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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공부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끝까지 시키고 싶은 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래서 큰돈을 건네면서도 차용증 한 장 쓰자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한 약속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하는 사람 쪽만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시외버스 회사 정비공장에서 서른두 해 동안 버스 밑을 드나들다 정년을 맞았고, 그 뒤로 여덟 해를 동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단둘이 살고, 두 아들은 모두 장가를 갔습니다.
큰아들은 읍내 마트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았고, 둘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습니다. 둘째가 고3이던 해, 최 씨는 야간 정비를 마치면 기름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독서실 앞에 서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대학 합격 소식이 온 날에는 떡 세 말을 맞춰 정비공장 동료들에게 돌렸습니다.
등록금이 모자라던 해에는 남들이 꺼리는 주말 당직을 자청했습니다. 아내가 몸 상한다고 말려도 최 씨는 “우리 집에서 박사 하나 나오면 그걸로 됐소” 하며 웃었습니다.
6년 전 봄, 서른두 살이던 둘째가 미국의 한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들고 내려왔습니다. “아버지, 장학금이 일부밖에 안 나와요. 자리 잡으면 꼭 갚을게요.” 아내가 넌지시 “그래도 종이 한 장은 써 두지” 하자 아들은 웃었습니다. “엄마, 제가 아버지 돈을 떼먹겠어요?”
최 씨는 퇴직금을 넣어 둔 정기예금 4천만 원을 헐어 첫해 학비를 보냈습니다. 나머지 2천만 원은 경비 월급을 쪼개 학기마다 부쳤습니다. 그때마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아버지, 이 돈 꼭 갚을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유학 3년째에 아들은 그곳에서 만난 아가씨와 결혼했습니다. 사돈은 지방에서 꽤 큰 식품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최 씨는 사돈 앞에서 자꾸 고개가 숙여졌고, 그 뒤로 아들의 연락은 눈에 띄게 뜸해졌습니다.
작년 겨울 최 씨는 허리 협착증이 심해져 경비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연금만으로는 약값과 관리비를 대기가 빠듯했습니다. 최 씨는 몇 번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얘야, 한 달에 이삼십만 원씩이라도 보내 줄 수 있겠니.”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아버지, 자식 공부시킨 걸 빚이라고 하세요? 남들은 집도 사 준다는데요.” 전화는 그대로 끊겼고, 몇 달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올해 5월, 큰아들이 동생의 박사 학위 수여식 날짜를 알려 왔습니다. 큰아들은 비행기표를 끊어 내밀었습니다. “아버지, 가서 웃으면서 푸세요. 그래도 형제간에 아버지가 서운하게 끝나면 안 되잖아요.”
최 씨는 장롱 속 양복을 꺼내 입고 열네 시간을 날아갔습니다.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꽃다발을 내밀며 먼저 손을 잡아 줄 생각이었습니다.
수여식 날은 하늘이 맑았습니다. 잔디밭에는 검은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가득했고, 수여식이 끝나자 학과 강당에서 축하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졸업생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짧은 소감을 말하는 순서였습니다. 최 씨는 꽃다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맨 뒷줄에 앉았습니다.
아들 차례가 되자 아들은 한국말로 입을 열었습니다. “유학 시절 학비를 대 주신 장인어른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 장인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첫 학기에 짐을 싸서 돌아갔을 겁니다.”
아들은 단상에서 내려와 맨 앞줄 사돈 내외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강당 안에 박수가 터졌습니다. 최 씨는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순서가 끝나고 사돈이 뒷줄의 최 씨를 알아보고 다가왔습니다. “사돈어른, 먼 길 오셨네요. 사위가 그러더군요. 아버님은 형편이 어려워 한 푼도 못 보태셨다고, 그러니 마음 쓰지 마시라고요. 저야 결혼하고 생활비 조금 보낸 게 전부인데, 저렇게 고마워하니 원. 들어오면 우리 회사 기획실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최 씨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복도로 나왔습니다. 뒤따라 나온 아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연락도 없이 오시면 어떡해요. 여기서는 아무 말씀 마세요. 그렇게 말해야 장인어른 회사에 자리가 났어요.” 최 씨가 낮게 말했습니다. “6년 동안 내가 보낸 돈이 없던 돈이 되는구나.” 최 씨는 꽃다발을 복도 의자 위에 내려놓고 돌아섰습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최 씨는 은행에 가서 6년 치 송금 내역을 출력했습니다. 열네 장이었습니다. 갚겠다던 아들의 문자도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무료 법률 상담 창구에서는 차용증이 없어도 송금 기록과 갚겠다는 문자가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지급명령은 법원이 서류를 보고 내리는 것인데, 상대가 송달받고 2주 안에 이의를 하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간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내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래도 자식인데요.” 최 씨는 서류를 봉투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자식이니까 하는 거요. 제 아비 돈을 남의 공으로 돌려 자리를 얻은 놈을 그냥 두면, 그놈은 평생 그렇게 살 거요.”
최 씨는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아들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습니다. [네가 갚겠다던 돈, 이제 법대로 받겠다. 앞으로 이 아비를 찾을 일은 없을 게다.] 보름쯤 지나 짧은 답이 왔습니다. [이의하지 않겠습니다. 매달 나눠 보내겠습니다.] 최 씨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준 돈은 사랑이지만, 자식이 갚겠다고 약속한 돈은 약속입니다. 그 둘을 뒤섞어 버리면 결국 마음 약한 쪽만 다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큰돈이 오갈 때는 종이 한 장 남겨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내 정성이 남의 공으로 둔갑했을 때 눈물로 삼키기보다 조용히 바로잡는 것, 그것이 늙은 부모가 마지막까지 자식에게 가르칠 수 있는 공부일지도 모릅니다.
올가을 최 씨는 아내와 함께 동네 저수지 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큰아들이 사 준 허리 보호대를 차고, 손에는 아내가 싸 준 군고구마 두 개를 쥐었습니다. 둑 아래로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두 사람은 해가 저수지 너머로 다 넘어갈 때까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