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3:05

“큰딸 집에 반찬 택배 보냈는데..” 3년 뒤 칠순 날 택배 기사가 건넨 상자에 결단했다

자식이 멀리 살면 부모는 해 줄 수 있는 것부터 챙기게 됩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에게는 손수 키운 채소로 정성껏 담근 반찬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나 보내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늘 같은 무게는 아닙니다.

충청도 산골 마을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스물다섯에 시집와 45년 동안 산비탈 밭에서 고추와 배추, 콩과 들깨를 길렀습니다. 남편은 4년 전 폐렴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 씨는 지금 마을 끝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혼자 삽니다. 자식은 셋입니다.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큰딸, 지방 대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는 아들, 서울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막내딸입니다.

조 씨에게 큰딸은 늘 마음이 쓰이는 자식이었습니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 대신 동생들 도시락을 싸고 밥을 해 먹인 것이 큰딸이었습니다. 큰딸이 대학에 붙던 해에는 그해 거둔 고추를 한 근도 남기지 않고 내다 팔아 첫 등록금을 마련했습니다.

큰딸이 첫아이를 낳았을 때 조 씨는 한 달 동안 딸네 집에 머물며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그때 사위가 조 씨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장모님 손맛 덕분에 집이 사람 사는 집 같습니다.” 조 씨는 밭에 두고 온 고추가 걱정되면서도 그 말 한마디에 피로가 다 풀렸습니다.

3년 전 봄, 남편의 1주기를 막 지냈을 때였습니다. 큰딸이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요즘 채소값이 금값이야. 엄마 깻잎장아찌 먹고 싶다.” 수화기 너머로 사위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장모님, 그 고추장아찌 또 먹고 싶어요.” 혼자 남은 집이 적막하던 조 씨에게 그 말은 일거리이자 위로였습니다.

그날부터 조 씨는 반찬 상자를 꾸렸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밭에 나가 깻잎을 따고 오이를 땄습니다. 봄에는 달래장과 머위나물, 여름에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 가을에는 고추장아찌와 콩자반을 담갔습니다. 겨울이면 처마 밑에 말린 시래기를 삶아 한 덩이씩 얼렸습니다.

상자를 부치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티로폼 상자에 아이스팩을 깔고 반찬통마다 비닐을 두 겹씩 감았습니다. 그 상자를 손수레에 싣고 마을 어귀까지 나가, 하루 네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읍내 택배 영업소로 갔습니다. 택배비와 상자값, 양념값은 고추 판 돈을 쪼개 마련했습니다. 조 씨는 부엌 달력 옆 공책에 보낸 날짜와 반찬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두었습니다.

아들과 막내딸에게는 두어 달에 한 번씩, 큰딸네에는 매달 상자를 보냈습니다. 처음 몇 달은 큰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잘 받았어. 애들이 콩자반을 서로 먹겠대.” 조 씨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답장은 점점 짧아졌습니다. “응.” “받았어.”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무 말도 오지 않았습니다. 명절에도 큰딸은 혼자 내려와 하룻밤만 자고 갔습니다. 사위는 회사 일이 바쁘다고 했습니다. 조 씨는 서운할 때마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겠지” 하며 깻잎을 한 장 더 땄습니다.

그사이 조 씨의 무릎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읍내 정형외과 의사는 연골이 많이 닳았다며 쪼그려 앉는 밭일을 줄이라고 했습니다. 조 씨는 파스를 붙이고 장날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반찬 상자만큼은 거르지 않았습니다. 경로당 이웃 최 씨가 “형님, 그러다 무릎 다 나가요” 해도 조 씨는 웃기만 했습니다.

올가을, 조 씨의 칠순이 다가왔습니다. 한 달 전 큰딸이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칠순은 우리 셋이 다 같이 내려가서 차려 드릴게.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마.” 조 씨는 그 말이 고마워 밤잠을 설쳤습니다.

칠순 날 아침, 마을에는 첫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말에도 조 씨는 새벽부터 부엌에 섰습니다. 손주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볶고, 소고기 미역국을 한 솥 끓이고, 텃밭 배추로 겉절이를 무쳤습니다. 수수팥떡도 한 접시 빚었습니다. 마루에는 남편이 생전에 쓰던 큰 밥상을 꺼내 펴 두었습니다.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때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습니다. 가족 단체 대화방이었습니다. 아들이 먼저 썼습니다. “엄마, 갑자기 본사 감사가 잡혀서 못 가요. 죄송해요.” 막내딸이 뒤를 이었습니다. “작은애가 밤새 열이 나서 오늘은 안 되겠어.” 마지막으로 큰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엄마, 그이 쪽에 일이 좀 생겨서. 다음 달에 꼭 갈게.”

곧이어 모바일 상품권 세 장이 날아왔습니다. 조 씨는 돋보기를 끼고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휴대폰을 엎어 놓았습니다. 상 위의 미역국은 김이 빠지며 천천히 식어 갔습니다.

오후 두 시쯤, 마당으로 낯익은 택배 트럭이 들어왔습니다. 읍내 영업소에서 늘 보던 젊은 기사였습니다. 기사는 스티로폼 상자 하나를 마루에 내려놓으며 머뭇거렸습니다. “할머니, 이거 지난주에 보내신 거예요. 받는 분이 수취 거부를 하셔서 돌아왔어요.”

조 씨는 상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자기 글씨로 쓴 큰딸네 주소 옆에 ‘수취 거부’라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이번엔 바깥어른이 직접 나오셨는데, 앞으로 이 집에서 오는 건 안 받는다고 하셨대요.”

기사가 돌아간 뒤 조 씨는 상자 테이프를 뜯었습니다. 아이스팩은 물이 되어 출렁였고, 일주일을 오간 깻잎장아찌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따 온 깻잎이었습니다. 조 씨는 상자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큰딸은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 상자 받았지?” 조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큰딸이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이가 냄새난다고, 냉장고에 둘 데도 없다고 몇 달 전부터 받지 말라고 했어. 그동안 온 것도 사실 거의 못 먹고 버렸어. 엄마 서운할까 봐 말을 못 했어.”

조 씨가 물었습니다. “네 동생들도 알았니?” 큰딸은 대답 대신 숨을 삼켰습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습니다. 대화방에서 “엄마 반찬 최고”라며 웃는 그림을 보내던 자식들이 모두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사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또 반찬 얘기야?”

조 씨는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알았다. 이제 안 보내마. 너도 더는 미안해하지 마라.” 큰딸이 “엄마, 그런 뜻이 아니라…” 하고 말을 이으려 했지만 조 씨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조 씨는 부엌 공책을 펼쳤습니다. 3년 동안 서른여섯 줄, 날짜와 반찬 이름이 빼곡했습니다. 조 씨는 맨 아래 줄에 ‘끝’이라고 적고 공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식어 버린 칠순 상 음식을 큰 그릇에 옮겨 담아 보자기로 쌌습니다.

조 씨는 보따리를 들고 경로당으로 갔습니다. 최 씨가 보따리를 받아 들며 눈을 크게 떴습니다. “형님, 오늘 칠순 아니에요? 자식들은 어쩌고 혼자 이걸 들고 와요?” 조 씨는 웃으며 상을 폈습니다. “내 생일상 혼자 먹기 아까워서 왔지. 다들 숟가락 들어.”

데운 미역국과 잡채, 겉절이가 경로당 앉은뱅이 상 위에 놓였습니다. 누군가 서랍에서 찾아낸 초 하나를 수수팥떡 위에 꽂았고, 이웃들은 서툰 박자로 생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최 씨가 잡채를 집으며 말했습니다. “형님 반찬이 이렇게 맛있는 걸, 우리가 진작 얻어먹을걸.”

다음 날 조 씨는 읍내 택배 영업소에 들렀습니다. “이제 매달 오던 할미 상자는 없을 거요. 그동안 고마웠소.” 그 길로 정형외과에 가서 미뤄 두었던 무릎 치료를 예약했습니다. 반찬 재료값과 택배비로 나가던 돈은 따로 통장을 만들어 모으기로 했습니다. 자식들이 보낸 상품권으로는 따뜻한 겨울 점퍼 한 벌을 샀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을 위해 산 새 옷이었습니다.

며칠 뒤 큰딸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그이도 미안하대. 다시 보내 줘도 돼.” 조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먹고 싶으면 와서 먹고 가거라. 밥은 언제든 해 주마. 다만 이제 상자는 안 싼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조 씨의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졌습니다.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속 나무는 소년에게 사과와 가지, 줄기까지 모두 내주고 끝내 밑동만 남습니다. 주는 기쁨은 귀하지만, 내가 다 닳아 없어진 뒤에는 누구에게도 그늘이 되어 줄 수 없습니다.

정성은 받는 사람이 귀하게 여길 때 비로소 정성이 됩니다. 보내는 마음만큼 받는 쪽의 형편과 마음도 한 번쯤 물어보세요. 그리고 자식을 위해 아껴 둔 손길의 절반은 나 자신에게 돌려주세요. 부모가 건강하게 웃는 모습이 자식에게도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올가을 끝자락, 조 씨는 새 점퍼를 입고 최 씨와 함께 마을 저수지 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물가 갈대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저녁 해가 산마루에 붉게 걸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내일 경로당에서 끓여 먹을 수제비 이야기를 나누며 해가 질 때까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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