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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어려움에 처하면 부모는 지갑부터 엽니다. 배우자가 알면 자식이 혼날까,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싶어 혼자 감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비밀이 부부에게 하나씩 따로 있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경상도의 한 읍내 시장 골목에서 32년째 수선집을 하고 있습니다. 두 평 남짓한 가게에 재봉틀 두 대와 다리미판 하나가 전부지만, 바짓단 솜씨가 좋아 이웃 마을에서도 손님이 찾아옵니다. 남편은 군내버스를 30년 몰다 정년퇴직했습니다. 슬하에는 마흔둘 된 큰아들과 서른여덟 된 딸이 있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셈이 반듯한 사람이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수첩을 늘 윗주머니에 꽂고 다니며 누구 결혼식에 얼마를 냈는지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큰아들이 고등학생 때 친구 오토바이를 몰래 타다 넘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병원비를 다 치른 뒤 아들을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다친 건 괜찮다. 거짓말한 건 안 된다.” 그 뒤로 큰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늘 고개를 숙였습니다.
서 씨는 그런 큰아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첫 직장을 1년 만에 그만뒀을 때도 남편 몰래 가게 돈을 쥐여 주며 다독였습니다. 큰아들은 서른이 넘어 도시의 물류회사에 자리를 잡았고,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서 씨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3년 전 늦가을, 서 씨가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큰아들이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잿빛이었습니다. 아들은 재봉틀 옆 의자에 주저앉아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카드값이 밀렸어요. 돌려막다 보니 2500만 원이 됐어요. 이번 달에 못 막으면 연체 기록이 남는대요.”
서 씨가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고 묻자 아들은 아이 병원비와 생활비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러고는 서 씨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아빠한텐 절대 비밀이에요. 아빠가 아시면 저 다시는 집에 못 와요.”
서 씨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은행에 가서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수선비 3000원, 5000원을 모아 남편 칠순에 여행이라도 보내 주려던 돈이었습니다. 모자란 500만 원은 가게 서랍 속 비상금으로 채웠습니다. 돈을 부친 뒤 서 씨는 빈 통장을 장롱 깊숙이 숨겼습니다.
그 뒤 3년은 조용히 흘렀습니다. 큰아들은 명절에만 잠깐 얼굴을 비쳤고, 갚겠다는 말도 처음 몇 달뿐이었습니다. 서 씨는 서운했지만 남편이 눈치챌까 봐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남편에게도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낚시를 끊고 담배도 싼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서 씨가 이유를 물으면 남편은 “늙으면 아껴야지” 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올해 2월, 남편은 아침 산책길에 쓰러졌습니다. 심근경색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읍내 병원 장례식장에는 사흘 내내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발인을 앞둔 마지막 밤, 조문객이 끊기자 시동생 내외와 시누이, 큰아들 내외, 딸이 빈소 옆 작은 방에 둘러앉았습니다. 부의함에서 꺼낸 흰 봉투들이 상 위에 수북했습니다. 딸이 봉투를 하나씩 열어 이름과 금액을 부르면 시동생이 받아 적었습니다.
정리가 절반쯤 끝났을 때 큰아들이 헛기침을 했습니다.
“부의금은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장례비 정산도 제가 하고, 남는 건 어머니 생활비로 드릴게요. 장남이니까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서 씨도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때 딸이 손을 멈추고 가방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습니다. 병원에서 돌려받은 아버지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빠, 잠깐만. 아빠가 경조사비를 다 적어 두셨잖아. 우리가 받은 걸 나중에 갚아야 하니까 이거랑 맞춰 보면서 하자.”
딸은 침침한 형광등 아래서 수첩을 한 장씩 넘겼습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이름과 금액이 빼곡했습니다. 그러다 한 장에서 딸의 손이 멈췄고,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엄마, 이거….”
서 씨는 딸이 내민 수첩을 받아 들었습니다. 남편의 반듯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1월 20일. 큰애 카드값 2500만 원. 퇴직금 통장에서. 엄마한텐 비밀.’
서 씨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서 씨가 적금을 깨 아들에게 돈을 부친 것은 같은 해 11월 초였습니다. 보름 남짓 차이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서 씨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습니다. 시동생이 수첩을 넘겨받아 읽더니 조카를 쳐다보았습니다. “너, 그해 카드빚이 5000만 원이었냐?”
큰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남편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여보, 카드빚이라니요?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예요.”
한참 뒤 큰아들이 바닥만 보며 털어놓았습니다. 카드빚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습니다. 회사 동료 말만 믿고 주식에 손을 댔다가 손해를 봤고, 그걸 만회하려고 엄마와 아빠에게 같은 핑계를 대어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돈을 더 위험한 종목에 넣었다가 반년도 안 돼 5000만 원을 모두 날렸다고 했습니다.
“두 분이 서로 말씀 안 하실 줄 알았어요. 엄마는 아빠를 어려워하시고, 아빠는 엄마 걱정시키기 싫어하시니까….”
시누이가 혀를 찼고, 동서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방 안의 누구도 큰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서 씨는 수첩을 오래 내려다보았습니다. 남편이 낚시를 끊고 싼 담배를 피우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습니다. 남편도 자기와 똑같이, 아들의 부탁 하나를 지키려고 3년 동안 혼자 아끼며 살았던 것입니다. 둘 중 한 사람만 먼저 털어놓았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서 씨는 상 위의 봉투들을 가지런히 모아 딸 앞으로 밀었습니다.
“부의금은 네가 맡아라. 장례비 치르고 남는 건 네 아버지 이름으로 아버지가 다니던 경로당에 보내자.”
그러고는 큰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돈 돌려 달라는 말은 안 한다. 대신 오늘부터 네 식구 앞에서 거짓말하지 마라. 네 아버지가 너한테 끝까지 가르치려던 게 그거다.”
큰아들은 그제야 영정 쪽으로 무릎을 꿇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 뒤, 큰아들은 남은 주식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와 함께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큰아들은 매달 10만 원씩 서 씨 계좌로 돈을 보내옵니다. 보내는 사람 이름 칸에는 ‘아버지께’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비밀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부부가 따로 품은 비밀은 자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되기도 합니다. 자식의 어려움일수록 배우자와 먼저 마주 앉아 이야기하세요. 둘이 함께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건네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끝까지 묻는 일입니다. 그 물음을 미루지 않는 것이 자식을 정말로 아끼는 길입니다.
올가을 서 씨는 다시 수선집 문을 열었습니다. 골목 어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게 차양 위로 잎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서 씨는 남편의 낡은 수첩을 재봉틀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뜸한 오후면 수첩을 꺼내 그 반듯한 글씨를 손끝으로 한 줄씩 쓸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