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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같은 운동장을 뛰던 친구 사이에는 셈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돈이 끼면 정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한 채 친구를 판단해 버립니다.
경상도 바닷가 소도시에 사는 권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스물여섯에 면사무소 서기로 들어가 34년을 공무원으로 일했고, 4년 전 정년퇴직했습니다. 아내와는 결혼한 지 서른다섯 해가 되었고,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지난달 시집간 딸이 있습니다.
권 씨에게는 초등학교 동창 남 씨가 있습니다. 뱃사람 집 아들이던 남 씨는 공부보다 주먹이 앞섰지만 의리 하나는 마을에서 따를 아이가 없었습니다. 4학년 소풍날 권 씨가 체해 쓰러지자 남 씨는 친구를 업고 십 리 길을 걸어 보건지소까지 갔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둘은 서로의 경조사를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권 씨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남 씨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짠물 냄새를 풍기며 빈소로 달려와 사흘 내내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권 씨도 남 씨 어머니 칠순과 아들 돌잔치에 빠짐없이 봉투를 챙겼습니다. “공무원 월급에 뭘 이리 많이 넣었노.” 남 씨가 핀잔을 주면 권 씨는 “니가 우리 아버지 상 치렀다 아이가” 하고 웃었습니다.
8년 전 봄, 남 씨가 소주 두 병을 들고 권 씨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친구야, 내 이제 배 그만 탈란다. 항구 앞에 횟집 자리가 하나 났는데 보증금이 3500만원 모자란다. 2년만 쓰고 꼭 갚으마.”
그 돈은 권 씨가 딸 결혼 자금으로 10년 가까이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아내는 “장사는 남의 돈으로 시작하면 쉽지 않다”며 걱정했습니다. 권 씨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저 친구가 나를 업고 십 리를 걸었다” 한마디만 하고, 이튿날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깼습니다.
첫해 횟집은 제법 잘되었습니다. 권 씨는 회식 때마다 동료들을 데려갔고, 남 씨는 “니 덕이다” 하며 광어 한 접시를 더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바로 앞에 큰 횟집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3년째 봄, 가게 유리문에 ‘임대’ 종이가 붙었고 남 씨의 전화는 꺼져 버렸습니다.
그해 가을 동창회에서 총무 강 씨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남가 그놈, 권 씨 돈 떼먹고 도망갔다 카더라.” 누군가는 “공무원이 세상 물정을 모르니 당하지” 하며 웃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권 씨는 그만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사람 잘못 봤다. 그놈은 이제 친구 아이다.”
딸 결혼 자금은 결국 퇴직금으로 메웠습니다. 아내는 한 번도 그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권 씨는 경조사 장부에서 남 씨 이름이 적힌 쪽만 보면 장부를 덮었습니다.
올해 10월 셋째 토요일, 하늘이 유난히 맑던 날 시내 예식장에서 딸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권 씨는 딸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으며 앞만 보았습니다. 하객석 맨 뒷줄까지 돌아볼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 권 씨 부부는 거실 탁자에 축의금함을 쏟아 놓고 봉투를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아내가 이름을 부르면 권 씨가 장부에 받아 적었습니다. 그런데 맨 밑바닥에서 이름 없는 흰 봉투 하나가 나왔습니다. 고무줄로 두 번 감은, 유난히 두툼한 봉투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35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한 장과 접힌 종이 두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 장은 원양어선 선원수첩 사본이었습니다. 사진 속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틀림없는 남 씨였습니다. 승선 기록이 8년 치나 빼곡했고, 마지막 하선 날짜는 지난달이었습니다.
다른 한 장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쪽지였습니다. ‘8년 배 타서 이제야 갚는다. 얼굴 들 면목이 없어 봉투만 두고 간다. 딸내미 시집 잘 보내라.’
수표를 쥔 권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아내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습니다. “여보, 그 사람 왔었어요. 식 시작할 때 맨 뒷줄에 회색 점퍼 입은 남자가 서 있길래 낯이 익다 했는데, 폐백 들어갈 때 보니 없더라고요.”
권 씨는 아들에게 전화해 식장 영상을 받았습니다. 화면 맨 끝,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신부 입장에 맞춰 박수를 치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돌아섰습니다. 그 걸음걸이를 권 씨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이 미련한 놈아, 나는 니 욕을 했는데….” 권 씨는 봉투를 가슴에 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남편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남 씨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빚을 갚으려고 먼 바다로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동창회 자리에서 권 씨는 일어섰습니다. “남 씨는 도망간 게 아이다. 8년을 배 타서 내한테 한 푼도 안 빼고 다 갚았다. 그 친구 욕한 내가 제일 부끄럽다.” 떠들썩하던 방이 조용해졌고, 강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 밤 권 씨는 선원수첩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돈 잘 받았다. 이제 얼굴 보자. 회는 내가 산다.’ 새벽녘 짧은 답장이 왔습니다. ‘고맙다, 친구야.’
돈을 빌려준 사람은 갚지 못한 친구를 원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자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부끄러워 숨는 사람도 있고, 갚을 날까지 이를 악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한 사람을 쉽게 욕할 때 한마디쯤 아껴 두시길 바랍니다. 오랜 친구를 믿어 주는 일은 돈을 빌려주는 일보다 어렵지만, 끝내 그 믿음이 우리를 덜 부끄럽게 만듭니다.
11월 초, 권 씨는 옛 횟집 자리가 보이는 방파제에 앉아 있었습니다. 찬 바닷바람에 갈매기가 낮게 날았고, 멀리 원양어선 한 척이 천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권 씨는 주머니 속 쪽지를 만지작거리며, 곧 찾아올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