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09:10

“아들 빚 5000만원 몰래 갚아줬는데..” 3년 뒤 남편 양복 속 수첩에 결단했다

자식이 큰 빚을 졌다고 털어놓으면 부모는 나무라기 전에 그 빚을 덮어 줄 궁리부터 합니다. 배우자가 알면 몸져누울까 싶어 혼자 끌어안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 모르게 짊어진 짐은 생각지 못한 무게로 돌아오곤 합니다.

충청도의 작은 읍내에 사는 박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오일장이 서는 시장 골목 끝에서 2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콩자반을 졸이고 깻잎을 재우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남편은 30년 넘게 개인택시를 몰다 몇 해 전 핸들을 놓았습니다. 슬하에는 서울로 시집간 큰딸과 올해 서른아홉이 된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가게에서 자란 아이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달려와 갓 부친 계란말이 꽁다리를 집어 먹었고, 박 씨가 장바구니를 들면 “엄마, 무거운 건 내가 들게.” 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방학마다 내려와 배달 오토바이를 몰았습니다. 단골 할머니들은 반찬집 둘째가 싹싹하다며 사위 삼고 싶다고 웃었습니다.

말수 적은 남편도 둘째가 대학에 붙던 날만큼은 택시 지붕등을 켠 채 읍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살가운 아들 사이를 오가며 박 씨는 집안의 온기를 지켰습니다.

3년 전 봄, 가게 셔터를 내리려는데 둘째가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반찬통이 쌓인 평상에 걸터앉아 한참 바닥만 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코인을 하다 빚이 5000만원 생겼어. 이자가 무섭게 불어.” 박 씨 손에서 고무장갑이 미끄러졌습니다. 아들은 박 씨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면 쓰러지셔. 제발 엄마만 알고 있어 줘.”

그 돈은 박 씨가 20년 동안 모은 가게 비상금이었습니다. 장사를 마치면 그날 번 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떼어 따로 통장에 넣었습니다. 냉장 진열대가 고장 나거나 가게 계약이 끝날 때를 대비한 돈이었습니다. 박 씨는 이튿날 아침 그 통장을 털어 아들 계좌로 보냈습니다. “다시는 손대지 마라. 아버지한테는 끝까지 말 안 하마.”

그 뒤로 둘째의 발길은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하루만 머물다 갔습니다. 박 씨는 서운했지만 빚 갚느라 고생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해 겨울부터 남편도 달라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친구네 축사 불을 봐 주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새벽에야 들어왔습니다. 새벽 장사 준비에 쫓긴 박 씨는 깊이 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눈이 많이 내린 밤에 남편은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반년 넘게 병상에 누워 있던 남편은 올여름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석 달이 지난 10월 말, 박 씨는 큰딸과 남편의 장롱을 열었습니다. 나프탈렌 냄새가 밴 회색 양복 한 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둘째 결혼식 때 한 번 입고 아껴 두던 옷이었습니다. 큰딸이 양복을 개다 말고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갈색 수첩을 꺼냈습니다.

첫 장에는 남편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습니다. ‘둘째 빚 3000만원.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 것.’ 그 아래로 날짜와 금액이 줄지어 적혀 있었습니다. 첫 줄은 3년 전 4월, 택시를 판 돈으로 보낸 1000만원이었습니다. 박 씨가 아들에게 돈을 보낸 날로부터 꼭 엿새 뒤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매달 80만원씩 스물다섯 줄이 이어졌습니다.

수첩 뒷장에는 ‘물류창고 야간 경비, 밤 열 시부터 새벽 여섯 시’라는 근무표와 함께 반장 최 씨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박 씨는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습니다.

“사모님이세요? 어르신이 두 겨울을 꼬박 나오셨지요. 아들 빚 갚아야 한다고 쉬는 날도 마다하시고요. 그날도 눈 치우고 순찰 돌다 초소 앞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 씨는 장롱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빚을 두고 부부가 서로 모르게 돈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박 씨는 둘째를 가게로 불렀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 평상 위에 자신의 통장과 남편의 수첩을 나란히 펼쳐 놓았습니다. 5000만원이 빠져나간 날짜 옆에 엿새 뒤 1000만원이 적힌 줄이 보였습니다.

“빚이 얼마였니. 바른대로 말해라.”

둘째는 한참 만에 대답했습니다. “5000만원이었어요. 아버지께는 엄마가 아시면 가게 접으실 거라고 했어요. 아버지 돈은 잃은 거 찾으려고 다시 넣었고요.”

박 씨는 수첩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남편이 쓰러지기 이틀 전 날짜였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이 돈 마련하려고 일흔 다 된 몸으로 눈 오는 밤에 창고를 지켰다.” 둘째는 평상 아래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박 씨는 울지 않았습니다.

“이제 너와 나 사이에 돈 얘기는 끝이다. 아버지 돈을 갚겠다는 말도 하지 마라. 그건 내가 받을 돈이 아니다.”

박 씨는 자식들과 상속 협의를 마치고 남편과 30년을 산 집을 내놓았습니다. 집이 팔리자 시장 가까운 작은 전셋집으로 옮겼고, 남은 돈은 자기 이름의 노후 자금으로만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둘째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엄마는 너한테 돈을 주지도, 빌리지도 않는다. 밥은 언제든 먹으러 와라.”

자식의 빚을 대신 갚아 주는 일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 모르게 갚아 준 빚은 자식에게 한 번 더 기댈 틈을 열어 줄 뿐입니다. 자식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할 때가 바로 배우자와 가장 먼저 의논해야 할 때입니다.

부부 사이에 숨긴 돈은 결국 한쪽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자식 일일수록 혼자 짊어지지 말고 함께 들어야 합니다.

11월 첫 장날, 박 씨는 새벽 장사를 마치고 남편 산소에 올랐습니다. 산자락 아래 논에는 볏짚 더미가 누렇게 쌓여 있었고, 산소 옆 감나무에는 까치밥 몇 알이 붉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박 씨는 남편이 좋아하던 도라지무침을 상석에 올려놓고 해가 기울 때까지 그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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