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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돈보다 우정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돈이 돌아오지 않으면 잃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까지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 사는 권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오래된 시장 골목 끝에서 32년째 세탁소를 해 왔습니다. 아내는 가게 안쪽 재봉틀 앞에서 바짓단을 줄이고 단추를 달며 평생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아들은 결혼해 지방에서 살고, 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권 씨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 오 씨가 있습니다. 둘 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습니다. 권 씨가 수학여행비를 못 내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오 씨가 신문 배달로 모은 돈을 말없이 내밀었습니다. 권 씨는 그 돈을 군대 가기 전에야 겨우 갚았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둘은 서로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권 씨 아버지 장례 때 오 씨는 사흘 내내 빈소 앞에서 조문객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오 씨 딸이 시집가던 날에는 권 씨가 오 씨의 낡은 양복을 밤새 다려 주었습니다. “네가 다린 옷 입으니까 내가 무슨 사장님 같다.” 오 씨는 그 양복을 입고 하객들 앞에서 활짝 웃었습니다.
여덟 해 전 겨울, 오 씨가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25년 다닌 공장에서 나오게 되어 학교 앞에 분식집을 차리려는데 보증금이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친구야, 염치없는 줄 안다. 2년만 기다려 주면 떡볶이를 팔아서라도 꼭 갚을게.”
그날 밤 권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딸 혼수 자금으로 10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양반이 당신한테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지요.” 이튿날 권 씨는 적금을 깨고, 모자란 돈은 가게 수입을 보태 25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분식집은 1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길 건너에 큰 프랜차이즈 가게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가게를 정리하고 나니 보증금은 밀린 월세와 원상복구 비용으로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끝으로 오 씨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라졌습니다.
몇 해 뒤 동창회에 나간 권 씨는 술잔이 몇 순배 돈 뒤에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 편드는 거야? 2500만원 떼이고도 찾을 생각을 안 하니, 너 같은 바보가 또 어디 있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권 씨는 빈 잔만 만지작거리다 먼저 일어섰습니다. 그 뒤로는 동창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동창들 경조사에는 꼬박꼬박 봉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시장 골목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세입자인 권 씨가 받은 보상금은 몇 달 치 수입에 불과했습니다. 새 가게를 얻으려 해도 요즘 상가 보증금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권 씨는 이참에 가게를 접어야 하나 매일 밤 잠을 설쳤습니다.
철거를 하루 앞둔 날 아침에는 찬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아들은 회사 일로 올라오지 못했고,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는 집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삿짐센터 부를 돈도 아까워 권 씨는 혼자 셔터를 올렸습니다. 32년을 함께한 스팀 다리미와 프레스기, 수백 개의 철제 옷걸이, 끝내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겨울 코트 몇 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프레스기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가게 앞에 낡은 1톤 트럭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얼굴이 검게 그을렸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습니다. 권 씨는 손에 들고 있던 옷걸이 뭉치를 떨어뜨렸습니다. 오 씨였습니다.
오 씨는 아무 말 없이 장갑을 끼더니 프레스기 한쪽을 붙잡았습니다. 둘은 빗속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짐을 날랐습니다. 트럭 짐칸이 다 차자 오 씨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역 앞 새 상가 1층이다. 보증금 2500만원은 다 치렀어. 임차인 칸에 네 이름 적어 놨으니 도장만 찍으면 된다.”
권 씨는 종이를 펼쳐 들었습니다. 임대차계약서 임차인 칸에 또박또박 적힌 자기 이름이 보였습니다. 오 씨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습니다.
“빚 갚기 전엔 네 얼굴 볼 낯이 없었다. 7년 동안 지방 공사장 함바집에서 새벽 네 시부터 밥을 지었어. 잠은 컨테이너에서 잤고. 몇 해 전에 동창 하나한테서 네가 동창회에서 돈 떼인 바보 소리 듣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이를 악물었다. 나 때문에 네가 바보 소리 듣는 건 못 참겠더라.”
오 씨는 재개발 소식을 듣고 돈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대신 가게 자리를 먼저 알아봤다고 했습니다. 세탁소가 없으면 권 씨가 못 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계약서를 쥔 오 씨의 손등에는 기름에 덴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습니다.
권 씨는 계약서를 가슴에 대고 그 자리에 선 채 말없이 울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돈보다 네가 더 보고 싶었다.” 오 씨도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훔쳤습니다.
그날 저녁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내와 셋이서 역 앞 오래된 국밥집에 앉았습니다. 뽀얀 국물에 머릿고기를 넉넉히 썰어 넣은 순댓국이었습니다. 아내가 오 씨 그릇에 고기를 덜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어디 가지 마세요. 이 양반, 동창회 다시 나가야지요.” 세 사람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옛 중국의 관중과 포숙은 함께 장사를 하던 시절, 관중이 이익을 더 가져가도 포숙은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관중의 집이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해도 끝까지 믿어 주는 마음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 어딘가에서 이를 악물고 돌아올 길을 닦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을 믿었던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늦가을, 역 앞 새 세탁소 유리문 너머로 노란 은행잎이 흩날렸습니다. 개업 첫날 권 씨가 맨 먼저 다린 옷은 오 씨의 낡은 양복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두 친구는 동네 하천 둑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해 질 녘까지 길게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