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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의 빚을 제 빚처럼 여깁니다. 갚아 주고 나서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자식이 고개를 숙이고 다닐까 봐 오히려 모른 척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덮어 준 마음이 자식 쪽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있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임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서른여섯에 회사택시 운전대를 처음 잡았고, 스물네 해를 회사에서 일한 뒤 개인택시를 몰았습니다. 택시로 보낸 세월이 꼭 30년입니다. 아내는 시장 골목 반찬가게에서 20년째 일하고 있고, 외아들은 수도권의 한 회사에 다니는 서른아홉 살 회사원입니다.
아들이 어릴 때 임 씨는 밤낮이 뒤바뀐 교대 근무 탓에 아들의 자는 얼굴만 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아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텅 빈 새벽 도로를 달렸습니다. 아들은 미터기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손뼉을 쳤습니다. “아빠, 나도 크면 택시 할래.” 임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너는 공부해서 넥타이 매고 다녀라.”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던 날, 임 씨는 짐을 싣고 직접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세 시간을 달리는 동안 아들에게 한 말은 “밥 거르지 마라”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아들은 첫 월급을 받은 달 아버지에게 운전용 장갑 한 켤레를 보내왔습니다. 임 씨는 그 장갑을 해질 때까지 끼고 다녔습니다.
6년 전 겨울, 개인택시 면허를 넘겨받고 회사를 그만둔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늦은 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 저 큰일 났어요. 주식 하다가 카드로 돈을 끌어다 썼는데… 4천만 원이에요. 이자가 불어나서 이제 감당이 안 돼요.”
임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습니다. “엄마는 아냐?” “아니요.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임 씨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을 정했습니다. “내일 올라갈 테니 명세서 다 챙겨 놔라. 엄마한테는 내가 알아서 한다.”
그 돈은 회사를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이었습니다. 스물네 해 동안 밤길을 달려 쌓은 돈이었습니다. 면허 값은 따로 부어 온 적금과 대출로 치렀기에, 퇴직금만큼은 노후를 위해 손대지 않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이튿날 임 씨는 아들과 함께 은행에 가서 카드빚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창구에서 아들이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름으로 통장 하나만 만들어 두세요.” 정신이 없던 임 씨는 무슨 통장인지 묻지도 않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내에게는 퇴직금을 예금에 묶어 두었다고만 했습니다.
그 뒤로 아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회사 일이 바쁘다며 하루만 머물다 갔고, 전화를 걸면 짧게 안부만 묻고 끊었습니다. 아내는 “애가 왜 저렇게 변했나 몰라” 하며 서운해했습니다. 속사정을 아는 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빚진 게 부끄러워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든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밤 운행을 하다 보면 번화가 골목 어귀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서성이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보였습니다. 임 씨는 그들을 볼 때마다 괜히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 녀석은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나.’ 그러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빚은 다 갚아 줬으니 이제 제 앞가림은 하겠지 싶었습니다.
올해 들어 임 씨는 운전대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밤눈이 어두워지고 손목이 시큰거려 더는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 운행 날은 시월 마지막 금요일로 정했습니다. 아들에게도 문자로 알렸지만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짧은 답장만 왔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임 씨는 새벽에 세차를 하고, 대시보드 위에 올려 둔 낡은 장갑을 한 번 쓰다듬은 뒤 시동을 걸었습니다. 점심 무렵 기사 쉼터에서 동료 기사 최 씨가 따뜻한 캔커피를 건넸습니다. “형님, 마지막 날이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손님 한 분만 더 모시고 들어가려고.”
해가 저물 무렵 호출이 하나 떴습니다. 출발지는 시외버스터미널, 도착지는 임 씨가 사는 아파트 앞이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이라 반가운 마음에 콜을 잡았습니다. 터미널 앞에 차를 대자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던 남자가 뒷문을 열고 탔습니다. 백미러로 얼굴을 본 임 씨는 숨을 멈췄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너, 너 웬일이냐. 온다는 말도 없이.” 아들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가 주세요, 기사님.” 임 씨는 더 묻지 못했습니다. 와이퍼가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만 차 안을 채웠습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백미러를 훔쳐보았지만, 아들은 창밖만 내다보았습니다. 어릴 적 조수석에서 손뼉 치던 아이가 뒷좌석에 손님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파트 앞에 닿자 미터기에 7,800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들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거스름돈은 됐습니다. 30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임 씨가 대꾸하기도 전에 아들은 문을 닫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 씨는 뒷좌석에 놓인 누런 서류봉투를 발견했습니다.
모서리가 닳아 해진 봉투였습니다. 겉면에는 아들의 글씨로 [아버지 마지막 운행 날]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봉투를 열자 은행 입금 영수증이 한 뭉치 쏟아졌습니다. 다달이 한 장씩, 세어 보니 꼭 72장이었습니다. 맨 아래에는 적금 만기 확인서가 있었습니다. 예금주는 임 씨, 만기 금액은 4,000만 원이었습니다.
그제야 6년 전 은행 창구에서 도장을 찍었던 서류가 떠올랐습니다. 확인서 사이에는 접힌 편지가 한 장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버지, 그날 은행에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 퇴직금은 마지막 운행 날 꼭 돌려드리겠다고요. 월급만으로는 모자라 퇴근하고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남의 차를 몰고 밤길을 달리다 보면, 아버지가 이렇게 30년을 사셨구나 싶었습니다. 빚진 얼굴로 찾아뵙기 싫어 발길을 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임 씨는 영수증을 한 장씩 넘겼습니다. 입금 시각은 대부분 밤 열한 시가 넘어 있었고, 새벽 한두 시에 찍힌 것도 있었습니다.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던 대리운전 기사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 아들도 그렇게 비 오는 밤거리에 서 있었구나. 임 씨는 영수증 뭉치를 가슴에 대고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한참 뒤 차에서 내려 현관에 들어서니 아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임 씨가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 미련한 놈아. 그 돈 받자고 준 게 아니다.”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더 갚고 싶었어요. 아버지, 이제 엄마한테도 말씀드려요.” 임 씨는 말없이 아들의 젖은 어깨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날 저녁 사정을 다 들은 아내는 남편의 등을 한 대 치고는 울었습니다. 그러고는 가게에서 싸 온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습니다. 6년 만에 세 식구가 한 밥상에 둘러앉았습니다. 임 씨가 확인서를 아들 쪽으로 밀었습니다. “이 돈은 너 집 장만할 때 보태라.” 아들이 다시 아버지 쪽으로 밀어 놓자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둘 다 고집 그만 부리고, 이 돈으로 당신 손목부터 고쳐요.”
자식의 빚을 갚아 주는 부모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은 자식은 그 돈의 무게를 오래 기억합니다. 연락이 뜸한 자식이 있다면 서운함부터 앞세우지 마세요. 어딘가에서 말없이 제 몫의 짐을 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덮어 줄 때는 그 비밀을 너무 오래 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비밀이 길어지면 오해도 함께 자라기 마련입니다.
십일월 첫 주말, 임 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운전대는 아들이 잡았고, 뒷좌석에는 아내가 앉았습니다. 세 식구는 가까운 호숫가 둘레길로 단풍을 보러 갔습니다. 물가를 따라 붉고 노란 잎이 번져 있었고, 임 씨는 미터기 없는 차창 밖 풍경을 해가 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