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06:11

“형 공장 대출에 2억 보증 섰는데..” 조카 개업식 화환 앞에서 벌어진 일

형제는 한 핏줄이라는 말 하나로 많은 것을 덮고 삽니다. 형이 어려우면 동생이 돕고, 동생이 기울면 형이 받쳐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한쪽으로만 흐르면 남는 것은 빈손과 깊은 상처뿐입니다.

오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충청도 어느 소도시 시장 골목에서 40년째 철물점을 하고 있습니다. 못 한 봉지, 경첩 한 쌍을 사러 오는 손님에게도 허리를 굽히는 사람입니다. 아내와 둘이 가게를 꾸려 왔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수도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 씨는 사 남매 중 둘째입니다. 위로 네 살 많은 형이 있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 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형은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읍내 철공소에 들어갔습니다. 형이 첫 월급으로 사 온 운동화를 오 씨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공부는 네가 해라. 돈은 형이 번다.”

스물여덟에 오 씨가 철물점을 열 때도 형이 먼저 달려왔습니다. 철공소에서 익힌 솜씨로 각목과 앵글을 짜서 공구 진열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진열대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게 안쪽 벽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형은 마흔 즈음 창호 자재를 만드는 작은 공장을 차렸습니다. 알루미늄 새시 틀과 부속을 찍어 건설 현장과 인테리어 업체에 납품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명절마다 고기를 몇 근씩 끊어 와 어머니 상에 올렸고, 오 씨 아이들 용돈도 두둑이 챙겨 주었습니다.

열한 해 전 겨울, 형이 철물점 문 닫을 무렵 찾아왔습니다. 난로 앞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습니다. “새 기계를 들여야 납품을 맞출 수 있다. 대출이 2억인데 보증 설 사람이 있어야 한다더라. 너밖에 없다.”

아내가 오 씨의 옷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집은 부부가 철물점에서 20년 동안 번 돈과 적금을 모아 장만한 단층집이었습니다. 오 씨는 형의 갈라진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운동화를 사 오던 바로 그 손이었습니다. “형님 공장이 잘돼야 우리도 좋지요.” 오 씨는 연대보증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형의 공장이 부도났습니다. 형은 큰 거래처가 끊기고 받을 돈을 떼였다고 했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갚지 못한 대출 독촉은 고스란히 보증인인 오 씨에게 넘어왔습니다. 끝내 오 씨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이삿날 아내는 마당의 감나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부부는 철물점 뒤편 단칸방으로 짐을 옮겼습니다. 집이 팔리고도 남은 빚은 가게 수입을 떼어 3년 동안 조금씩 갚았습니다. 그사이 오 씨는 무릎이 상해 사다리에도 잘 오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형수와 함께 처가 쪽 낡은 연립주택으로 옮겨 갔다고 했습니다. 부도 직후 철물점에 한 번 찾아와 “내가 죽일 놈이다” 하며 고개를 떨군 것이 마지막 사과였습니다. 형제는 그 뒤로 어머니 기일에나 얼굴을 마주쳤고, 서로 말을 아꼈습니다. 오 씨는 형도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원망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9년이 흘렀습니다. 올가을 큰조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인테리어 자재 회사를 차려 개업식을 하니 작은아버지도 꼭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 씨는 망한 집 아들이 맨손으로 일어섰구나 싶어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형편이 빠듯했지만 봉투에 30만 원을 넣고, 가게에서 제일 좋은 공구 세트를 골라 포장했습니다.

개업식 날은 바람이 찼습니다. 읍 외곽 공단 길가에 새로 지은 창고형 사무실이 있었고, 마당에는 지게차 두 대가 서 있었습니다. 여동생들도 오고 사촌들도 왔습니다. 형은 새 양복을 입고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입구 양쪽으로 화환이 스무 개 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오 씨는 공구 세트를 든 채 리본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리본마다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9년 전 형 공장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달력에 찍혀 있던 이름들, 형이 납품 장부를 펼쳐 보이며 자랑하던 바로 그 거래처들이었습니다.

“형님 공장 거래처들이 왜 여기 다 와 있소?” 오 씨가 중얼거리자 아내도 화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형은 못 들은 척 다른 손님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테이프 커팅이 끝나고 내빈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일흔 남짓한 건설업체 사장 한 씨였습니다. 형 공장에서 새시를 가장 많이 받아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 댁 형수님 회사와 거래한 지가 벌써 10년째입니다. 예전 공장이 문 닫기 한 해 전부터 형수님 회사로 물건을 받았지요. 기계도 그대로, 기술자도 그대로라 우리는 간판만 바뀐 줄 알았습니다. 이제 아드님이 대표를 맡는다니 앞으로 10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졌지만 친척들 쪽은 조용했습니다. 큰여동생이 먼저 입을 뗐습니다. “형수 회사라니요? 10년이라니, 오빠 공장 망한 게 9년 전인데요?” 한 씨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마이크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형에게 쏠렸고, 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오 씨가 형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지 않았습니다. “형님, 내 집 걸고 들인 그 기계가 지금 이 창고에 있소?”

형은 한참 땅만 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공장이 기울 때 형수 이름으로 회사를 하나 만들었다. 거래처랑 기계를 그쪽으로 옮겨 놓으면 식구라도 살 줄 알았다. 빚은 나중에 어떻게든 갚으려고 했는데….”

“그 식구에 우리 식구는 없었소?”

그 한마디에 형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조카가 달려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조카는 어머니 회사를 물려받은 줄로만 알았지, 그 회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들고 온 공구 세트를 조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건 네 거다. 너한테는 죄가 없다.” 그리고 축하 봉투는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형님, 이 봉투는 못 드리겠소. 내 집값 이야기는 형님이 직접 우리 가게로 와서 하시오.”

그 주에 오 씨는 법률 상담을 받아 보았습니다. 재산을 빼돌린 일은 따져 볼 여지가 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법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 씨는 그 말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말했습니다. “집은 못 찾아도 억울한 건 풀렸잖아요. 이제 다들 알게 됐으니까요.”

열흘쯤 지나 조카가 철물점에 혼자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형이 직접 쓴 차용증이 들려 있었습니다. 2억을 다달이 나눠 갚겠다는 내용 아래 형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차마 못 오시겠다고….” 오 씨는 차용증을 금고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한테 전해라. 돈은 이걸로 받겠지만, 형 노릇은 직접 와서 해야 한다고.”

『흥부전』의 흥부는 형에게 쫓겨나고도 끝내 형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형제 사이에서 참는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덮어 둔 진실은 언젠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보증은 내 집 문서를 남의 손에 맡기는 일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도장을 찍기 전에 무엇을 걸고 무엇을 감당하게 되는지 꼼꼼히 따져 보세요.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묻어 두지 마세요. 분명하게 묻고 분명하게 받아 내는 것이 남은 가족을 지키는 길입니다.

첫서리가 내린 11월 아침, 오 씨는 아내와 함께 철물점 셔터를 올렸습니다. 골목 끝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바람에 쓸려 와 가게 문턱에 소복이 쌓였습니다. 오 씨는 형이 짜 준 낡은 진열대의 먼지를 털어 내고 그 앞에 난로를 피웠습니다.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오르는 동안, 부부는 나란히 앉아 골목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OWN 뉴스

당신의 뉴스를 담습니다. 오늘의 건강부터 내일의 노후까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전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