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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귄 친구가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일은 셈이 아니라 의리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빌려준 돈이 돌아오지 않고 연락마저 끊기면, 그 의리는 어느새 서운함이 되고 남들 입에 오르는 흉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사람을 믿어 본 마음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전라도의 한 작은 읍내에 사는 오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장터 골목에서 35년째 작은 인쇄소를 꾸려 왔습니다. 청첩장과 부고장, 가게 전단지와 교회 주보를 찍으며 두 남매를 키웠습니다. 아내는 인쇄소 한쪽에서 재단과 포장을 맡았고, 아들과 딸은 출가해 각자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 씨에게는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 한 씨가 있었습니다. 둘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리 한 반이었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십 리 길을 걸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오 씨 아버지가 쓰러지자, 한 씨는 한 달 동안 새벽마다 오 씨네 논에 물을 대 주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정은 이어졌습니다. 한 씨가 장가가던 날 오 씨는 청첩장을 공짜로 찍어 주고 함진아비까지 섰습니다. 한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인쇄소 문을 사흘 닫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동창들 경조사 때 부조금을 걷어 전하는 일도 늘 오 씨 몫이었습니다.
9년 전 봄,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자 한 씨가 인쇄소로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치킨집 전단지 시안이 들려 있었습니다. “친구야, 터미널 앞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보증금이 모자란다. 염치없지만 2,500만 원만 빌려 다오. 꼭 갚으마.”
오 씨는 그날 밤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 돈은 낡은 인쇄기를 바꾸려고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님 쓰러지셨을 때 그 양반이 논물 대 준 얘기, 나도 들었어요.” 오 씨는 이튿날 적금을 깨 돈을 보냈고, 개업 전단지 3천 장도 찍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치킨집은 1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길 건너에 큰 가게가 두 곳이나 들어선 탓이었습니다. 가게를 접은 뒤 한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도 비운 채 읍내를 떠났습니다. 보증금은 밀린 월세와 재료값을 치르느라 거의 남지 않았다는 소문만 들려왔습니다.
그해 가을 동창회에서 오 씨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한 동창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사장은 사람 볼 줄을 몰라. 그 돈이면 인쇄기 두 대는 샀겠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 씨는 대꾸 없이 잔을 비웠고, 그날 이후 동창회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오 씨는 낡은 인쇄기를 고쳐 가며 버텼습니다. 기계가 멈출 때마다 아내는 말없이 기름칠을 했고, 오 씨는 무거운 종이 뭉치를 혼자 들어 나르다 허리를 자주 삐끗했습니다. 그래도 한 씨를 원망하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명절이면 휴대전화 속 한 씨 번호를 한참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올여름, 끝내 다리가 저려 걷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오 씨는 이웃 고을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6인실 창가 자리에 누웠습니다. 장마가 길게 이어지던 때라 창밖으로 빗줄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수술 사흘째 되던 아침, 맞은편 침대 할아버지에게 새 간병인이 왔습니다. 회색 조끼에 간병인 명찰을 단 남자였습니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등은 굽었지만, 할아버지 몸을 닦고 자리를 고쳐 눕히는 손길은 능숙했습니다. 무심코 그 얼굴을 보던 오 씨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한 씨였습니다.
한 씨도 오 씨를 알아보았습니다.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뜨리고 허둥지둥 줍다가, 조끼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빠졌습니다. 손때 묻은 갈색 수첩이었습니다. 수첩은 바닥을 미끄러져 오 씨 침대 밑까지 와서 멈췄습니다.
오 씨는 간신히 몸을 틀어 수첩을 집었습니다. 펼쳐진 첫 장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갚을 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첫 줄은 치킨집 문을 연 그달이었습니다. 그 아래로 날짜와 금액이 빼곡히 이어졌습니다.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마지막 장에 108번째 줄이 있었고, 맨 끝 ‘합계 2,500만 원’에는 동그라미가 두 번 그어져 있었습니다.
“이게 다 뭐냐.” 오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한 씨는 침대 옆에 선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가게 할 때부터 조금씩 떼어 놨다. 문 닫고는 도시로 올라가 간병 일 배웠어. 남의 집 병상 지키면서 아홉 해 동안 한 달도 안 빠뜨렸다.”
“다 모았으면 진작 오지 그랬냐. 내가 너 찾느라….” 오 씨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한 씨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빈손으로는 네 얼굴 못 들겠더라. 다 모으고 나니 이번엔 늦어서 부끄러웠다. 동창들한테 네가 무슨 소리 들었는지도 다 안다. 나 때문에 네가 바보 소리 들은 거.”
한 씨는 지난달 마지막 돈을 채웠다고 했습니다. 통장은 이미 오 씨 이름을 적은 봉투에 넣어 두었고, 고향 가까운 이 병원 일을 일부러 구한 것도 읍내로 내려갈 용기를 내려던 참이었다고 했습니다.
오 씨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침대 커튼을 끌어당겼습니다. 하얀 커튼이 두 사람을 감싸자 한 씨가 침대 난간을 붙잡고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오 씨는 수술한 허리가 당기는 것도 잊고 친구의 굽은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소리를 죽인 채 한참을 울었습니다. 커튼 너머로 빗소리만 이어졌습니다.
퇴원하던 날, 한 씨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오 씨는 봉투를 받아 들고 말했습니다. “이 돈은 받으마. 그 대신 내 인쇄소에 와서 기계 좀 같이 돌리자. 나 혼자는 이제 종이 못 든다.” 한 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해 가을, 오 씨는 여러 해 만에 동창회에 나갔습니다. 옆자리에는 한 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한 씨가 일어나 갈색 수첩을 꺼내 들고 말했습니다. “이 친구가 사람 볼 줄 몰랐던 게 아니다. 내가 늦었을 뿐이다.” 왁자하던 자리가 조용해졌습니다.
옛이야기 『의좋은 형제』 속 형과 아우는 밤마다 몰래 볏단을 지고 가 서로의 논에 쌓아 둡니다. 그러다 어느 달밤 볏단을 진 채 마주치고서야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 온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마주치는 날이 옵니다.
돈을 빌려줄 때는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만 건네라고들 합니다. 그래도 사람을 믿은 마음까지 손해라고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의 셈법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오래 지킨 의리는 늦더라도 돌아옵니다.
올겨울 오 씨는 한 씨와 함께 고향 마을 앞 저수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마른 갈대가 바람에 서걱였고, 살얼음 낀 물 위로 저녁 햇살이 붉게 번졌습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걷던 그 길을 따라 해가 질 때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