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5:42

“사돈 위암 수술비 700만원 보냈는데..” 6년 뒤 사돈이 내민 통장에 울었다

사돈은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입니다. 자식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식구가 되었지만, 서로의 살림을 들여다보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상대의 자존심을 다칠까 망설이고, 받는 쪽은 자식 체면을 깎을까 봐 마음을 졸입니다.

한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재래시장 골목에서 30년째 떡집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새벽에 불린 쌀을 방앗간 기계에 돌리면 한 씨가 떡을 빚어 좌판에 냅니다. 외아들은 7년 전 결혼해 이웃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며 며느리와 여섯 살 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인 사돈은 한 씨보다 두 살 아래입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식당 주방 일을 하며 외동딸을 혼자 키웠습니다. 상견례 날, 사돈은 깨끗이 다린 남색 투피스 차림으로 한 씨 손을 잡았습니다. “해 드릴 게 없어서 염치가 없습니다. 우리 애 하나만 보고 받아 주세요.” 한 씨는 그 손이 유난히 거칠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결혼 뒤 사돈은 명절마다 직접 담근 고추장을 작은 단지에 담아 보냈고, 한 씨는 답례로 갓 뽑은 가래떡을 부쳤습니다. 손녀 돌잔치 날에는 사돈이 밤새 수놓은 턱받이를 내밀며 “이것밖에 못 했다”고 얼굴을 붉혔습니다. 한 씨는 그 턱받이를 지금도 떡집 계산대 서랍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6년 전 봄, 사돈이 건강검진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둘째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성치 않았고, 아들네는 집 대출 이자를 갚느라 여윳돈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 떡 상자를 들고 사돈 집을 찾은 한 씨는 식탁 위에서 병원 서류를 보았습니다. 서류 귀퉁이에는 ‘수술 날짜 미룰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실손보험도 없는 사돈은 수술비와 입원비에, 일을 쉬는 동안의 생활비까지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씨는 떡 기계를 바꾸려고 5년 동안 가게 수입을 떼어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그리고 칠백만 원을 사돈 통장으로 보낸 뒤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부인, 아무 말 말고 수술부터 받으세요. 빌려드리는 거 아닙니다.”

한참 말이 없던 사돈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건 못 받습니다. 우리 애가 알면 어쩌라고요.” 한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한테는 우리 둘만 아는 걸로 합시다. 몸이 성해야 손녀 크는 것도 보시지요.”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사돈은 어쩐지 한 씨를 피하는 듯했습니다. 명절에 오시라 해도 몸이 시원찮다며 오지 않았고, 전화를 해도 새벽에 일이 있다며 짧게 끊었습니다. 고추장 단지도 더는 오지 않았습니다.

한 씨는 혹시 그 돈이 사돈에게 짐이 된 건 아닐까, 괜한 일로 사이만 어색해진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며느리가 “엄마가 요즘 통 연락이 안 된다”고 할 때마다 한 씨는 모르는 척 떡만 썰었습니다.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1월, 밤새 내린 눈이 얼어붙은 새벽에 가게로 나서던 한 씨는 시장 입구 비탈길에서 미끄러졌습니다.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고, 한 달 넘게 입원해야 했습니다.

수술 이튿날 아침, 병실 문이 열리고 사돈이 들어섰습니다. 손에는 보온병과 반찬 통을 싼 보자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사부인, 오늘부터 제가 있겠습니다. 바깥사돈은 떡집 지키셔야지요.”

그날부터 사돈은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와서 한 씨 등을 닦고 미음을 한 숟가락씩 떠먹였습니다. 한 씨가 미안해 고개를 돌리면 사돈은 웃었습니다. “제 수술 때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씨는 사돈이 왜 의자에 앉기만 하면 조는지, 물수건을 짜는 손등이 왜 그리 터져 있는지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창밖 처마 끝에서 녹은 눈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짐을 다 싼 사돈이 보자기 속에서 비닐에 싼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손때가 까맣게 묻은 적금 통장이었습니다.

“6년 걸렸습니다. 이제야 갚습니다.” 통장을 펼치자 맨 위에 통장 이름이 찍혀 있었습니다. ‘사부인 은혜.’ 그 아래로 매달 십만 원 안팎의 돈이 일흔두 줄 이어져 있었고, 잔액은 칠백만 원을 조금 넘었습니다.

한 씨의 눈은 통장보다 그것을 내민 손에 머물렀습니다.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이고 손끝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습니다. 손톱 밑에는 씻어도 빠지지 않는 검은 때가 끼어 있었습니다. “사부인, 이 손이 어떻게 된 겁니까.” 한 씨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습니다.

사돈은 손을 무릎 아래로 감추며 겨우 털어놓았습니다. 수술 뒤 식당 일을 다시 할 수 없게 되자, 새벽 네 시마다 손수레를 끌고 상가를 돌며 폐지를 주웠다고 했습니다. 명절에 오지 못한 것도, 전화를 짧게 끊은 것도 그 새벽 일 때문이었습니다.

“병원 오시기 전에도 그 일을 하고 오신 겁니까.” 사돈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부인, 우리 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친정어미가 시댁 돈으로 수술받고 그거 갚겠다고 폐지 줍는 거 알려지면, 우리 딸이 시댁에서 평생 고개를 못 듭니다.”

그때 문밖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오던 며느리가 서류 봉투를 떨어뜨린 채 서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친정어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어머님, 왜 저한테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며느리는 그제야 두 어머니 사이에 오간 6년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씨는 눈물을 닦고 사돈의 갈라진 손을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이 통장은 받겠습니다. 안 받으면 사부인 6년이 헛것이 되니까요.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제 다리 나을 때까지 떡집 좀 거들어 주세요. 품삯은 제대로 쳐 드립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손수레는 끌지 마세요.” 사돈은 한 씨 어깨에 이마를 묻고 소리 내어 울었고, 며느리는 두 어머니를 한꺼번에 끌어안았습니다.

그 봄부터 사돈은 떡집에 나왔습니다. 남편이 쌀을 빻으면 사돈이 떡을 찌고, 지팡이를 짚은 한 씨는 계산대를 지켰습니다. ‘사부인 은혜’ 통장은 손녀의 턱받이 옆에 고이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은 자식 몰래 돈을 보냈고, 한 사람은 자식 몰래 그 돈을 갚았습니다. 두 어머니가 지키려 한 것은 결국 같은 것, 자식의 자리였습니다.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을 너무 말리지 마세요. 기꺼이 받아 주는 것도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일입니다. 그렇게 오간 마음은 자식들의 앞날을 단단하게 받쳐 줍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시장 골목 떡집 앞 평상에 두 사돈이 나란히 앉아 송편을 빚었습니다. 찜솥에서 솔잎 향 김이 피어오르고, 손녀가 옆에서 반죽을 조물거렸습니다. 송편 끝을 꼭꼭 여미는 사돈의 손은 어느새 말갛게 아물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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