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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시련도 끝날 줄 알았다는 사람이 많다. 자식을 다 키우고 일에서 물러나면 조용한 날들만 남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예순다섯을 넘기면 다른 종류의 시련이 찾아온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며, 세상은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나이에 왜 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는 물음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사람의 도리를 깊이 탐구한 인물이다. 『맹자』 고자하편에는 이런 구절이 전한다. “하늘이 장차 큰 일을 맡기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한다.” 고통을 벌로 보지 않고 준비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시련이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일을 감당할 그릇으로 빚기 위해 온다는 뜻이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노년의 시련이 남기는 것을 차례로 살펴본다.
4위 – 견디는 힘
젊은 날의 시련은 대개 처음 겪는 것이라 당황스럽다. 그러나 예순다섯을 넘긴 사람은 이미 여러 번 넘어지고 일어선 경험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고통이 와도 이것 역시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견디는 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괴롭고 몸이 지친 시간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생긴다. 맹자가 말한 괴로움과 지침은 바로 이 힘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노년의 시련은 그 힘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기회가 된다.
3위 – 남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 병원 대기실에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낯선 이의 마음을, 배우자를 먼저 보낸 친구의 침묵을 이해하게 된다. 시련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다.
이 눈은 나이 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재산이다. 말 한마디를 고를 때도, 손을 내밀 때도 상대의 자리에서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괴로웠던 시간이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셈이다.
2위 – 덜어낸 뒤의 가벼움
시련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건강을, 사람을, 자리를 가져간다. 그러나 빼앗긴 자리에서 오히려 무엇이 진짜 소중한지가 선명해진다. 체면이나 남의 평가처럼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것들이 생각보다 가벼웠음을 알게 된다.
덜어낸 사람은 가볍다. 지켜야 할 것이 줄어들면 두려움도 줄어든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괴로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남은 것들, 곧 가족의 안부와 오늘 하루의 평온과 몇몇 오랜 벗이 더없이 귀하게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깨달음은 시련이 아니었다면 얻기 어려운 것이다.
1위 – 아직 쓰임이 남았다는 확신
맹자의 말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시련 뒤에 큰 일이 기다린다는 점이다. 시련이 찾아왔다는 것은 아직 맡을 일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하늘이 더 쓸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단련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예순다섯이 넘으면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큰 일이 반드시 거창한 일일 필요는 없다. 손주에게 넘어지고 일어서는 법을 보여주는 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웃 곁에 앉아 주는 일, 남은 날들을 품위 있게 살아내는 일이 모두 큰 일이다. 지금의 시련은 그 일을 맡기 위한 준비라고 여기는 순간, 고통의 무게가 달라진다.
오늘 저녁 종이 한 장을 꺼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힘들었던 일 하나를 적어보는 것이 좋다. 그 아래에 그 일을 지나며 얻은 것을 딱 한 줄만 덧붙인다. 견디는 법이든,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마음이든 상관없다.
그 한 줄을 적고 나면 지금 겪는 시련도 언젠가 비슷한 한 줄을 남길 것임을 알게 된다. 종이는 접어서 지갑이나 수첩에 넣어 둔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날 꺼내 읽으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