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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를 맡아 키우는 조부모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냅니다. 맞벌이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아이를 봐 주고, 그것도 모자라 학원비까지 보태 줍니다. 그러나 정을 쏟을수록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식도 생깁니다.
경상도의 한 읍내에 사는 박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읍내 장터 골목에서 서른두 해째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의자 세 개짜리 가게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파마와 염색은 거의 다 박 씨 손을 거쳤습니다. 남편은 정미소에서 일하다 퇴직했고, 부부에게는 외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이웃 도시의 회사에 다녔고, 며느리는 병원 원무과에서 일했습니다. 손녀가 세 살 되던 해 봄, 아들 내외가 미용실로 찾아왔습니다. “엄마, 어린이집 끝나고 아이 봐 줄 사람이 없어요. 평일만 좀 부탁드려요.” 며느리도 “어머님, 저희가 자리 잡을 때까지만요”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부터 미용실 한쪽 소파는 손녀 자리가 되었습니다. 박 씨는 손님 머리를 말다가도 손녀가 부르면 달려갔습니다. 아이가 파마약 냄새를 맡을까 봐 환기창을 하루 종일 열어 두었고, 겨울이면 난로 옆에 작은 이불을 깔아 주었습니다. 손녀는 빈 롤을 쌓아 탑을 만들며 놀았고, 단골 할머니들은 “미용실 막내 원장 왔네” 하며 사탕을 쥐여 주었습니다.
한번은 손녀가 밤새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아들 내외는 야근과 당직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가게 문에 ‘오늘 쉽니다’ 쪽지를 붙이고 손녀를 업은 채 읍내 소아과로 뛰었습니다. 링거를 맞고 잠든 손녀 곁에 앉아 있는데, 그 작은 손이 할머니 손가락을 꼭 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손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님, 요즘은 영어유치원 안 보내면 초등학교 가서 뒤처진대요. 그런데 한 달에 팔십만 원이 넘어서 저희 월급으로는 버거워요.” 아들은 옆에서 말없이 밥만 먹었습니다.
박 씨는 미용실 수입으로 다달이 붓던 적금을 떠올렸습니다. 낡은 가게 의자를 새로 바꾸려고 모으던 돈이었습니다. “그래, 내 손녀 공부시키는 일인데 할미가 해야지.” 박 씨는 그 적금을 깼고, 모자라는 달에는 가게 수입에서 떼어 보냈습니다. 2년 동안 그렇게 들어간 돈이 2천만 원이었습니다. 의자는 여전히 삐걱거렸지만 박 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사이 박 씨의 손목은 부쩍 시큰거렸습니다. 남편은 “당신 몸도 좀 생각하오” 하며 걱정했지만 박 씨는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주말에 놀러 온 손녀가 머뭇거리다 말했습니다. “할머니, 나 피아노 학원도 다녀야 한대요.” 다음 달에는 운동화 살 용돈이었고, 그다음 달에는 수학 학원비 이십만 원이었습니다.
박 씨는 그때마다 지갑을 열었습니다. 다만 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이가 할머니 눈을 피하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며느리에게 물으면 “애가 할머니가 좋아서 그런가 봐요”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지난 시월 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주말을 보내고 간 손녀가 앉던 소파 밑에 공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표지에 삐뚤빼뚤 ‘그림일기’라고 적힌 학교 숙제 공책이었습니다. 챙겨 두려고 집어 들다가 박 씨는 펼쳐진 한 장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크레파스로 미용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의자 셋, 빨간 난로, 그리고 가위를 든 할머니. 그 아래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돈 더 달라고 하래요. 근데 할머니한테 미안해요. 할머니 손이 아프대요.’
박 씨는 미용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앞장을 넘기니 또 한 줄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냥 엄마 말 들으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 집이 제일 좋다.’
다음 날 박 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 아이가 나한테 돈 이야기하는 거 알고 있었니?” 수화기 너머가 한참 조용했습니다. “엄마… 애가 말하면 엄마가 더 잘 들어주신다고 해서요. 저도 말리긴 했는데….” “말렸으면 아이 공책에 그런 글이 왜 있니.”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주 토요일, 아들 내외가 미용실로 왔습니다. 박 씨는 가게 문에 다시 ‘오늘 쉽니다’ 쪽지를 붙이고 두 사람을 소파에 앉혔습니다. 손녀가 4년 동안 앉던 바로 그 소파였습니다. 박 씨가 그림일기를 탁자 위에 펼치자 며느리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어머님, 그게… 할머니가 주시면 애도 좋아하니까….”
“얘야, 돈이 필요하면 너희가 나한테 와서 말하면 된다. 나는 4년 동안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그런데 여덟 살짜리한테 할미한테 손 벌리는 법을 가르치면, 저 아이는 사랑받는 법보다 눈치 보는 법부터 배운다.”
박 씨는 그 자리에서 결단을 말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학원비는 보내지 않겠다. 아이 공부는 너희 형편대로 시켜라. 대신 내가 손녀한테 주고 싶은 돈은 손녀 이름으로 적금을 들어 다달이 넣겠다. 스무 살이 되면 그 아이 손에 직접 쥐여 줄 거다.”
며칠 뒤 박 씨는 은행에 갔습니다. 미성년자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려면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 함께 와야 한다고 해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박 씨는 통장을 받아 손가방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겠다. 너희 손을 거치지 않게.” 아들이 작게 “엄마, 죄송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손녀는 그 뒤에도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 왔습니다. 다만 더는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롤을 쌓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렸습니다. 박 씨에게는 그 수다가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조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지만, 그 사랑이 어른들의 셈법에 쓰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다치는 것은 아이입니다. 손주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돈이 누구 손을 거쳐 어디로 가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도와주는 일과 끌려가는 일은 다릅니다. 줄 때는 분명하게 주고, 멈춰야 할 때는 단호하게 멈추세요. 그래야 손주도 할머니 품을 돈이 아니라 정으로 기억합니다.
올가을 박 씨는 손녀의 손을 잡고 장터 뒤 둑길을 걸었습니다. 들판의 벼는 다 베어지고 볏짚 묶음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손녀가 주운 단풍잎을 할머니 머리에 꽂아 주며 웃었고, 박 씨는 그 작은 손을 꼭 쥔 채 해 질 녘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