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에게 베푼 정은 대개 돌아올 곳을 정하지 않고 떠납니다. 아이 한 끼 먹이고 숙제 한 장 봐 준 일을 누가 장부에 적어 두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잊고 산 정이 가장 외로운 날 가장 뜻밖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경상도 내륙의 작은 도시에 사는 박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주택가 골목 3층짜리 상가주택 1층에서 32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문을 열었지만 남편은 15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해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느라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봅니다. 박 씨는 세탁소 위 2층에서 혼자 지냅니다.
14년 전 봄, 3층에 젊은 엄마와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세 들어왔습니다. 엄마 정 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퇴근은 늘 밤 아홉 시가 넘었습니다.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난 비 오는 오후였습니다. 셔터를 내리러 나간 박 씨는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우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려 몇 시간째 그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 씨는 젖은 아이를 세탁소 안으로 들였습니다. 다리미 열기에 몸을 녹이게 하고 계란말이를 부쳐 밥을 먹였습니다. 아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다림질대 옆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정 씨가 허둥지둥 세탁소 문을 두드렸습니다. 박 씨는 잠든 아이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 끝나면 여기로 보내요. 나도 혼자라 심심하던 참이에요.”
그날부터 세탁소 구석에 작은 접이식 밥상이 놓였습니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세탁소로 와서 숙제를 폈습니다. 구구단 7단에서 막힐 때면 박 씨가 다리미를 내려놓고 손가락을 꼽아 가며 함께 외웠습니다. 숙제를 마친 아이는 손님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색깔별로 나눠 통에 담았습니다. “할머니, 단추도 식구끼리 있어야 안 쓸쓸하대요.” 박 씨는 그 말이 하도 기특해 단추 통에 ‘식구 통’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한겨울 밤 아이가 열이 펄펄 끓은 적도 있었습니다. 박 씨는 세탁소 문을 걸어 잠그고 아이를 업은 채 소아과로 뛰었습니다. 접수 창구에서 관계를 묻자 박 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할머니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정 씨는 몇 번이나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언니, 한 달에 20만 원이라도 받아 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박 씨는 봉투를 정 씨의 앞치마 주머니에 도로 찔러 넣었습니다. “애 한 숟가락 더 먹인다고 쌀독이 비나. 그 돈으로 애 운동화나 사 줘요.”
박 씨는 그날그날 세탁소 수입에서 몇천 원씩 떼어 따로 모았습니다. 금고 옆 작은 깡통에 ‘반찬값’이라고 적어 두고, 그 돈으로 생선을 굽고 나물을 무쳤습니다. 혼자 먹을 때는 찬밥에 김치뿐이던 밥상이 아이 덕분에 따뜻해졌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정 씨는 다른 동네 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이사를 갔습니다. 떠나는 날 아이는 박 씨 허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할머니, 나 자주 올게요.”
처음 몇 달은 전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번호가 바뀌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서운했지만 먹고살기 바쁘려니 했습니다. 다만 해마다 설과 추석 아침이면 세탁소 셔터 앞에 이름 없는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박 씨는 단골손님 누군가의 인사려니 여겼습니다.
그사이 30년 넘게 다림질대 앞에 서 있던 무릎이 탈이 났습니다. 계단 한 칸 오르기가 힘들어졌고, 의사는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현장 사정으로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단골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던 날, 박 씨는 약사에게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다음 달에 수술하는데 보호자도 없이 혼자 들어가요.”
올봄, 입원하는 날 아침에는 가는 비가 내렸습니다. 박 씨는 슬리퍼와 수건, 세탁소 비닐을 씌워 곱게 다린 잠옷을 보따리에 싸 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시내 종합병원 원무과 창구 앞에서 박 씨는 입원 서류 보호자란을 어떻게 채울지 걱정하며 번호표를 쥐고 있었습니다.
차례가 되자 직원이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르신, 보호자분이 지난주에 미리 다녀가셨어요. 서류는 다 작성돼 있습니다.” 직원이 내민 서류를 받아 든 박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보호자 연락처 옆, 환자와의 관계를 적는 칸에 또박또박 ‘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딸이 없는데요.” 박 씨가 말하자 직원이 웃었습니다. “6층 정형외과 병동 간호사 선생님이세요. 병동에 올라가시면 만나실 거예요.”
6층 병동 문이 열리자 사복 차림의 젊은 여자가 달려 나왔습니다. 키는 훌쩍 컸지만 웃을 때 한쪽 볼에 패는 보조개는 그대로였습니다. “할머니, 칠 곱하기 팔은요?” 박 씨는 대답 대신 보따리를 떨어뜨렸습니다.
아이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이 병동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정 씨는 이사 간 뒤에도 옛 동네 단골 약국에서 약을 지었고, 약사는 박 씨의 수술 소식을 정 씨에게 전했습니다. 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원무과에 내려가 보호자 서류를 채웠고, 수술 날짜에 맞춰 일주일 휴가를 냈습니다.
“여기서 일하면 간호사로밖에 못 있잖아요. 할머니 옆에는 보호자로 있고 싶었어요. 할머니도 예전에 저 업고 소아과 가서 할머니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박 씨는 손등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그날 오후, 병실 문 앞에 정 씨가 배 상자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낯익은 상자였습니다. 정 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언니, 명절마다 셔터 앞에 과일 둔 거 저예요. 받기만 하고 갚을 길이 없어서 얼굴 들고 찾아갈 수가 없었어요. 애가 제 몫을 하게 되면 그때 같이 가자고 10년을 미뤘어요.”
박 씨는 정 씨의 손을 끌어 침대 끝에 앉혔습니다. “갚긴 뭘 갚아. 내가 그 애 덕에 4년 동안 밥을 따뜻하게 먹었는데.”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박 씨가 처음 본 것은 침대 옆에서 배를 깎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일주일 내내 박 씨의 다리를 주무르고 걷기 연습을 시켰습니다. 옆 침대 환자가 “따님이 참 살갑네요” 하자 박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정은 받을 때보다 돌려줄 때 더 오래 걸리는 법입니다. 갚지 못한 마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연락이 끊겼다고 그 사람의 마음까지 끊긴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웃집 아이에게 건넨 밥 한 그릇이 언젠가 내 손을 잡아 줄 손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어 준 정만큼 단단히 쌓이는 저축은 없습니다.
올가을 박 씨는 새 무릎으로 강변 둑길을 걸었습니다. 한쪽에는 정 씨가, 다른 한쪽에는 간호사가 된 아이가 박 씨의 팔짱을 끼었습니다. 물가의 억새가 저녁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세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세탁소가 있는 골목으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