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열두 척이 남았다..” 이순신 장군이 말한 끝까지 붙잡을 희망 1위

살다 보면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때가 옵니다. 믿었던 일이 틀어지고,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예전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을 마주하게 되지요. 그럴 때 우리는 잃은 것부터 셉니다. 무엇이 없어졌는지, 얼마나 줄었는지를 헤아리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바닥까지 내려앉습니다.

조선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도 그런 자리에 선 적이 있습니다. 1597년, 수군이 크게 꺾인 뒤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 그는 이렇게 적었지요.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무거운 낱말은 ‘열두 척’이 아니라 ‘아직’입니다. 잃은 것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다 알고도 남은 것으로 눈을 돌린 사람의 말이지요. 그의 이 한마디에 비추어 우리 삶에서 끝까지 붙잡아야 할 희망을 네 가지로 짚어 봅니다.

4위 – 아직 움직이는 몸

예전만 못한 몸을 두고 한숨부터 쉬는 분이 많습니다. 계단이 버겁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지요. 그런데 잃은 기력을 세는 동안, 아직 남아 있는 힘은 쓰이지 못한 채 녹슬어 갑니다.

오늘 걸을 수 있는 다리, 밥맛을 느끼는 혀, 아침 햇살을 알아보는 눈은 모두 우리에게 남은 배입니다. 그 배를 띄우는 일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도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지요.

3위 – 곁에 남은 사람

세월이 흐르면 연락이 끊긴 이름이 늘어납니다. 먼저 떠난 벗도 있고, 멀어진 인연도 있지요. 빈자리를 떠올리면 서운함이 앞서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열두 척이 적다고 해서 배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이 한두 명뿐이어도, 그 한두 명은 온전한 한 사람씩입니다. 떠난 이를 아쉬워하는 마음의 절반만이라도 남은 이에게 건네 보시지요. 관계는 숫자가 아니라 정성으로 깊어집니다.

2위 – 손에 익은 솜씨

오래 해 온 일에서 물러나면 내가 쓸모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직함이 사라지고 찾는 이가 줄면 마음까지 작아지지요.

하지만 수십 년 쌓아 온 손재주와 눈썰미, 사람을 대하는 요령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법,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요령, 어려운 사람을 다독이는 말 한마디는 지금도 여전히 쓸 데가 있습니다. 남은 솜씨를 꺼내 쓰는 순간, 그것은 다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지요.

1위 – ‘아직’이라는 한마디

이순신 장군의 말에 비추어 보면, 끝까지 붙잡아야 할 가장 큰 희망은 무엇이 남았느냐보다 남은 것을 바라보는 눈 그 자체일 것입니다. 같은 열두 척을 두고도 누군가는 “열두 척밖에 없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직 열두 척이 있다”고 말합니다. 배의 수는 같아도 그다음 걸음은 전혀 달라지지요.

‘밖에’라는 말은 문을 닫고, ‘아직’이라는 말은 문을 엽니다. 형편이 나아져서 희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직’이라고 말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형편을 바꿀 힘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 한마디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기지 말아야 할 마지막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종이 한 장을 꺼내 맨 위에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적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열두 가지를 채워 보시지요. 걸을 수 있는 다리도 좋고, 안부를 물어 주는 친구 이름도 좋고, 잘 끓이는 된장찌개도 좋습니다.

열두 칸을 다 채우고 나면, 생각보다 내 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 종이를 냉장고 문에 붙여 두고 마음이 내려앉는 날마다 한 번씩 읽어 보시지요. 잃은 것을 세던 눈이 남은 것을 세기 시작할 때, 삶은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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