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3:12

“자식 넷에게 명절 음식 싸 보냈는데..” 추석 차례상 앞에서 알게 된 자식들의 비밀

명절이 다가오면 시골 부엌에는 누구보다 먼저 불이 켜집니다. 장을 보고 전을 부치고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보따리를 싸는 일은 어머니들에게 노동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받는 쪽에게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오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 마흔일곱 해 동안 고추와 들깨, 논 몇 마지기를 일궜습니다. 남편은 12년 전 경운기 사고 뒤 오래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오 씨는 혼자 농사를 지으며 마을 끝 기와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식은 넷입니다. 큰아들은 마흔여섯으로 도시의 한 회사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둘째 딸과 셋째 아들, 막내딸도 모두 결혼해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삽니다. 손주만 여덟입니다.

오 씨는 자식들이 집을 떠난 뒤에도 손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큰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는 새벽 첫차를 타고 면회를 가면서 쑥버무리를 찬합 가득 담아 갔습니다. 셋째 아들이 가게를 접고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해에는 석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김치와 밑반찬을 부쳤습니다. 셋째는 나중에 “그때 엄마 김치 아니었으면 밥 한 숟갈도 못 넘겼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남편을 보낸 첫해 추석, 큰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이제 혼자 차례상 차리기 힘드시잖아요. 간단히 하든지 그만 지내요.” 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너희 아버지 상은 내가 차린다. 너희는 몸만 와라.”

그 말대로 오 씨는 12년 동안 설과 추석마다 혼자 장을 봤습니다. 고추 판 돈과 들깨 판 돈을 따로 떼어 두었다가 명절 열흘 전이면 읍내 장에 나갔습니다. 조기와 소고기, 밤과 대추를 사서 장바구니 두 개를 번갈아 들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습니다.

명절 전날이면 마당에 솥뚜껑을 걸고 동그랑땡과 동태전, 고구마전을 부쳤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넷으로 나눈 보따리를 대문 앞에 줄 세웠습니다. 직접 짠 들기름, 고춧가루, 김치 한 통에 남은 전과 식혜까지 집집마다 똑같이 담았습니다. “애들 학교 갔다 오면 데워 먹여라.” 오 씨는 트렁크가 닫히지 않을 만큼 짐을 밀어 넣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자식들이 머무는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던 것이 점심만 먹고 가는 것으로 바뀌었고, 보따리를 받는 손도 느려졌습니다. 언젠가 큰며느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작년 들기름도 아직 그대로예요. 이번엔 조금만 주세요.” 오 씨는 “들기름은 묵어도 괜찮다”며 한 병을 더 얹었습니다.

올해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전화가 차례로 걸려 왔습니다. 큰아들은 “엄마, 이번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라고 했고, 둘째 딸은 “큰애가 고3이라 학원을 못 빠져요”라고 했습니다. 셋째와 막내도 저마다 사정을 댔습니다. 넷이 모두 못 온다는 추석은 처음이었습니다.

오 씨는 “바쁘면 할 수 없지”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여느 해처럼 읍내 장에 나가 조기를 사 왔습니다. 남편 상만큼은 거를 수 없었습니다. 혹시 누구 하나라도 들르면 들려 보내려고 보따리도 넷 다 쌌습니다.

추석 아침, 마을에는 가는 비가 내렸습니다. 오 씨는 대청마루에 병풍을 펴고 혼자 상을 차렸습니다. 조기 한 마리, 삼색 나물, 송편 한 접시, 전 세 가지가 놓였습니다. 오 씨는 남편 사진 앞에 두 번 절하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애들이 바빠서 나 혼자 왔소. 섭섭해 마시오.”

점심이 지나도록 대문은 조용했습니다. 오 씨는 상을 치우지 못한 채 마루 끝에 앉아 있었습니다. 동태전 위로 기름이 하얗게 굳어 갔습니다. 그때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습니다. 온 식구가 들어 있는 가족 단체방이었습니다.

중학생 손녀가 올린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파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리조트 테라스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집게를 들고 있었고, 둘째 딸과 셋째, 막내딸 내외와 손주들이 둘러앉아 웃고 있었습니다. 고3이라던 둘째네 큰손자도 거기 있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큰며느리의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엔 반찬 보따리 없는 명절. 다들 고생했어요.’ 형제들끼리 따로 쓰던 방에 올려야 할 사진을 손녀가 할머니가 있는 방에 잘못 올린 것이었습니다.

몇 분 뒤 사진은 사라졌고 손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잘못 올렸어요. 엄마가 지우래요.” 오 씨는 답을 쓰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한참 머물다 내려왔습니다.

저녁 무렵 큰아들의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그게… 다들 너무 지쳐서요. 명절마다 내려가서 일하고 짐 싣고 올라오면 며칠을 앓아요. 말씀드리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서요.” 오 씨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정한 거냐.” 큰아들은 한참 말이 없다가 “여름에요”라고 했습니다. 석 달 동안 넷이 입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오 씨는 식은 전 접시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자식들이 좋아하던 동그랑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오 씨는 빈 마루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밤 이웃 정 씨 할머니가 우산을 쓰고 건너왔습니다. 사정을 들은 정 씨는 오 씨의 등을 쓸며 말했습니다. “형님, 자식한테 준 거 돌려받을 생각은 말아요. 그래도 거짓말은 서운하지.” 오 씨는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며칠 뒤 오 씨는 단체방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엄마가 그동안 너희한테 짐이었던 걸 몰랐다. 이제 보따리는 안 싼다. 차례도 내 힘닿는 만큼만 하겠다. 대신 오기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 핑계는 대지 마라.” 그 아래로 넷이 차례로 “죄송해요, 엄마”를 달았습니다. 막내딸은 그 주말 혼자 내려와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자식에게 주는 정성은 받는 사람의 형편을 살필 때 비로소 정성이 됩니다. 부모 눈에는 아무리 줘도 모자라 보이지만, 자식 눈에는 갚지 못할 빚처럼 쌓이기도 합니다. 보따리를 줄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묻는 것도 사랑입니다.

자식들도 알아야 합니다. 힘들다는 말은 들어 줄 수 있지만 거짓말은 오래 남습니다. 부모가 서운한 것은 여행을 간 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자신만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늦가을, 오 씨는 털어 낸 들깨를 자루에 담아 읍내 방앗간에 갔습니다. 올해는 자식들 몫 없이 딱 한 병만 짰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밴 병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 마을 어귀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깔려 있었고, 오 씨는 그 위를 천천히 밟으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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