 부부는 1200만원을 탕감받은 일은 입도 뻥끗하지 않은 채, 쫓겨나는 세입자의 억울한 사연을 앞세워 동네의 동정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 동정으로 새 가게를 알리고, 권리금 값까지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 씨는 장롱에서 서류철을 꺼냈습니다. 9년 동안 같은 금액이 찍힌 월세 통장과 2년 전 함께 이름을 쓴 그 종이였습니다. 서 씨는 청년에게 통장을 펼쳐 보였습니다. “월세는 9년 동안 한 번도 안 올렸어요. 새로 오시는 분께도 같은 금액으로 드릴 겁니다. 권리금은 두 분이 알아서 정하시고요.”

그날 저녁 서 씨는 분식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마감하던 부부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서 씨는 2년 전의 그 종이를 계산대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1200만원 돌려 달라는 말 하러 온 거 아니에요. 그건 내가 준 거니까. 그런데 내 이름까지 가져다 쓰라고 준 건 아니에요.”

아내는 고개를 숙였고, 남편은 “장사하다 보니 말이 좀 부풀려졌습니다” 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서 씨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저 종이 떼 주세요. 안 떼면 바로 옆에 이 종이를 나란히 붙이겠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둘 다 읽고 판단하면 되겠지요.”

이튿날 새벽, 유리문의 종이는 사라지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만 남아 있었습니다. 서 씨는 그날부터 세입자와 나누는 약속은 무엇이든 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인심은 지금처럼 쓰되, 기록만큼은 꼭 챙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솝 우화』에는 얼어 죽어 가는 뱀을 품에 안아 녹여 주었다가 오히려 물린 농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는 베푼 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심을 거둘 필요는 없지만, 내 선의가 남의 손에서 엉뚱하게 쓰이지 않도록 지켜 낼 줄은 알아야 합니다.

돈을 덮어 줄 때는 마음으로 덮되, 덮었다는 사실은 종이에 남겨 두세요. 그 한 장이 훗날 내 이름을 지켜 줍니다.

올가을, 1층에는 그 청년의 작은 국숫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서 씨는 아침마다 가게 앞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쓸고, 따끈한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시장 골목 위로 맑은 가을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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