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10:44

“2층 세입자 월세 40만원 안 올렸는데..” 빗물받이 고치러 오른 계단에서 알게 된 비밀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세입자의 형편을 알면 집주인은 함부로 월세를 올리지 못합니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지내다 보면 세입자도 어느새 한 식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인심이 누군가에게는 기대기 좋은 언덕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운함은 오래 남습니다.

경상도의 한 강변 도시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열아홉 살에 처음 대패를 잡은 뒤 마흔 해 넘게 목수로 일했습니다. 문틀을 짜고 마루를 깔아 번 돈으로 서른 해 전 골목 끝에 2층 단독주택을 손수 지었습니다. 조 씨는 아내와 1층에 살고 2층은 세를 놓았습니다. 외아들은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며 명절에만 내려옵니다.

6년 전 봄, 2층에 윤 씨 부부가 들어왔습니다. 마흔 초반의 부부에게는 초등학생 남매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계단을 쿵쿵 뛰어오르면 조 씨의 아내는 “집에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조 씨는 남은 나무로 남매에게 책상과 책꽂이를 짜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모서리를 사포로 둥글게 갈았습니다. 윤 씨 아내는 명절이면 부친 전을 한 접시씩 1층에 내려보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애들이 공부할 맛이 난대요.” 조 씨는 그 말이 듣기 좋았습니다.

월세는 40만 원이었습니다. 주변 시세가 해마다 올랐지만 조 씨는 한 번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겨울, 윤 씨가 1층 현관에 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르신,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월세가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조 씨는 아내와 통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목수 일을 접으며 모아 둔 적금과 연금이 노부부 살림의 전부였지만, 석 달쯤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조 씨는 2층에 올라가 말했습니다. “석 달은 받지 않겠네. 일자리부터 알아보게. 애들 학원은 끊지 말고.” 윤 씨는 문간에 선 채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석 달 뒤 윤 씨는 물류 회사에 다시 들어갔고, 월세는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3년쯤 전부터 2층이 달라졌습니다. 남매의 발소리가 끊기고 밤늦게 낯선 말소리와 캐리어 바퀴 소리가 났습니다. 조 씨가 물으면 윤 씨 아내는 웃으며 둘러댔습니다. “애들은 외갓집에서 학교 다녀요. 친정 식구들이 자주 와서 시끄러우시죠.” 골목 슈퍼를 하는 한 씨는 조 씨를 볼 때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습니다.

올여름 장마가 사흘째 이어지던 날이었습니다. 2층 처마의 빗물받이가 낙엽에 막혀 바깥 계단으로 빗물이 쏟아졌습니다. 조 씨는 우비를 입고 공구 가방을 멘 채 계단을 올랐습니다. 젖은 계단은 미끄러웠고 무릎이 시큰거렸습니다.

계단 중간에서 조 씨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2층 현관 앞에 외국인 젊은 남녀가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세워 두고 비를 맞으며 번호키를 이리저리 누르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더니 휴대폰을 내밀었습니다. 숙박 예약 화면에 ‘옛날 주택 독채, 1박 9만원’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습니다. 사진을 넘기던 조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서른 해 전 직접 짠 나무 창틀, 남매에게 만들어 준 책상과 책꽂이가 그대로 찍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후기가 수백 개 달려 있었습니다.

조 씨는 빗속에 선 채 윤 씨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2층에 외국 손님들이 와 있네. 이게 무슨 일인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들려온 대답은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어르신, 저희 3년 전에 아파트 사서 나왔어요. 어차피 비어 있던 방인데 놀리면 뭐 해요. 월세는 한 번도 안 밀렸잖아요. 비밀번호는 지금 문자로 보낼게요.”

전화가 끊긴 뒤에도 조 씨는 한동안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넘친 빗물이 우비 모자를 타고 목덜미로 흘러내렸습니다. 한 달에 열흘만 손님을 받아도 90만 원, 조 씨가 받는 월세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그래도 조 씨는 문을 열어 주고 마른 수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빗속에 선 손님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젖은 몸으로 골목 슈퍼에 들르자 한 씨가 눈을 피하며 말했습니다. “다들 알았지요. 캐리어 끄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할아버지만 모르셨지. 어르신이 그 집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아니까 차마 입이 안 떨어졌어요.” 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조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한 식구처럼 여긴 사람들이 3년이나 자기 집을 장삿집으로 쓰면서 얼굴 한 번 붉히지 않았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아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정은 정이고 이건 바로잡아야 해요.”

조 씨는 장롱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꺼냈습니다.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 집을 남에게 다시 빌려주면 집주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허가 없이 주택을 숙박용으로 돌리는 일도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 씨는 윤 씨 부부를 1층으로 불렀습니다.

윤 씨 아내는 끝까지 “월세는 다 드렸잖아요” 하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조 씨가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6년 동안 월세를 안 올린 건 자네 식구가 거기 산다고 믿어서였네. 석 달 치는 내 마음이었으니 돌려 달라 하지 않겠네. 다만 이달 말까지 짐을 빼고, 받아 둔 예약은 자네들이 직접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게.”

윤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파트 대출 이자가 버거워서 몇 달만 하려던 게 이렇게 됐습니다. 말씀드릴 면목이 없었습니다.” 조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뜻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 2층이 비었습니다. 조 씨는 빗물받이를 새로 달고 창틀에 칠을 다시 했습니다. 남매의 책상은 버리지 않고 1층 창고에 들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베푼 인심은 귀합니다. 그러나 인심이 오래 이어지면 받는 쪽은 그것을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한 몫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세를 놓았다면 가끔은 문을 두드려 안부를 묻고 집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세요.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알았다면 조심스럽게라도 귀띔해 주세요. 침묵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을 가장 외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올가을 조 씨는 아내와 강둑길을 걸었습니다.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강물 위로 노을이 붉게 번졌습니다. 골목으로 돌아오니 새로 단 빗물받이 아래 2층 창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지난달 이사 온 젊은 신혼부부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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