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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이에 오가는 정에는 장부가 없습니다. 남의 집 아이를 맡아 주고 밥 한 그릇 더 차리는 일에 값을 매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정이 엉뚱한 셈법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더 오래 아픕니다.
경기도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 세탁소를 하는 황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스물여덟 해째 같은 자리에서 다리미를 잡았습니다. 남편은 몇 해 전 허리를 다친 뒤로 수선과 수거 배달만 거들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멀리 살고 있습니다.
옆집에 맞벌이 부부가 이사 온 것은 6년 전 봄이었습니다. 남편은 물류 회사에, 아내 정 씨는 보험 회사에 다녔고,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입학식 다음 주, 정 씨가 세탁소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 정말 염치없는데요. 애가 두 시면 끝나는데 저희는 일곱 시가 넘어야 와요. 그때까지만 여기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황 씨는 다리미를 내려놓고 웃었습니다. “애 하나 앉힐 자리는 있어요. 보내요.”
그날부터 아이는 매일 오후 계산대 옆 접이식 의자에 앉았습니다. 황 씨는 비닐 씌운 양복들 사이에서 받아쓰기를 불러 주고 구구단을 외우게 했습니다. 학원에 다녀오면 아이는 다시 세탁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녁도 황 씨 몫이었습니다. 가게 안쪽 쪽방에서 밥을 지어 아이를 먹였고, 아이가 콩자반을 좋아한다기에 장날마다 검은콩을 샀습니다. 감기에 걸린 날은 죽을 쑤어 보온병에 담아 들려 보냈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가게 앞에서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습니다. 정 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황 씨는 가게 문을 잠그고 아이를 업은 채 병원까지 뛰었습니다. 아이는 꿰맨 이마를 만지며 “할머니가 엄마보다 빨리 왔어.” 하고 웃었습니다.
정 씨는 가끔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와 고맙다고 했습니다. 돈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가 3학년이 되던 해, 황 씨는 은행에서 적금 하나를 들었습니다. 매달 가게 수입에서 3만 원씩 떼어 넣고, 통장 앞장에는 볼펜으로 ‘꼬마 생일 선물’이라고 적었습니다. 중학교 입학 때 교복 한 벌 값으로 건넬 생각이었습니다.
정 씨는 아이를 데리러 오면 계산대 앞에 오래 서 있곤 했습니다. “이 장부에 손님이 다 적혀 있어요? 식당 앞치마는 한 달에 몇 장 나와요? 드라이는 어디로 보내세요?” 황 씨는 세탁소 일이 신기한가 보다 하며 묻는 대로 다 알려 주었습니다.
2년 전 겨울, 부부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이는 떠나는 날 세탁소 유리문에 이마를 대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황 씨는 접이식 의자를 접어 구석에 세워 두고, 그 뒤로도 적금을 꼬박꼬박 부었습니다. 명절마다 오던 문자는 지난해부터 끊겼지만, 바빠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올봄, 길 건너 빈 가게에 공사 가림막이 쳐지더니 하얀 간판이 걸렸습니다. 24시간 무인 세탁소였습니다. 키오스크를 들여놓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옆집 부부였습니다. 황 씨는 놀랐지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축하할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개업하고 석 달 사이, 15년 거래하던 골목 식당이 앞치마 세탁을 끊었습니다. 오랜 단골 몇 집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황 씨가 건너가 서운하다고 한마디 하자 정 씨 남편은 “손님이 골라 가는 걸 어쩌겠어요.” 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시월 첫 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이었습니다. 단골 박 씨 할머니가 젖은 우산을 접으며 노란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이거 봤어? 우리 집 문틈에 꽂혀 있더라.”
전단지에는 큼직한 글씨가 박혀 있었습니다. ‘개업 기념 첫 세탁 30% 할인, 무료 수거 배달. 동네 세탁소처럼 수거비 바가지 없습니다.’ 황 씨가 받는 수거비는 2천 원이었습니다. 남편이 낡은 오토바이 기름값을 대려고 10년 넘게 올리지 않은 값이었습니다.
박 씨 할머니가 덧붙였습니다. “이상한 게, 우리 골목에선 몇 집만 받았대. 죄다 자네 단골이야.”
황 씨는 우산도 쓰지 않고 길을 건넜습니다. 무인 세탁소 안에서는 건조기가 웅웅 돌고 있었고, 정 씨가 세제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전단지에 동네 세탁소가 바가지라고 썼더라. 그 동네 세탁소, 우리 가게 말하는 거지?” 정 씨는 고개도 들지 않았습니다. “장사는 장사죠. 저희도 대출 끼고 시작했어요.”
“네 아들 4년을 내가 거기서 키웠다.” 황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정 씨가 그제야 얼굴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 애 봐주신 건 아주머니가 좋아서 하신 거잖아요. 그걸로 이러시면 곤란하죠.”
“그럼 우리 단골이 어느 집인지는 어떻게 알았니?” 정 씨가 대답을 못 하는 사이, 안쪽에서 기계를 고치던 남편이 무심코 말했습니다. “그 장부에 다 적혀 있었잖아요. 동 호수, 맡기는 옷, 식당 거래처까지.”
정 씨가 남편을 홱 돌아보았지만 말은 이미 나온 뒤였습니다. 계산대 앞에 서서 묻던 질문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온 시간마다 정 씨는 장부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 씨는 더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가 좋아서 한 거 맞다. 그러니 이제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필요 없다.” 그 말만 남기고 비 오는 길을 다시 건넜습니다.
이튿날 아침, 황 씨는 은행에 가서 ‘꼬마 생일 선물’ 적금을 해지했습니다. 4년 치 원금과 이자를 합쳐 15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남편이 허리 덜 쓰게 배달용 전동 카트를 들였습니다.
그날 저녁 정 씨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이한테는 할머니가 잘 크라고 하더라고만 전해 다오. 우리 가게 장부에서 본 손님 집에는 다시 전단 넣지 마라. 이제 서로 모르는 사이로 살자.] 그리고 장부는 서랍에 넣어 열쇠로 잠갔고, 구석의 접이식 의자는 고물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뒤 단골 몇 집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식당 사장은 “싼 데 가 보니 와이셔츠 깃이 다 누렇게 남더라.”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옛이야기 『은혜 갚은 까치』에서 까치는 제 새끼를 살려 준 선비를 위해 머리로 종을 쳐 목숨을 내놓습니다. 미물도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데, 사람은 받은 정을 계산대 위 장부처럼 읽어 내기도 합니다.
베푼 정을 되돌려 받으려 하면 마음이 먼저 상합니다. 하지만 그 정을 이용당했을 때까지 모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망 대신 조용히 문을 닫는 것, 그것이 평생 지켜 온 내 가게와 내 마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늦가을 골목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황 씨의 남편은 새 카트에 비닐 씌운 겨울 코트를 싣고 골목을 돌았고, 황 씨는 김이 오르는 다리미를 들고 유리문 너머로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