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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는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통장이 누구 이름이든, 문서에 누구 도장이 찍혀 있든 결국 우리 것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 믿음이 깨지는 날은 대개 한 사람이 떠난 뒤에 찾아옵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서 30년째 국밥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돼지 뼈를 고고, 밤 아홉 시에 가스 불을 끄는 생활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올봄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출가한 아들과 딸은 서울과 인천에 삽니다.
국밥집은 부부가 함께 꾸린 가게였습니다. 남편은 화물차를 몰다 허리를 다친 뒤 가게에 나와 손님을 받고 배달을 맡았습니다. 황 씨가 한겨울에 육수 솥을 들다 손목을 접질렸을 때, 남편은 한 달 동안 먼저 일어나 솥을 날라 주었습니다. “당신 손은 국 맛 내는 손이니까 아껴야지.” 그 말이 고마워 황 씨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믿고 따랐습니다.
남편에게는 다섯 살 아래 동생이 있었습니다. 시동생은 노래방을 차렸다가 접고, 중고차 장사를 하다 빚을 졌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부모 없는 집에서 형이 아비 노릇 해야지” 하며 동생을 감쌌습니다. 시동생은 명절이면 가게에 들러 국밥을 비우고 “형수님 국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하고 웃었습니다. 황 씨는 그 웃음이 싫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겨울밤, 장부를 정리하던 황 씨에게 남편이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솥 앞에 서 있겠어. 역 근처에 작은 상가가 나왔는데, 사 두면 늙어서 월세 받고 살 수 있어.” 상가 값은 2억 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남편이 화물차를 판 돈과 대출로 일부를 채우고, 나머지는 황 씨가 내기로 했습니다.
황 씨는 20년 동안 부은 적금 두 개를 깼습니다. 하루 매상에서 만 원, 이만 원씩 떼어 모은 돈이었습니다. 1억5000만 원을 남편 통장으로 보내던 날 남편이 말했습니다. “명의는 내 앞으로 해 두자. 당신은 가게 일만 신경 써. 서류는 내가 알아서 할게.” 부부 사이에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습니다.
상가에는 작은 세탁소가 들어왔습니다. 처음 1년 남짓은 남편도 월세가 잘 들어온다며 흐뭇해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상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황 씨가 물으면 “대출 갚느라 남는 게 없어” 하고 말을 돌렸습니다. 서운했지만 남편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다시 솥 앞에 섰습니다.
남편은 지난겨울 폐암 진단을 받고 석 달 만에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서럽게 운 사람은 시동생이었습니다. 영정 앞에 엎드려 “형, 나는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하며 바닥을 쳤습니다. 조문객들은 형제 우애가 깊었다며 혀를 찼고, 황 씨는 그런 시동생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사십구재를 마친 다음 날, 늦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황 씨는 한 달 넘게 닫아 두었던 셔터를 반쯤 올리고 솥을 닦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접으며 한 남자가 들어섰습니다. 상가에서 세탁소를 하는 세입자 오 씨였습니다. 손에는 귤 한 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사모님, 늦었지만 조의를 표합니다.” 오 씨는 귤 봉지를 탁자에 내려놓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런데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이번 달부터 월세는 사모님께 드리면 되나요, 하던 대로 시동생분께 보내면 되나요?”
황 씨의 손에서 행주가 떨어졌습니다. “시동생한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 씨가 오히려 놀란 얼굴이 되었습니다. “8년 전쯤 건물주가 동생분으로 바뀌었다고, 월세는 그쪽 통장으로 넣으라고 하셨는데요. 계약서도 그분 이름으로 다시 썼고요.”
오 씨가 돌아간 뒤 황 씨는 젖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솥에서 김이 오르는데도 몸이 떨렸습니다. 그날 오후 딸과 함께 등기부를 떼어 보니, 상가는 산 지 2년 만에 시동생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8년 동안의 월세도 모두 시동생 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황 씨는 시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련님, 상가 이야기 들었어요.” 한참 말이 없던 시동생이 입을 열었습니다. “형이 저 살길 마련해 준 거예요. 형수님은 가게가 있으시잖아요.” 장례식장에서 바닥을 치며 울던 바로 그 목소리였습니다.
다음 날 황 씨는 다락에서 30년 치 장부를 꺼냈습니다. 하루 매상과 적금 넣은 날이 꼼꼼히 적혀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10년 전 남편 통장으로 보낸 송금 내역도 뽑았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오래 살폈습니다. 명의가 남편 앞으로 되어 있었고 넘긴 지도 오래되어 쉬운 싸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명의를 넘길 때 무엇이 오갔는지 하나씩 따져 볼 여지는 있다고 했습니다. “기록을 잘 남겨 두셨네요. 이런 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황 씨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누이가 “형제끼리 한 일인데 덮자”며 전화했을 때 짧게 답했습니다. “이제 그 집 며느리 노릇은 그만두겠습니다. 할 말은 변호사를 통해 하세요.”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 그 돈 다 엄마가 국 끓여서 모은 거잖아요. 끝까지 같이 가요.”
가족끼리 돈 이야기를 분명히 하면 정 없다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큰돈일수록 누구 이름으로, 어떤 약속으로 보태는지 남겨 두어야 합니다. 말로만 한 약속은 사람이 떠나면 함께 사라집니다.
땀 흘린 수고는 장부 한 줄, 송금 한 건에 남습니다. 그 기록이 나를 지킵니다. 그리고 나를 속여 온 관계라면 가족이라는 이름에 매달리지 말고 정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올가을 황 씨는 가게 간판을 새로 달았습니다. 시장 골목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였고, 새벽 국솥에서 오른 김이 골목 끝까지 번졌습니다. 황 씨는 그날 첫 손님에게 국밥을 말아 내며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