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14:40

“외손자 학원비 매달 60만원 대줬는데..” 7년 뒤 손자가 남긴 쪽지에 손이 떨렸다

맞벌이하는 자식을 둔 부모라면 손주 봐 달라는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합니다. 허리가 아파도 아기 띠를 메고, 연금을 쪼개 학원비를 보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정성이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생기기도 합니다.

수도권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신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스물여덟 해 동안 보험 설계사로 일했습니다. 고객 생일과 계약 만기일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 두고, 비 오는 날에도 서류 가방을 들고 상가 골목을 누비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은 열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가족이라고는 외동딸 하나뿐입니다.

딸은 회사에서 만난 사위와 결혼해 버스로 이십 분 거리에 살았습니다. 손자가 돌을 맞던 해, 딸이 울먹이며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어린이집에서 애가 맨날 울어. 나 회사 그만둬야 하나 봐.”

신 씨는 그 주에 지점장을 찾아가 사표를 냈습니다. 몇 해 더 일할 생각이었지만 딸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신 씨는 아침 일곱 시면 딸이 준 현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손자가 처음 한 말은 “함미”였습니다. 밤새 열이 끓던 날에는 손자를 안고 소아과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렸습니다. 유치원 재롱잔치에도 회사에 묶인 딸 대신 신 씨가 맨 앞줄에 앉아 손뼉을 쳤습니다. 손자는 친구들에게 “우리 할머니가 제일 빨리 와”라고 자랑했습니다.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딸이 설거지하던 신 씨 옆에 와서 섰습니다.

“엄마, 요즘 애들은 일 학년 때부터 영어 수학 다 해. 대출 이자 내고 나면 우리 월급으론 빠듯해서.”

“얼마면 되는데?”

“두 군데 합쳐서 육십만 원.”

신 씨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낼게. 우리 손자 기죽으면 안 되지.” 다음 날 신 씨는 은행에 가서 학원 계좌로 자동이체를 걸었습니다. 설계사 시절 꼬박꼬박 부어 둔 적금과 연금을 헐어 쓰는 돈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의 말투가 달라졌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사라지고 “엄마, 국이 또 짜”, “애 간식은 왜 그런 걸 사 줘” 같은 말이 늘었습니다. 신 씨가 감기로 하루 못 가겠다고 하면 딸은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신 씨는 서운했지만 일하느라 지쳐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일이 터졌습니다. 손자가 게임을 더 하겠다고 떼를 쓰자 신 씨가 삼십 분만 더 하라고 허락해 준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퇴근한 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엄마가 다 받아 줘서 애가 버릇이 없잖아. 엄마 식으로 키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내가 칠 년을 키웠다.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니.”

신 씨는 가방을 챙겨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의 불빛이 자꾸 흐려 보였습니다.

그다음 주 화요일,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였습니다. 신 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학교 앞에서 손자를 기다렸습니다. 노란 우산을 쓴 손자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지만, 집에 오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딸네 집에 들어선 신 씨는 늘 하던 대로 손자의 책가방을 열었습니다. 물통을 꺼내 씻고 알림장을 확인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알림장 사이에서 네 번 접힌 공책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습니다. 몇 번이나 폈다 접었는지 종이는 꼬깃꼬깃했습니다.

삐뚤빼뚤한 연필 글씨였습니다.

‘할머니 이제 안 와도 돼요. 엄마가 할머니 오면 돈 든다고 했어요.’

신 씨는 종이를 든 채 한참 서 있었습니다. 손이 떨려 글씨가 흔들려 보였습니다. 신 씨는 거실 바닥에 앉아 손자를 불렀습니다.

“이거 네가 쓴 거니? 할머니한테 주려고?”

손자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가 아빠한테 그랬어요. 할머니는 공짜 도우미고 학원비 지갑이라고요. 할머니 안 오면 돈 드니까 비위 맞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매일 오면 할머니 돈이 다 없어지잖아요. 할머니 돈 없으면 할머니는 어떡해요.”

여덟 살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제 나름대로 알아듣고 할머니 지갑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신 씨는 손자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이 오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손자를 재우고 식탁을 치우던 신 씨의 눈에 카드 한 장이 들어왔습니다. 사돈댁에 보낼 선물 상자 위에 올려 둔 딸의 글씨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올여름에도 일주일이나 아이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매달 보내 드리는 용돈 부족하시면 꼭 말씀하세요.’

여름 방학 일주일을 봐 준 시댁에는 매달 용돈을 보내며 고개를 숙이고, 칠 년을 매일 드나든 친정엄마는 학원비까지 받아 가며 지갑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날 밤 신 씨는 퇴근한 딸 앞에 쪽지와 카드를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엄마, 그건 그냥 말이 그렇게 나온 거고… 시댁은 남이니까 챙겨야 하잖아. 엄마는 가족이고.”

“가족이라서 고맙다는 말도 안 하는 거라면, 엄마는 이제 가족 노릇을 다르게 하련다.”

다음 날 아침 신 씨는 은행에 가서 학원비 자동이체를 해지했습니다. 그리고 칠 년 동안 들고 다닌 딸네 현관 열쇠를 흰 봉투에 넣어 딸에게 건넸습니다.

“엄마가 보험 일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한쪽만 지키는 약속은 오래 못 간다. 손자는 토요일마다 우리 집으로 보내라. 도우미 말고 할머니로 보고 싶다.”

딸은 봉투를 받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 씨는 그 주에 동네 문화센터 서예반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칠 년 동안 미뤄 둔 친구들과의 바닷가 여행 날짜도 잡았습니다. 아침 일곱 시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몸이 먼저 편안해졌습니다.

자식과 손주를 위해 쓰는 정성은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받는 쪽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그 정성은 사랑이 아니라 의무가 되고 맙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은 자식을 위한 일도 아닙니다.

부모가 스스로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자식에게 남기는 가르침입니다. 내 시간과 내 돈을 지키는 일에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래야 오래도록 웃으며 손주를 안아 줄 수 있습니다.

첫눈 소식이 들리던 토요일 오후, 신 씨는 집 앞 공원 벤치에 손자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손자는 할머니가 사 준 붕어빵을 반으로 갈라 김이 나는 쪽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마른 은행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고, 신 씨는 손자의 시린 손을 제 외투 주머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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