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11:05

“짝꿍 보증금 1800만원 빌려줬는데..” 9년 뒤 친구 출판기념회에서 알게 된 비밀

오랜 친구 사이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빌려줄 때는 의리였던 돈이 돌려받지 못하는 사이 서운함이 되고,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친구가 언젠가 기억해 주리라 믿으며 묵묵히 기다립니다.

임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9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시멘트 공장에서 스물여섯 해 동안 포장 기계를 돌렸습니다. 아내는 동네 김밥집에서 일하고, 출가한 아들과 딸은 각자 객지에서 삽니다.

친구 한 씨는 임 씨와 같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부터 4년 동안 한 책상을 쓴 짝꿍이었습니다. 한 씨네는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못 싸 오는 날이 많았고, 임 씨는 어머니께 도시락을 두 개 싸 달라고 졸랐습니다. 한 씨 어머니는 그 답례로 겨울이면 군고구마를 신문지에 싸서 임 씨 손에 쥐여 주곤 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한 씨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 씨는 공장에 휴가를 내고 사흘 내내 빈소를 지켰습니다. 한 씨가 이사할 때마다 트럭을 빌려 짐을 날랐고, 결혼식과 돌잔치 부조금도 한 번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9년 전 봄, 임 씨는 공장의 희망퇴직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퇴직금을 받고 보름쯤 지났을 때 한 씨가 소주 한 병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식당 주방에서 십 년 넘게 일한 한 씨는 자기 가게를 내는 게 꿈이었습니다. “시장 입구에 국밥집 자리가 났다. 보증금이 모자라서 그래. 2년만 쓰고 꼭 갚을게.”

아내는 부엌에서 말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퇴직금은 부부의 노후였습니다. 그날 밤 임 씨는 아내를 달랬습니다. “도시락 나눠 먹던 놈이야. 그놈이 잘되면 우리도 좋은 거지.” 다음 날 임 씨는 은행에서 1800만 원을 찾아 봉투째 건넸습니다. 차용증은 쓰지 않았습니다.

국밥집은 금세 줄 서는 가게가 됐습니다. 3년 뒤 한 씨는 두 번째 가게를 열었고, 몇 해 뒤에는 가맹점을 내주는 프랜차이즈 사장이 됐습니다. 그사이 임 씨는 경비 초소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보증금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어쩌다 임 씨가 말을 꺼내면 한 씨는 “요즘 확장하느라 돈이 묶였다”며 웃어넘겼습니다.

재작년 동창회에서는 더 서운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씨는 동창들 앞에서 임 씨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경비가 편하긴 하지. 앉아만 있으면 월급 나오잖아.” 동창들이 웃는 동안 임 씨는 소주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올가을, 임 씨 앞으로 금박 초대장이 왔습니다. 한 씨가 자서전을 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내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임 씨는 그래도 짝꿍의 경사라며 하나뿐인 양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축하 봉투에는 10만 원을 넣었습니다.

출판기념회는 시내 호텔 연회장에서 열렸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찬비가 내렸습니다. 무대 위에는 ‘맨손으로 일군 국밥 한 그릇’이라는 책 제목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둥근 탁자마다 정장 차림의 내빈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임 씨는 맨 뒤 탁자 구석에 앉았습니다. 앞쪽 가족석에는 여든여섯이 된 한 씨 어머니가 지팡이를 무릎에 세운 채 앉아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씨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누구한테도 손 벌리지 않았습니다. 주방에서 모은 돈으로, 맨손으로 첫 가게를 열었습니다.”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한 씨의 눈이 맨 뒤의 임 씨에게 멈췄습니다. “저기 제 초등학교 짝꿍도 왔네요. 지금 아파트 경비 일을 합니다. 같은 교실에서 시작해도 이렇게 인생이 갈립니다. 젊은 분들, 그래서 도전해야 하는 겁니다.”

몇몇 내빈이 고개를 돌려 임 씨를 보며 웃었습니다. 임 씨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앞쪽에서 ‘탁’ 하고 지팡이가 바닥을 짚는 소리가 났습니다. 한 씨 어머니가 탁자를 붙잡고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애비야, 그 마이크 이리 줘라.” 연회장이 조용해졌습니다. 노모는 손가방에서 표지가 닳은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써 온 가계부였습니다. 노모는 떨리는 손으로 맨 뒷장을 펼쳐 내빈들 쪽으로 들어 보였습니다.

“여기 적혀 있습니다. 경비 하는 그 친구에게 1800만 원. 9년 전 봄에 제 손으로 적었습니다. 이 아이 첫 가게 보증금은 맨손이 아니라 저 사람 퇴직금이었습니다.” 노모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습니다. “명절마다, 생일마다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내년에, 내년에 하더니 9년이 됐습니다.”

노모는 임 씨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책 첫 장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저 사람입니다.” 박수를 치던 내빈들의 손이 멈췄고, 얼굴이 하나둘 굳었습니다. 무대 위의 한 씨는 마이크를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임 씨는 일어나 노모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습니다. “어머님, 그 군고구마 값으로 진작에 다 받았습니다.” 노모는 임 씨의 손을 잡고 한참을 놓지 않았습니다. 임 씨는 노모를 자리에 앉혀 드리고 조용히 연회장을 나왔습니다. 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 한 씨가 경비 초소로 찾아왔습니다. 처음 보는 굽은 어깨였습니다. 한 씨는 원금 봉투와 9년 치 이자를 따로 넣은 봉투를 내밀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잘난 척하느라 네 이름을 지웠다. 미안하다.” 임 씨는 원금만 받고 이자 봉투는 돌려주었습니다. “이건 어머님께 효도하는 데 써라. 그 공책 뒷장은 네 손으로 지워 드리고.”

임 씨는 그 돈을 아내 이름의 통장에 넣었습니다. 아내는 통장을 한참 들여다보다 말했습니다. “돈보다 그 어머님 한마디가 더 고맙네요.” 임 씨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수록 돈은 흐릿하게 오가기 쉽습니다. 큰돈을 빌려줄 때는 정이 상하지 않도록 간단한 차용증 한 장이라도 남겨 두는 편이 오히려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지우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혼자 이룬 것처럼 보이는 성공에도, 그 첫 장에는 늘 누군가의 손이 들어 있습니다.

늦가을, 임 씨는 아내와 함께 고향 마을을 찾았습니다. 한 씨 어머니 집 마당에서 갓 구운 군고구마를 얻어먹고, 어릴 적 짝꿍과 함께 학교 가던 저수지 둑길에 올랐습니다. 둑 아래 들판에는 추수를 마친 볏단이 줄지어 서 있었고, 저수지 물 위로 늦은 햇살이 잔잔하게 번졌습니다. 임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해가 질 때까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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